2010년 3월 26일 금요일

임마누엘 – 임마누-알라(Immanuel – Immanu-Allah)

창조신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The Name of the Creator Deity and the Name for God)

글쓴이: 마르틴 골드스미스(Martin Goldsmith)
원문보기: http://www.stfrancismagazine.info/ja/001Immanuel%20–%20Immanu-Allah(1).pdf

1. 들어가는 말
전직 선교사인 마르틴 골드스미스(Martin Goldsmith)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으로, ‘열방그리스도대학’(All Nations Christian College)에서 세계종교학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이 분야에 정평이 난 필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1960년대 OMF와의 초기 사역 이래로, 24년 동안 ‘열방그리스도대학’에서의 강의 그리고 은퇴에 다다르기까지, 마르틴은 지치는 줄 모르고, 온 세상이 복음을 알게 하는 일에 매진해 왔다. 그는 마태복음이 어떻게 교회로 하여금 선교케 하였는지에 대해 다룬 소중한 책을 저술한 바 있다(Martin Goldsmith, Matthew and Mission: The Gospel Through Jewish Eyes (Carlisle: Paternoster, 2001). 이 책에서, 마르틴은 성서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또 성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라’(Allah)로 칭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골드스미스는 이와 동일한 주제에 대해 2006년 12월 28일 있었던 인터서브 아랍지역 모임에서 언급한 바 있었다. 다음은 요약사본이다; 다만 골드스미스의 대화적 문체를 최대한 살리려 했음을 명기하고자 한다.

2. 성서에서의 하나님의 이름들(The Names of God in the Bible)

2.1 ‘엘’(El), 창조신의 이름
마태복음 1:21-25절의 예수탄생과 관한 복음서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임마누엘’(Immanuel)이라는 놀라운 칭호를 받는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엘’(El)이 신명으로서 들어가는 가장 전형적인 칭호이다. 하나님의 이름 ‘엘’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가? ‘엘’은 누구였는가?
우리가 창세기 13장을 살펴보면, 거기에서 ‘엘’은 찾을 수 없다. 복수형태인 ‘엘로힘’(Elohim)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의 단수는 ‘엘로하’(Eloah) 혹은 YHWH(거룩한 신성문자로 ‘아도나이’(adonai)로 바꾸어 읽는다 – 역자주)이다. ‘엘’은 창세기 14장 이전까지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 말은 히브리인이 아닌, 멜기세덱(Melchizedek)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에 의해 소개된다. 사실 ‘엘’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가나안과 모압 그리고 전 구약성서 시대에 걸쳐, 중동지역 사람들에 의해 숭배되던 최고의 창조신이었다.
멜기세덱이 자신의 이름을 아브람에게 소개한 후, ‘엘’은 성서안에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 구약성서에서, 바로 이 말이 ‘엘로힘’(Elohim)이나 ‘엘로하’(Eloah)와 교환가능하게 사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은 창조주를 이제 ‘엘로힘’ 혹은 ‘엘’로 부르게 되었다.

‘엘’을 성서적 계시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 ‘엘로힘’의 성서적 계시와 전혀 다른, 이신교적 배경의 ‘엘’의 성격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단어, 칭호, 이름은 취하였지만, 그 내용은 변경되고 고쳐진 것이다.

2.2 ‘엘라’(Elah), 창조신의 다른 이름
후에,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사람들이 ‘엘라’(Elah)라는 높은 창조주를 숭배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스라서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은 또한 ‘엘로힘’(Elohim)을 부른다. 그 때부터 구약성서의 창조주인 YHWH는 ‘엘로아’(Eloah), ‘엘로힘’(Elohim), ‘엘’(El), 그리고 ‘엘라’(Elah)로 불리운다. 앞의 ‘엘’과 마찬가지로, ‘엘라’의 성격은, 앞선 YHWH에 대한 성서적 계시에 적합하기 위해, 다소간 수정되어 수용되어야만 했다.

2.3 ‘테오스’(Theos), 창조신의 이름
신약성서시대로 접어들어, 창조주의 그리스어 칭호는 ‘테오스’였다. 그리스어를 공부해 보면, ‘테오스’는 보통 ‘신’(神)으로 번역하게 된다. 그리스 만신전(Greek pantheon)의 신(god)의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이를 뛰어 넘었다. 즉 이들은 구약성서의 ‘엘로힘’을 ‘테오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테오스’는 그리스 종교적이고 정령숭배적 상황과 어울려 사용되었다. ‘YHWH’의 칭호가 이 단어로 바뀐 것이다. 이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않는가? ‘테오스’라는 말은, 다양하고 복잡한 그리스적 사상들에 휩싸인 채로, 채택되고 변경되어 ‘JHWH’가 된다. 이 말은 신약성서에서 ‘테오스’로 또한 불린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2.4 인격화된 신이 아닌 창조신 이름을 택하다
우리는 다른 면을 또한 보아야 한다: ‘엘’, ‘엘라’ 그리고 ‘테오스’가, YHWH나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으로 취사선택된 반면, 산당들에서 우상으로 숭배되던 바알이나 유사하게 인격화된 신들은 철저히 제거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들을 철저히 금지하였고, 분쇄하였다. ‘엘로힘 바알’(Elohim Baal)이라고 부르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상숭배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원리가 신약성서에도 적용 되었다. ‘테오스’는 사용되었지만, ‘비너스 신’(God Venus-사랑과 미의 여신(역자주)나 ‘머큐리 신(God Mercury-신들의 사자; 상인,도둑,웅변의 신(역자주)는 어불성설이었다.

3. 어떻게 초대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이름들을 받아드렸나?

유럽에서의 1세기 그리스도교 역시 유사한 과정을 밟았다. 예전과 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교의 창조신이 차용되었다. ‘God’, ‘Gott’, ‘Dieu’, ‘Bog’ 등등이 그것이다. 당시 이교도의 나라 영국은 이교의 창조신인 ‘God’을 그리스도교 도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God’이라는 말은 완전히 이교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이 차용되었다; lesser deity and 성전숭배는 유럽 그리스도교에서 금지되었다.
이상한 것은, 몇몇 낮은 수준의 신들은, 달력 속의 평일의 이름으로 상존하고 있다. 우리들은 태양의 날, 달의 날, Tiu신의 날, Ouden이나 Wodan신의 날, Thor신의 날, Freya여신의 날, 토성의 날 그리고 다시 태양의 날로 돌아오는 일련의 순서를 알고 있다. 웬일인지 때론 그리스도인들 조차 Thor의 날이나 Freya의 날에 상존하는 신을 숭배하는 일을 꺼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4. 이슬람에서의 창조신

4.1. 무함마드와 낮은 신들(the lower deities)

이슬람세계로의 선교라는 입장에서 보면, 무함마드는 이미 우리들에게 낮은 수준의 신이다. 할렐루야! 무함마드 사후 직전, 그가 메카로 돌아와 정복했을 때, 그는 카바(the Ka’aba)의 모든 우상들과 그곳에서 숭배되던 ‘알라’(Allah)의 딸들을 모신 모든 사당을 제거했다 : Uzza, al Manat, al Arusa, ‘알라’의 딸 혹은 배우자로 추정되는 신비스런 al Lat 등이다. (여러분들은 왜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상에 대해 민감히 반응치 못하였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딸들을 제거한 후, 하나님이 아들이 있다라는 사실은 그의 세계관으로는 퇴보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4.2 알라는 ‘엘’과 같은가?
알라는 엘로힘과 같은 분인가? 알라는 창조주를 뜻하는 셈어로 엘로아나, 엘로힘, 엘, 엘라와 어원적으로 매우 가깝다. 그러나 El이나 Elah, Theos, God, Gott, Deui, Bog와 마찬가지로 그 성격이나, 알라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그가 일하는 방식이나, 그가 사람들과 관계하는 방식, 혹은 관계하지 않는 방식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일부 그리스도인 저자들이 말하듯이 알라가 사단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영국 사람이나, 미국 혹은 호주 사람에게 가서 하나님은 사단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분이 될 수 없다. 알라는 알라다. 알라가 알라 이외에 다른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4.3 부적절한 이해들 그러나 같은 사람

만약 내가 여러분들께 나에 대한 인상 즉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에 대해 써 달라고 한다면, 내 생각에, 여러분들 가운데 몇 사람은 몇몇 좋은 점을 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몇몇 사람들은 불쾌한 이야기를 쓰리라. 하지만 여러분들은 나의 인상에 대한 여러분들 각자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물론 여러분들의 설명은 틀릴 수도 있고 실제와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나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에게 가서, ‘내가 생각하기에 마르틴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나의 아내는 여러분들에게 ‘사실 제가 당신들 보다 그에 대해 조금 더 잘 알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마르틴은 이러저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간파하지 못한 그의 성격도 있어요’라고 말하며, 여러분들의 견해를 수정해 줄 것이다.

물론 만약 내가 엘리자베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써 달라고 한다해도, 그것은 내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또 다를 것이다. 우리가 결혼하여 산지도 40년이 넘었을찌라도 말이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서, 골드스미스는 어떤 사람인가를 묘사해 달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에 대한 인상은, 여러분들의 나에 대한 인상은 물론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나 엘리자베스가 생각하는 나와 또 다를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나에 대한 것이지만, 아마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것이리라. 물론 나 역시도 조지 부시(George Bush)나 다른 어떤 사람들에 대해 위와 똑같이 할 수 있다. 여러분 역시 정치인들에 대한 여러분 각자의 견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치인들의 배우자들은 실제로 우리들의 생각과 같지 않을 것이다.

알라(Allah)나 하나님(God)에 대한 이해는 부적절하거나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 모두 부적절하거나 틀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어두운 안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로 그 계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들이 구원받아 우리 앞에 성경이 있을찌라도 말이다. 심지어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점진적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에 충만할찌라도, 여전히 가야할 길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가 직전에 돌아가셨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께서 얼마나 뛰어나신 분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최고로 뛰어난 아버지셨다. 내가 아이였을 때, 나는 아버지의 사진을 내 침대 옆에 늘 두곤 했다. 아이일 때부터 아니 청소년기 때까지 밤에 나는 아버지께, 아니 아버지의 사진를 향해, 내게 아버지는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등에 대해 되내이곤 했다.
그 때, 나는 아버지께 내 마음과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이야기 했다. 그 날 그 날 내가 골을 넣은 것이나 수학에서 백점 받은 일 등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모든 일을 말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아버지와 함께 나누었다. 사실 그것은 한 조각 사진에 지나지 않았고, 그가 없기에 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나는 성장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나는 하늘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똑같이 했다. 내 아버지는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분이신지 이야기 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예배 혹은 찬양이라 부른다. 나는 그 분과 골을 넣거나 더 좋은 성적을 받는 일 보다는 좀더 성숙한 것들에 대해 나누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기도라고 부른다.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는 답을 하지 않는다; 그는 멀리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성령께서는 내가 가까이 이야기해 주신다.
그러나 아버지는 멀리 계시고, 거기 계시지 않는다. 스스로나 그 뜻을 모두 알리지 않으신다. 이것이 성서적인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선교사가 되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열방그리스도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비로서 내 유년시절이 일정부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나의 이해를 결정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의 배경에 기인하였기에,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나의 이해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일은 여러분 모두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성격, 심리형성과정, 혹은 여러분들의 교단배경이나 특정한 영성형성과정 등으로 인해, 여러분들의 하나님 이해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여러분들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확하다고 나는 확신하다. 여러분의 하나님 이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생각,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방법 등에 대해 나열해 보는 것은 상당히 유익한 시도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진실이되 모두다가 진실은 아니며, 오류되 진실과 오류가 공존하는, 아주 재미있는 왜곡된 견해들의 목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5. 임마누엘과 선교
인간으로서, 구원받았든지 받지 못하였든지,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다. 이제서야 나는 영어 단어 ‘좋은/선한’(goog)이라는 말은 다소 뭔가 모자라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좋은/선한’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하나님 스스로의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성품을 묘사하는 아주 분명한 말이다. 하나님은 좋으신/선한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고, 보기에 좋다라고 하신 것이다. 물론 창세기 3장은 인간의 본성은 죄로 인해 타락하여, 진리는 오류와 섞이고, 선함은 죄와 혼합되었다고 말한다. 비슷하게도,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진리와 비진리가, 선함과 죄가 함께 뒤섞였다. 이 말로 인해 여러분이 걱정할 듯하여, 존 칼빈이 기독교강요(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한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칼빈은 타락한 이후에도 인간에게 남겨진 하나님의 이미지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죄악으로 가득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로 인하여 이것이 완화되고, 누그러지며 약화된다. 최고의 창조주, 임마누엘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엘’(El)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여러분들은 이를 창조주의 계약 이름인 YHWH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요한복음에서, 바로 이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YHWH이다. 왜냐하면 이 분은 위대한 ‘나’(I Am)이자 위대한 YHWH이다. 나는 바로 나이다(I am who I am). 그러나 이 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YHWH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창조신이시다. 이 신은 숨겨진 신이고 성서 밖의 종교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신이다; 이는 모압, 가나안 그리고 바빌론 그리고 그리스 종교 등에서, 예배가 종종 최고의 창조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알려지고 접근 가능한 낮은 수준의 신들을 위해서 드려진 이유이다.

우리들의 선교에 바로 이러한 것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랍세계에서 우리 메시지의 최고봉은 예수님이다. 여러분은 그의 이름을 ‘예수아’(Yeshua), ‘이사’(Isa)로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분이 그의 백성을 죄로 부터 구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임마누엘이다. 이 분은 멀리서, 숨겨진채로 있지 않고, 우리와 함께 바로 여기에 계신 최고의 창조주이다. 여러분이 ‘알라’를 알기 원하는가? ‘알라’와 관계하고자 하는가? 좋다! ‘알라’는 주도적으로 메시야 예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그 분은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깨끗케 하시고,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 안에서 ‘임마누-엘’로 그의 사역을 이루신다. 또한 인류의 창조주인 ‘임마누-알라’로 우리 주변에 계신다.

6. 결론
기억컨데 우리 열방그리스도대학의 이슬람과정에서 무슬림 지도자를 초대하여 강연을 부탁하고 학생들과 질의하였던 적이 있다. 질문도 기억이 나지 않고, 대답 또한 대부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그 무슬림 지도자가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신약성서를 여러번 읽었습니다. 나는 많은 그리스도인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항상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에 대해 논쟁도 하지요. 나는 정말 그리스도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계속 말을 했다: ‘내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계속해서 내게 말하는 것인데, 내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계속 질문을 해 보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말하기를:

내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내게, 그들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안다고 계속 말하는 거예요. 그런 일은 불가능한데 말입니다. ‘알라’는 위에 계시고, 전혀 다른 분이며, 저 멀리 계신 분입니다. 알라는 영광스러운 최고의 하나님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지요.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킵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섭리가운데 나와 우리가족 그리고 우리백성과 우리 인간을 지켜주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알라’와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위에 계십니다.

영광스럽게도 ‘알라’는 실제로 영화롭고 영광스러운 모습의 메시야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영어의 ‘God’로 번역된 ‘엘’(El)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교도 종족인 영국의 알려지지 않은 신 God는 영화롭고, 알수 있고, 대화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그 분을 따를 가치가 있는 분이다. 왜냐하면 이 예수가 바로 ‘엘’이며, 이 예수가 우리와 함께 하는 ‘알라’이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14일 일요일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자들에 관한 연구: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 (II)

글쓴이: Ant Greenham[1]
원문: http://www.stfrancismagazine.info/ja/pdf/2010/116-175SFMFEB2010.pdf

4.12 여자 1
이야기
여자1은 어린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이었다. 고등학교를 마쳤지만 정치적 불안정의 여파로 졸업시험을 볼 수 없었다. 무슬림으로서 지킬 것을 지키고 살기는 했지만,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많은 여성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는 그녀의 이웃에 있는 새로 생긴 가정 사역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는 이미 꾸란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가 보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고, 믿는 자 A의 긍정적인 삶과 기도 응답에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이처럼 그녀는 호기심으로 인해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되었지만, 사랑과 믿음 때문에 예수님에게 끌리게 되었다. 그녀는 또한 꿈을 경험했고, 개종에 있어서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 테이프 같은 미디어의 역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2]

예수님은 기적적으로 그녀의 삶을 바꾸셨고, 그녀는 마음에 사랑과 믿음을 경험했다. 그녀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받아들여지는 것을 느꼈고, 박해를 경험해 보지는 않았다.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도 좀 있지만, 그녀의 가족과 친척들도 그녀의 믿음을 잘 알고 있고, 한 일 년 동안 그녀의 집에서 예수님을 찾는 20여 명의 여성들과 함께 모임을 갖기도 하였다.

분석
“사랑”과 “믿음”은 여성 1의 이야기에서 핵심이 된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거하고 그녀의 개종이 또한 그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이야기가 극적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녀의 삶에 일어난 기적적인 변화를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는 몇 몇 공동체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집을 다른 무슬림 여성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혹은 그 분을 향한 믿음을 갖도록 해 주는 곳으로 기꺼이 사용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성 1이 삶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3]

4.13 여자 2
이야기
여자 2는 많이 교육받지 못한 과부 (그리고 할머니)이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고, 일찍 결혼했으며, 1967년에 난민이 되었지만, 자신의 경험의 잘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일반적인 무슬림이었다고 말하는데 얼마나 성실히 기도하는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좀 이상하지만 그녀는 예수님이나, 모세, 무함마드가 다 선지자들이기 때문에 다 마찬가지이고, 무슬림들이나 그리스도인이나 예배하는 것에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꾸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후부터 그녀는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것은 그가 선지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영이 자신을 더욱 그렇게 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마을에서 여자 1이 말했던 “예수님이 계신 곳”을 발견하고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예수님이 주시는 유익을 더 많이 얻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한 번은 중풍 (혹은 그와 유사한 의학적 상태)이 왔는데 이 개인적인 위기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병 자체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그 상황과 관련하여 기도가 응답된 것이 개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꿈도 꾸었는데 그 내용은 지금 기억할 수가 없다.
그녀는 예수님도 강조했고 그 분의 진리의 말씀과, 테이프와 같은 미디어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도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녀는 스스로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찾아갔지만,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다른 여성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간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또한 어떤 한 신자의 삶 (아마도 믿는 자 A일 것이다.)이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녀는 삶이 편안해졌고, 더 안전함을 느끼고, 마음에 평안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그녀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녀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녀의 아들이 그녀의 기독교 신앙에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박해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병약했지만, 집에서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연계된 여성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었다.

분석
그녀의 이야기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여성 2는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려준다.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다 같다고 그녀가 말한 이유는 아마도 인터뷰 하는 동안 믿지 않는 그녀의 아들이 옆에 앉아있으면서 종종 자기 의견을 내 놓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녀가 개방된 질문지에 답한 것을 보면서 그녀가 정말 개종한 것인지 잠시 고민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한 것을 보면 기독교의 구원 역사와 신학에 필요한 주요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녀가 받은 제한적인 교육과 아들의 반대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부활 같은 것에 대하여)가 그런 염려를 낳게 한 이유인 것 같다. 이제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믿지 않는 친척이 동석한 자리에서 그녀가 두 질문지에 답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녀는 분명히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 받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할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4.14 여자 3
이야기
여자 3은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할머니이다. 무슬림이었을 때 그녀는 기도하고 금식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열심은 아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그녀는 개인적인 위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개종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한 다리를 쓸 수 없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가정에 그녀를 맡겼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은 그녀를 위해 기도했고, 그녀의 다리가 다 나았다. 수 십 년이 지난 후 그녀는 그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던 곳 주변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녀의 다리가 나았던 그 집은 당시 ‘예수님의 계시는 곳’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곳에 믿는 자 A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가서 자신을 소개하려는 마음이 들어서 한 친척을 데리고 그 곳에 갔다. 그들은 그 때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이 도착하자 믿는 자 A는 자신이 꿈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집에 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후 그의 요청대로 그녀는 다른 여성들도 그 곳으로 데리고 갔다.

믿는 자들의 삶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믿는 자 A는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위해서 기도했을 때 소소한 질병을 가진 여성들이 치유 받았고, 그는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주었다. 그는 또한 여자 3에게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수치스러운 죄에서 구원해 주신 구원자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것이 그녀가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는데,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의 메시지 역시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또한 응답된 기도와, 하나님께서 그녀의 삶에 기적적을 역사하신 것,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도 강조했다. 그녀는 꿈도 꾸었는데 (믿는 자 A가 그 꿈을 설명해 주었다.)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개종 이후, (정치적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경제적인 사정이 좀 좋아졌는데, 그것은 그녀가 딸의 직업을 위해 한 기도가 응답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믿는 자들의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그녀의 가정에서 30명 가량의 여성들이 모이는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박해를 경험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녀의 아들과 딸들은 텔레비전에서 예수 영화를 하는 동안 그녀가 돌봐야 할 손주들을 대신 돌봐주어서 그녀가 방해 받지 않고 그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했다.

분석
여성 3의 개종 이야기에는 긴 기간에 걸쳐서 일어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난 장소 (‘예수님이 계시는 곳’)와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믿는 자 A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초점은 예수님 그 분과 그 분의 사역에 맞추어져 있다. 실제로 그녀는 질문지에 답을 기록하면서 그녀의 죄를 사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그 중심에 있고, 그녀의 삶에 나타난 변화는 적어도 개종한 지 3년이 지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영적인 성숙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숙함은 재정적 어려움에 있어서 그녀가 믿는 자 A를 의지하기 보다는 주님을 더 의지하는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또한 (예수 영화를 보면서) 예수님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방해 받지 말아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에서도 나타난다. 많은 다른 여성들을 인도하는 모습에서도 물론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녀의 이야기는 초월적인 만남으로 인한 진정한 변화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15 여자 4
이야기
여자 4는 결혼한 여성으로 아이들이 영아 때 모두 죽었다. 그녀는 요르단에서 성장했지만, 결혼 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처럼 그녀도 기도도 하고 금식도 했다. 심지어 메카에 소(小)순례(이슬람에는 메카에 순례를 가는 정해진 때가 있는데 그 때에 가지 않고 다른 때에 다녀온 것으로, 순례하면서 하는 의식들도 정해진 때 하는 순례보다 약소하다. – 역자 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요르단에서 그녀 이웃에 살던 사람은 그녀를 종종 카톨릭 교회에 데리고 갔다. 그녀 남편의 친구들 대부분도 그리스도인들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평화롭게 함께 살았다. 어느 날 (무슬림) 가정의 친구들이 믿는 자 A를 그녀의 집에 데리고 와서 그녀는 그 때부터 “예수님이 계신 곳”에 다니기 시작했다. 믿는 자 A는 그녀가 꾼 꿈을 설명해 주었고, 그녀는 그가 그녀를 위해서 기도해 준 후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그는 그녀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그에 관한 테이프를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개종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 예수님의 존재와 그분의 진리의 말씀이라고 보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짊어지신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그녀의 삶을 바꾸셨다는 인정했는데, 그러한 그녀의 확신은 그녀가 여섯 자녀들을 모두 비극적으로 잃은 일을 말하는 과정에서도 볼 수 있었다. 개종 후에 다른 아이를 낳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을 잃은 현실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갖고 있었다.

개종 이후 그녀의 삶에 나타난 변화 역시 분명해서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그녀의 사랑에 보답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 에서 받아들여진 것을 느꼈고, 그녀도 그녀의 집에서 여성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4] 덧붙여 말하자면, 그녀의 남편과 조카도 기도의 응답으로 질병이 나았다. 그러나 그녀는 박해를 좀 경험했는데, 무슬림들에게 심문을 받기도 했다. 그로 인해 인터뷰한 그 날 가정 모임에서 사용하려고 했던 테이프를 압수당했다.

분석
신학적인 이해가 좀 부족한 것 같기는 하지만 여자 4의 이야기에서는 개인적인 변화가 가장 핵심이 된다. 그녀가 계속해서 카톨릭을 접했던 것이 개종하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는 그녀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을 만나면서 (그리고 믿는 자 A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여성을 가치는 아이를 낳는 것에서 찾는 문화에서 그녀가 여섯이나 되는 자녀를 잃고 보인 반응에서도 잘 드러난다.[5] 이와 함께 그녀는 믿는 자로서 사랑과 용납을 경험했고, 모임을 인도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한번 박해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녀의 집 환경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집에서 계속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타다 만 집 옆에 붙어있는 검은 비닐 텐트였다. 그녀의 삶에 나타난 (기적적인) 변화에 더하여, 그녀는 예수님과 그 분의 진리의 말씀이 자신의 개종에 특별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그녀가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모두 가져가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이해가 부족하지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진정으로 개종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4.16 여자 5
이야기
여자 5는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기혼 여성이다. 그녀는 대가족 출신이고 지금의 그녀 역시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그녀는 매우 열심 있는 무슬림이었는데 스스로 99% 종교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한 (무슬림) 이웃과 함께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느낀 사랑과 다정함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하게 되었고, 그 분이 누구신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기도가 응답 받는 경험을 하였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가르쳐주는 것에서 유익을 얻었으며, 그리스도인 이웃의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 그 분과 그 분의 진리의 말씀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녀의 삶이 좀 더 편해졌다. 믿는 자들의 공동체가 그녀를 환영했고, 인터뷰 당시 여자 4를 만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몇 사람들이 그녀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관계 맺는 것을 나쁘게 말했지만, 그녀를 박해하지는 않았고,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그 곳에 가는 것을 좋게 보고 있다.

분석
여자 5를 만났을 때, 그녀는 솔직하고 간단하게 개종을 증거했다. 불행히도, 포괄적인 질문지에 그녀가 한 답변은 그녀를 인터뷰할 때 옆에 있었던 여자 4의 것과 모두 같다. 여자 5에게 좀 다른 것은 순례나, 성경 읽기, 꿈 중 그 어느 것도 그녀에게 영향을 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을 할 때 그녀가 존경해 마지 않는 모임 리더와 같은 식으로 답변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그녀의 답변에 큰 비중을 두기는 어려운 것이 된다. 그녀가 죄의 문제를 동의하지 않은 것이나, 예수님이 자신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고 한 것들도 마찬가지로 그다지 신뢰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열린 질문지에 답변한 것으로만 미루어 보면,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서 답한 응답된 기도나, 기적적인 변화 같은 것에 있어서) 그녀는 삶의 변화에 대해 특별하다 할만한 것이 없다.

그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인도자의 예를 따르는 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가 삶에 변화를 일으킬 만한 예수님과의 특별한 만남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여자 5는 여전히 무슬림 여성이며 그러나 믿는 자들과 교제를 즐기고, 예수님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개종의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4.17 여자 6
이야기
여자 6은 이혼한 여성으로 많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그녀는 열심 있는 무슬림이었지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 몇 년 후, 두 번째 인티파다와 함께 그녀는 호텔에서의 일자리를 잃었다. 수입이 없어서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도 없었다. 그녀를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여자 4가 그녀에게 믿는 자 A를 소개해 주어서 그가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그 응답으로 하나님은 그녀에게 새로운 직장을 연결시켜 주었고, 새로 살게 될 곳도 생겼으며, 그녀의 아픈 딸도 고침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그녀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하나님이 그녀의 삶에서 행하신 기적적인 역사를 강조했다. 그녀는 예수님의 그녀의 죄를 십자가에서 모두 담당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가르치는 것에 큰 영향을 받았고, 예수님 그 분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자신의 개종의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그녀가 개종하면서 그녀의 아이들에게 살 길이 생긴 것에 더하여, 그녀는 믿는 자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인터뷰 당시 여자 4의 집에서 모임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곳에 모이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사람들도 그녀를 돌봐주고 있었다. 불행히도, 그녀의 집 주변에 옹기 종기 모여 있는 집들에 사는 사람들이 그녀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관련된 모임을 한다고 그녀를 경찰에 고발했기 때문에, 조만간 그녀는 집을 잃게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기도한 후에 그 집들을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를 찾아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했고, 매니저는 그녀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분석
여자 6은 여자 4가 (그리고 그녀 그룹의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은 그녀의 리더가 한 것과 다르고,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삶에 개입하신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다. 여자 6은 여자 4의 집에서 만나고 있는 여성들과의 교제에 매우 감사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하나님과 가지고 있는 관계는 다른 여성들과 갖는 관계와는 달리 좀 더 독립적인 것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한 것들을 그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으로 보이며, 위에서 설명한 그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그녀가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 만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죄를 모두 가져가셨다는 것에 그녀가 동의하지 않는 것은 여자 4의 경우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즉, 이해의 부족으로 보이며), 그렇게 볼 때, 여자 4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리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18 여자 7
이야기
여자 7은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결혼한 젊은 여성이다. 열 살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종교적으로는 다른 무슬림들처럼 기도하고 금식했다. 그녀가 성장해서 결혼을 한 후에 그녀의 어머니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가기 시작했다. 그녀도 어머니를 따라서 그렇게 했지만,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가기 보다는) 여자 4의 집에서 만나는 여성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호기심과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가르치는 것들을 접하고 난 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녀는 예수님의 존재와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중요한 개종 요소로 보았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녀의 남편이 어깨와 다리가 아파서 고생할 때 기도해서 많이 나았기 때문에 그녀는 기도가 응답된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게 된 후로 마음에 평화가 생겼고, 삶도 더 나아졌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더 잘하고 있고, 그녀는 직업도 갖게 되었으며, 믿는 자들도 그녀를 받아들여 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박해나 어떤 어려움도 당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가족 중 몇 명은 그녀와 함께 여자 4의 집에서 하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분석
여자 7 역시 그 모임의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변은 여자 5의 것과 같다. (따라서 여자 4의 것과 같은 것이다.) 즉, 그 모임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인터뷰 내내 상당히 강한 성격을 보여주었고, 열린 질문지에 답하면서 가치 있는 답변들을 제시해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로 인해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게 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스스로 선택해서 참석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을 그 모임에 데려오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열망이 바로 그녀를 개종으로 이끈 중요한 요소였다고 강조했고,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경험했으며 (또한 삶도 더 나아졌고), 그녀가 지금 누리고 있는 마음의 평안에 대해 말했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와 진실로 만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그룹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원에 대한 신학이 좀 약하기는 하지만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4.19 여자 8
이야기
여자 8은 제한적인 교육을 받았고, 최근에 과부가 되었다. 무슬림이었을 때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무슬림으로서의 종교를 지켰다. 요르단에서 남편과 오랫동안 살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는 믿는 자 A가 사람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해 준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의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믿는 자 A가 병원에 가서 남편을 위해 기도해주도록 하기도 했다. 얼마 후 남편은 죽었지만, 그는 믿는 자 A가 기도해서 좀 나아지기도 했었다. 그녀는 이후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정기적으로 나갔고, 그곳에서의 교육을 통해 유익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스도께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다른 믿는 자의 기도로 그녀 자신이 고침 받은 것이었다. 그녀는 또한 예수님과, 그 분의 진리의 말씀을 개종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그녀는 꿈도 꾸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6] 요약해서 말하자면, 예수님이 그녀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

그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녀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느꼈다. 그녀는 아직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고 있고, 여자 4의 그룹으로부터 감정적인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녀는 덧붙여 말하기를, 그녀가 신자들과 연계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그녀를 이길 힘이 없다고 했다. 사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을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분석
여자 8은 여자 4와 함께 인터뷰한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변들은 그 그룹의 다른 사람들과 매우 유사했지만 (그리고 같은 신학적 약점을 보였지만) 그녀는 분명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전에 남편을 위해 기도 했을 때 남편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편이 죽음에 이른 것이 그녀의 개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그녀가 그녀 개인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 특히 그녀가 고침 받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녀가 진리를 배워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기적적으로) 고침 받은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또한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분명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의미한다. 그러한 변화로 인해 그녀는 남편을 사별한 것도 잘 견디고 있고, 사람들은 그녀를 이길 힘이 없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20 여자 9
이야기
여자 9는 자신의 개종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소들이 한 신실한 신자가 한 역할과, 성경의 중요성, 특히 이슬람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여성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갈망이었다는 것 정도를 밝히는 것은 그녀가 한 요청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

분석
여자 9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변에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어떤 특별한 꿈이나, 치유를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증거는 그리스도가 그녀를 구원하신다는 강한 경외의 감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의 개인적인 관찰에 의하면 그녀가 진정으로 개종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4.21 여자 10
이야기
여자 10은 혼자 사는 독신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심한 학대를 받아서 수년을 한 기관에서 지냈다. 그 결과, 그녀는 신체적, 정신적, 교육적으로 고통 당했다. 그녀는 이슬람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었고, 신중하게 기도나 금식을 하지도 않았고, 꾸란을 읽는 것은 오직 그녀의 삶을 더 힘들게만 했을 뿐이었다.

어린아이로서 그녀가 한참 고통을 당하고 있던 중에, 한 무슬림 친척이 그녀에게 성경을 주었는데 그것은 단지 자신이 성경을 가지고 있기 싫어서 그랬던 것뿐이었다. 누군가 그녀가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어린이 전도자, 믿는 자 J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슬림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잘 몰랐었지만, 꼭 그를 만나보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고, 결국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일로 그녀가 바로 개종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한 독일 여성인 믿는 자 K가 그녀에게 만일 그녀가 예수님에게 마음을 열면 그분이 도와 주실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주님에게 기도를 드렸고, 그 분에게 자신을 내어드렸으며, 평안을 느꼈다. 후에 그녀는 믿는 자 K가 자신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믿는 자 K가 그렇게 한 것은 여자 10이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주님은 기적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하셨고, 현재 그녀와 믿는 자 K는 일반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믿는 자 J나 K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미치는 사랑의 영향력 이외에 성경을 읽은 것이 그녀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가 글을 읽는데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하나님의 개입으로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이해할 수 있었고, 거짓말하는 것과 같은 나쁜 습관들을 고칠 수 있었다. 그녀는 또한 그녀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시켜주는 꿈을 꾸었는데 이는 그녀가 어린 시절에 했던 부정적인 경험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다른 요소들은 이슬람에 대한 거절, 하나님에 대한 경외,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이다.[7]

그녀가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게 된 후, 삶이 점차 나아졌다. 건강도 더 나아졌고, 정신과 약을 먹지 않기 때문에 체중도 많이 줄었다. 처음에는 다른 신자들과 관계 맺는 것에 좀 어려움이 있었지만, 문제는 해결되었고, 신자들이 그녀를 환영하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그녀의 혼자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녀가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이 그녀가 교회 나가는 것을 비난했지만, 여자 10은 그렇다면 자신이 무슬림이었을 때는 왜 가족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결코 주님에게서 돌아서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가족을 사랑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의 간증을 듣고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석
여자 10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학대와 과체중, 약물에 의지하던 십대에서 혼자서 성공적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젊은 여성이 되었다. 그녀는 읽는데 겪었던 어려움도 극복했다. 거짓말을 그쳤고,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자신을 학대한 가족들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이 모든 변화의 유일한 이유는 그녀를 사랑하셔서 사랑 많은 신자들과 성경 그리고 꿈을 보내주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었다.

4.22 여자 11
이야기
여자 11은 잘 교육받은 독신녀였다. 그녀의 무슬림 가족들이 별로 신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정기적으로 기도하지는 않았지만 때로 금식을 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기 오 년 전에 친구인 믿는 자 L이 그녀에게 학문적인 도움을 좀 주면서 자신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여자 11은 좀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믿는 자 L과 일하면서 만난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예수님에 대해 끌리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예수님에 대해 듣게 된 모든 것을 믿었지만, 그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그녀는 가족의 허락으로 믿는 자 L과 함께 기독교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회의 내내 접하게 된 예수님의 신성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에 그녀는 설교자에게 그것에 대해 질문했다. 오랜 토론 끝에 그녀는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녀와 함께 기도하면서 그녀가 예수님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 아침 깨어났을 때 그녀는 비전을 보았는데, 주 예수님이 그녀의 가슴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녀 자신은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빛의 구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일 직후에 그녀는 믿는 자 L에게 달려가서 이 기적적인 꿈에 대해 말했다. 믿는 자 L은 그녀에게 예수님을 본 것은 그녀의 영적 삶의 첫 날이 밝아왔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해주었다. 여자 11은 그렇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한편, 그녀는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다음 한 해 동안 그녀는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고심했다. 혼란 가운데 점차로 그녀는 그 분이 누구시든지 그녀의 삶에 하나님을 원한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셨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녀는 예수님이 그녀를 떠나시지 말고 그녀를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그 때부터 그녀의 삶에서 그녀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다. 후에 그녀는 설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녀 안에 들어오셔서 예수님의 신성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그녀의 꿈과, 그녀의 삶에 기적적으로 역사하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이 그녀의 개종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녀는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그녀의 가족이 그녀가 예수님이 믿게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절 당하거나 박해를 당한 적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그녀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그녀의 가정에 기독교의 영향이 좀 있어서 그녀의 아버지는 신약 성경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다른 점은 그 가족들은 기독교에 대해 지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지만, 여자 11은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분석
하나님의 개입과 그 결과로 그녀의 삶에 일어난 변화가 여자 11의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을 한 것이 그녀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그녀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질문에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는 아직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그녀의 확신은 그녀의 방식대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그녀가 겸손히 하나님께 굴복하면서 지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이루어졌다. 믿는 자들도 돕는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그러나 믿는 자 L의 우정이 (그리고 초대가) 그녀를 꿈을 꾸게 되는 환경으로 인도하였고, 그녀의 개종을 이루어내려고 했던 그 설교자의 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자 11의 경우 핵심은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였고 그 변화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5 동일한 개종 요소들
각 개종의 이야기들이 독특하고 개인마다 개종으로 이끈 요소들이 다양하다. 동시에, 동일하게 중요한 점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두 이야기를 제외한 모든 이야기들이 개종의 본질적인 내용, 즉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어떤 개종의 요소들은 계속 반복되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는 개종의 요소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Duane R. Monette와, Thomas J. Sullivan, Cornell R. DeJong은 인터뷰한 내용을 분석하여 적용하는 것에 대해 알려주는데, 그들은 “문서 분석에 사용될 수 있는 코드 체계”를 제안하면서[8] 그러한 코드 체계는 대체로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한다. 첫째, 어떤 요소의 존재 혹은 부재, 둘째, 어떤 요소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하는 것, 셋째, 어떤 요소에 할애된 공간의 양, 넷째, 표현의 강도.[9]

내가 한 본 연구의 경우에는 특정한 개종 요소들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하는 것과, 그것에 할애된 공간의 양이 내가 만든 질문지에 크게 영향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네 가지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본 연구를 통해 발견한 것들 자체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연구 방법을 코드 체계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첫째와 넷째 영역을 합친다면 (즉, 어떤 요소의 존재 혹은 부재에 관한 첫째 영역과, 표현의 강도에 대한 넷째 영역), 본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것들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각 이야기에서 표현의 강조를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각 응답자들이 자신의 개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혔기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한 요인들의 내용을 목록으로 나타낸다면 각 응답자에 대한 주요 개종 요소들을 효과적이고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코드 체계를 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표 1 팔레스타인 남성과 여성의 주요 개종 요인들

주요 개종 요인들은 포괄적인 질문지에 응답자들이 답한 것을 바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요약과 분석을 통해 유출한 것이므로 각 응답자들의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10] 표 1은 응답자 남, 녀 각각에 대한 주요 개종 요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표는 응답자 그룹 전체의 특징들을 보여주는 이어지는 다음의 분석들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된다.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자들에 관한 연구: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 (III)에서 계속됩니다.

[1] Ant Greenham은 남아프리카에 있는 Durban 출신이다. 그는 Dallas에 있는 Criswell College에서 Biblical Studies로 MA를 했고, 미국 North Carolina Wake Forest에 있는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으로 PhD를 했는데, 논문은 이슬람에 대해 썼다. 그와 아내 사이에는 성장한 두 명의 자녀가 있고, 여러 명의 손주들이 있다. 현재는 그가 박사학위를 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2] 이 요소들은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대답한 내용이다. 그녀는 자신이 꾼 꿈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네 가지 요소들은 그녀의 개종에 관한 이야기에 잘 들어맞기 때문에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소들로 간주되었다.
[3] 포괄적인 질문지에서 그녀가 세례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와 아내를 여자 1의 집에 데리고 갔고, 또 통역도 해 준 남자 1은 세례는 예민한 문제이니 질문지에서 빼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고, 그래서 여자 2부터 여자 8까지는 그 문제를 묻지 않았다.(Ray Register와 믿는 자 A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 이들 중 대부분이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세례를 예민한 문제로 보는 것은 여성 1부터 8까지라기 보다는 남자 1인 것으로 보인다. 개종 자체에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세례가 개종의 중요한 지표인 것은 사실이다.
[4] 여자 4는 내가 그녀를 인터뷰한 날 여자5와, 6, 7 그리고 여자 8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녀들은 나의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하기 전에 여자 4가 인터뷰할 때 돌아가면서 참여했다.
[5]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떠나지 않은 것 (혹은 둘째 부인을 얻지 않은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아이를 잃은 여인이라는 것과 후손 (반드시 아들이 아닐지라도)이 없는 남자라는 수치가 그들을 짓눌렀을 것이고, 아이를 낳아 줄 다른 아내를 얻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된다. 나는 그 남편을 잠깐 동안만 만나 보았을 뿐인데, 그도 역시 믿는 자임이 확실한 것 같았다. 그가 믿는 자이기 때문에 아내를 떠나지도 않고, 다른 아내를 얻지도 않았을 것이다.
[6] 그녀는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하면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개종 이야기에 비추어볼 때, 꿈 꾼 것이 그다지 중요한 요소였던 것 같지는 않다. 그녀도 꿈을 설명하는데 아무 흥미도 느끼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에게 굳이 꿈을 설명하도록 요청하지 않았다.
[7] 이 네 가지 요소들은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변들이다. 그녀가 한 모든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이슬람에 대한 거절과 예수님의 존재가 더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드러난다.
[8] Duane R. Monette, Thomas J. Sullivan, and Cornell R. DeJong, Applied Social Research:Tool for the Human Services (New York: Holt, Rinehart & Winston, 1986), p.175.
[9] 위의 책, p. 181.
[10] 내용 분석과 코드화의 과정은 각 이야기들을 위에서와 같이 요약하는 과정에서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두 개의 질문지들을 함께 통합하면서 요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또한 그 요약들은 각 개종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정확히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