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8일 화요일

무슬림 개종자들에 관한 연구: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 (III)


원제: A STUDY OF PALESTINIAN MUSLIM CONVERSIONS TO CHRIST

6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개종 요인 분석
6.1 이슬람의 역할
다량의 연구를 분석할 때나 사용할 수 있는 통계적인 방법론을 본 연구에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정리해 본 개종 요소들은 눈에 띄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뿐이다.[2] 결과를 보면 어떤 개종 요소들은 전혀 나타나있지 않거나 혹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어떤 것들은 자주 반복된다. 팔레스타인 응답자들 그룹에 적용된 개종 패턴은 이와 같이 좀 덜 하게나 좀 더 눈에 띄는 영역들로 나타난다.[3]

소수의 응답자들에게 나타난 중요한 개종 요소들을 논의하기 전에, 전체적으로 빠져있는 요소를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응답자들은 개종 전에도 이슬람에 별로 깊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야 하기 때문에 기도하고 금식하기는 했지만, 무슬림 성직자였던 사람은 없었다. (이슬람에는 성직자 개념이 없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맘과 같이 전적으로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 번역자) 오직 한 명, 여자 4만이 메카에 한 번 다녀왔으나 그것도 소순례였다. 따라서 응답자들 중 아무도 개종 전에 강경한 무슬림이었던 사람은 없다. 남자 10은 스스로 자신이 좀 예외적인 경우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역시 이슬람뿐 아니라 기독교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있었고, 다른 방법으로 두 종교 모두에 끌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슬람만은 분명하게 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종자들의 약한 이슬람 배경은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있는 경우 개종이 힘들다는 가정을 어느 정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개종자 개개인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공동체적으로 보았을 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이슬람을 강하게 신봉하던 사람이 180도 변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경우는 없지만, 남자들 중 일곱은 개종 후에 죽음의 위협을 당했다. 이는 공동체가 개종자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공동체적으로 이미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미쳐지고 있음에도 개종자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있는 경우 개종이 힘들다는 말이 반만 맞는 말이 된다는 뜻이다. – 번역자)[4] 이 일곱 명 중에 여섯 명과 다른 여자 두 명(여자 1과 여자 9)은 개종 이후에 공동체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따라서 개종자들 자체에는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지만, 그들의 공동체 자체에는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개종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만큼 강한 영향력은 아니었다.[5]

또한 눈에 띄는 것은 대다수의 남자들이 죽음의 위협을 경험했거나 두려워한 반면,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공동체에서 거절 당하지 않았고, 아래에서 일부 개종자 여성들에게 미친 공동체의 역할을 정리해 보았다. 반면에 일부 남성들은 여러 다른 강도의 죽음의 위협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개종자들 자체는 강한 무슬림들이 아니었지만, 그들이 속한 공동체 (혹은 가족)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된 새로운 삶에 격렬하게 반응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죽음의 위협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사는 남성 무슬림 개종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6.2 현저하게 눈에 띄지는 않는 영역들
이제부터는 응답자들 중 소수만이 개종의 요소로 꼽았던 것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몇 명의 개종자들이 개종에 있어서 독특한 요소를 강조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인터뷰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개종 패턴에 크게 기여하지는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세히 논의되지 않겠지만, 조금만 다르게 표현된다면 아래의 표와 같이 더 눈에 띄는 요소들로 구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 3이 성령의 역할을 강조한 것과 남자 7이 하나님을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로 만난 것을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기적적으로 개입하신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남자 7이 그리스도인의 교제에 초점을 맞춘 것도 믿는 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는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여자 9가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도 성경 읽기라는 영역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는 한 사람(남자 8)만이 특별하게 언급하였다. 다른 분석자 같으면 둘을 제외한 모든 개종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가 영생에 대한 확신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하면서, 이 요소를 좀 더 강하게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대부분의 응답자들에게 적용되는 중요한 개종 요인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 별로 그런 것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은 개종의 중요한 요소로 보아야 할 것 같아, 아래에서 소제목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개종의 중요한 요인들은 여전히 소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몇 명의 응답자들이 언급한 것들이다. 그 요인들은 정치적 불안정과, 이슬람에 대한 거절, 기독교 미디어, 개인적 위기, 공동체, 하나님의 영광이다.

6.2.1 정치적 불안정
나는 정치적 불안정이 무슬림 개종자들이 그리스도께로 오게 되는 주요 원인일 것이라고 기대했었다.[6] 정치적 불안정과 연관된 절대적인 필요는 다소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이 많은 개종자들의 개종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세 응답자, 남자 4와, 6, 8은 정치적 불안정을 중요한 요소로 지적했지만, 이 세 남자들도 각각 그것을 다르게 보고 있었다. 남자 4는 고향마을에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공동체 사이의 긴장이 있는 가운데 자신이 무슬림 갱단에 들어간 것에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 6의 과거와 현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라는 사실에 그늘져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이슬람을 거절하고 계속되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인식하게 되었다. 남자 8은 체포된 후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고, 결국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7] 남자 4와 6, 8은 각각 다른 종류의 필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필요가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폭넓은 상황가운데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 그들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필요 가운데 만나게 된 예수님이 그 필요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경험은 어느 정도 개종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으나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정치적 불안정은 그들의 삶에서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라서 그것 자체를 개종으로 이끈 주요 원인으로 보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6.2.2 이슬람에 대한 거절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응답자들 중 아무도 개종 이전에 특별히 강경한 무슬림이었던 사람은 없었다. 사실 그들 중 여섯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이미 이슬람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들 중 둘(남자 6과 여자 10)은 그들이 이슬람을 거절하게 된 이유를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연관시켰다. 반면에 남자 4는 믿기 전에는 이슬람을 거절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개종하면서 이슬람을 거절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슬람에 대한 거절을 중요한 개종의 요인으로 꼽은 세 명 중에서 오직 남자 4만이 개종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을 거절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즉, 개종이전에 이슬람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개종의 과정에서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를 택하게 된 것이다. – 번역자) 또한 그가 바로 이슬람을 비판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나에게 조심스럽게 알려준 사람이다. 그는 그 자신의 경우나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이슬람에 대한 거절이 무슬림의 개종에서 중심 요인이 된다고 보지 않았다. 남자 4의 경우가 보여준 이슬람에 대한 거절이라는 독특성은 별개로 하더라도(남자 4는 이슬람이 싫어서 기독교를 택했다기보다는 기독교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한 경우이다 – 번역자), 다른 증거도 이 요인을 신중하게 보고 싶어했던 그의 생각을 지지해 준다. 적어도 반 이상이 꾸란의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으로 인해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이슬람의 경전에 대한 거절이 개종을 일으키는 주요 요소가 아님을 말해준다. 또한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독자적으로 그리고 종종 개종의 결과로 이슬람으로부터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경우 개종 이전에도 강경한 무슬림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개종하게 된 것은 이슬람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2.3 기독교 미디어
기독교 미디어는 다섯 명(남자 1, 8, 10, 여자 1, 2)의 경우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미디어의 종류는 다양했고, 각자에게 다른 영향을 미쳤다. 남자 1은 비디오로 된 성경 교재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이것이 그에게 미친 영향은 그가 정말 개종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자 8은 그의 친구 남자 7이 가지고 있는 문서들을 읽었다. 그러면서 그는 성경까지 읽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남자 10은 어린이 성경과 기독교 텔레비전을 접하게 되었는데 둘 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린이 성경을 통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품게 되었고, 기독교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다. 여자 1과 2는 모두 기독교 테이프의 역할을 강조했다. 테이프가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고 받아들이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 가지 특별한 기독교 매체가 개종의 도구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예수님이 계신 곳’ 역시 특별한 유형 없이 여자 1부터 8까지 (그리고 남자 1에게 역시) 여러 모양으로 영향을 미쳤다. 오디오 시각 자료가 분명 일반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아마도 대부분의 개종자들이 제한적인 교육을 받았고 따라서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오디오 시각 기독교 매체는 거기에 있는 모든 응답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8] 그러나 여자 1부터 8까지 계속해서 그러한 미디어의 유익을 얻는다고 해서 미디어가 반드시 중요한 개종의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미디어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지는 않았다.

또한 주목할만한 것은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던 네 명의 개종자들이 미디어만을 독립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9] 그들은 기독교 미디어를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나, 성경 읽기, 혹은 예수님의 존재와 같은 요소들과 연결시키고 있다.[10] 따라서 다양한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소수의 개종자들에게 대체로 보좌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6.2.4 개인적 위기
개종자들 중에 일곱이 (즉,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 삼분의 일 정도가) 개인적 위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자세한 사정은 각각 다양했지만 유사성을 찾아볼 수는 있다. 여자 2와 3은 개인적 위기의 상황에서 기도가 응답 받았다는 것을 강조했다.[11] 여자 2는 심각한 의료적 상황에서 구원 받았고, 여자 3은 그녀가 어렸을 때 신체적으로 쓸 수 없었던 부분이 고침 받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녀가 그 경험을 했던 같은 장소(‘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영적으로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 일을 회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자 3이 어렸을 때 한 경험이 후에 그녀가 개종할 때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자 10의 어렸을 때부터 계속된 어려움은 개종 전부터 있는 일이었지만, 그러한 시련을 통해 그녀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된다.

남자 2와 남자 9는 모두 개인적인 절망의 상황에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남자 2는 마음의 공허감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남자 9의 경우에는 첫 인티파다와 함께 온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의 영적인 순례는 이미 극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12]
남자 8의 위기 역시 절망과 과 관계되어 있지만, 그의 경우에는 좀 더 신체적인 것에 대한 것이다. 차를 운전하고 가던 중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에 의해 그가 길에서 벗어나 죽게 되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다. 남자 11의 경우에는 신체적인 위기가 특징이다. 그는 총에 맞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러한 호된 체험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열한 일곱 개의 위기 경험을 더 이상 분리 분석하려는 시도는 별로 현명하지 못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위기가 이전에 일어났건, 개종 당시의 상황이었든, 개종자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갔든 그렇지 않든 간에 각각의 위기가 관련된 개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6.2.5 공동체
여자 2와 7의 경우에 공동체의 역할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는 좀 더 광범위한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 양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예수님이 계신 곳’ 사역의 영향을 받은 인터뷰한 여덟 명의 여성들 중 일곱 명이 (여자 2부터 8까지) 그들의 가족이나 공동체에 의해 믿도록 격려 받았다고 말했다.[13] 또한, 이 일곱 명은 그들의 개종 후 그들이 속했던 공동체가 그들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자 5의 경우에는 그녀의 무슬림 공동체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 이라는 단체도 배척하지 않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자 4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대답들이 여자 5부터 8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대답한 것들을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할 지라도, 그러한 영향 자체가 공동체가 그들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여덟 번 째 (여자 1부터 세었을 때) 여자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의 사역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공동체의 영향을 받은 하위 그룹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여자 1부터 여자 8까지 모든 이야기들은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에 대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이 다른 (무슬림) 여성들을 통해서 혹은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었음을 알려준다. 심지어 여자 1까지도 (그녀는 가족이나 공동체의 격려도 받지 못했고, 이후에는 공동체로부터 거부당하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이 계신 곳’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그 곳에 갔다. 따라서 여자 1부터 8이 그리스도인과 연결되기까지 공동체는 그들의 개인적인 개종 이야기에서 드러난 것 보다 더 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지역에서도 그러한지 좀 더 연구가 이루어진 후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연구는 (개종자 개인보다는) 몇 개의 그룹을 조사해서 공동체적 요소의 강점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14] 그런 연후에나 여성 하위 그룹(즉 여자 1부터 여자 8)에 미친 공동체의 중요성을 좀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2.6 하나님의 영광(명예, honor)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자주 언급된 부분이다.[15] 그러나 개종자들 중 하나님의 영광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16] 그러면서도 모두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고, 또한 예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영광스럽게 느낀다고 모두 고백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영광(명예)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응답자들의 개종 경험에서 두드러진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필자의 이 특별한 질문 (즉,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질문-번역자)이 그들의 뭔가를 건드린 것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인터뷰한 사람들 중 열 명이 그들의 개종에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꼽았다는 사실이다. 아크람 알라(أكرم الله )는 아랍어로 가장 존경할만한, 특별히 고귀한 존재로서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17] 이는 매우 기본적인 신학적 진리를 보여주고 있으며, 아랍 무슬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을 달리 어떻게 보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열 명의 인터뷰한 사람들 중 몇 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개종의 요인으로 보지 않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너무나 당연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18] 결론적으로, 내가 모은 모든 정보들에 비추어보았을 때 열 명의 개종자들이 하나님을 영광을 강조한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즉, 남자 2와 6, 여자 1과, 2, 3) 그것이 더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19]

하나님의 영광이 하는 역할에 대해 분명히 알기가 어려운 것은 개종자들이 의미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말이 거의 나오지 않았고, 그들 중 아무도 그들이 포괄적인 질문지에서 답한 영광과 관계된 것들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20] 개종자들 중 아무도 영광에 대한 성경적인 신학 (그것이 명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본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이슬람에서 말하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어느 정도는 성경적인 의미의 영광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그 그룹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개종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다. 개종 전후에 영광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초점을 맞춘 다른 질문지를 만들어서 조사한다면 아마도 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21]

6.3 현저하게 눈에 띄는 영역들
이제 응답자들 대다수가 중요하게 여긴 개종 요소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요소들은 성경읽기, 믿는 자들의 역할,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 예수님 그분 자신이다.

6.3.1 성경 읽기
일곱 명의 사람들이 (남자 1을 포함하면 여덟 명이) 성경 읽기를 중요 개종 요인으로 보았다. 이는 (대부분이 이 요소를 중요하게 본) 남성들과 (대부분이 그렇지 않게 본) 여성들 사이에 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교육 수준이 좀 더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 요소를 가조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즉, 남자 2, 3, 7, 8, 9, 그리고 여자 9) 개종 당시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는 필시 성경읽기를 좀 더 용이하게 하여주었을 것이다. 비록 남자 3의 경우에는 처음 성경을 읽을 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Margaret K. Nydell는 이 주제에 대해서 가치 있는 정보를 제시해 준다. 그녀는 아랍어 구어와 문어(즉 문자로 기록되는 아랍어로 전통 아랍어 혹은 표준 아랍어라고 불린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하면서, 문어를 배우게 되는 사람이 겪게 되는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사람은 표준 아랍어에서 새로운 단어들을 배워야만 한다 … 어미도 다르게 변하고, 새로운 동사 형태 등 전혀 새로운 문법을 배워야 한다.”[22] 그녀는 또한 덧붙이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5년 내지 6년 정도만 학교를 다녔다면, 그 사람은 읽고 쓸 줄 안다 할지라도 여전히 “기능적으로는 문맹” (자기 이름을 서명하거나, 서명을 읽는 것 같은 초보적인 필요 이상으로는 문어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이다.’ 하고 말했다.[23] 따라서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개종자들이 성경 읽기를 통해 중요한 유익을 얻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성경읽기를 중요하게 본 세 사람, 남자 5와, 11 그리고 여자 10은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따라서 이는 좀 놀라운 사실이지만, 그들의 독특한 상황을 통해 그들이 왜 성경읽기를 강조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남자 5는 그가 어렸을 때 꾸었던 꿈에 나온 구절을 성경에서 발견해냈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이 아마도 그에게 계속 성경을 읽게 하고 또 그것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남자 11은 그가 처음에 성경을 집중적으로 읽었을 때는 많이 이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24]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이 그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여자 10은 그녀가 읽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했지만, 오랜 기간을 거쳐 하나님의 개입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25] 그녀 역시 그렇게 하면서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체험하였다. 따라서 이 개종자들에게는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경험이 특별히 성경읽기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차원의 성경 읽기는 남자 5와 11, 그리고 여자 10에게만 제한된 것은 아니다. 더 많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남자 2는 성경이 진리일 뿐 아니라 살아있다고 강조하면서 그의 사고 방식이 전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남자 3은 처음에는 성경에서 많은 것을 얻지 못했지만, 성령님의 역할을 통해 성경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남자 7은 신약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것에 매료되었는데, “무엇인가”가 그를 더 공부하도록 만들어서 그는 마침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었다.[26] 남자 8은 성경을 읽으면서 그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남자 9는 꿈 같은 경험을 한 후에 그 경험을 바르게 세워주는 신약을 집중적으로 읽었고, 그러면서 성경에 대한 갈망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여자 9는 여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간과할 수 없었고,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요약하자면, 성경읽기에서 누가 유익을 얻는가 하는 문제는 읽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남자 10이나 여자 11의 경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읽을 줄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경의 유익을 얻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27] 따라서 성경읽기를 강조한 아홉 명의 개종자들은 읽는 데 좀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한 경험으로 인해 성경읽기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지적이거나 정보 수집의 차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28] 본질적으로, 각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혹은 다 읽은 후에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경험했다. 이와 같이 성경 읽기는 그룹 전체의 거의 반수가 매우 중요한 개종의 통로로 여기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6.3.2 믿는 자들의 역할
믿는 자들의 존재는 대부분의 개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러 개인이 관여되어 있고 경우에 따라 그들의 역할이 다양하다. 어떤 개종자들은 특별히 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고, 반면 다른 이들은 몇 명을 통해 개종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게 쓰임 받는 믿는 자들은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고, 외국인이나, 현지인일 수도 있다. 그들이 다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들도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 개종자를 위해 쓰임 받는다. 그들의 영향은 그들의 삶과 그들이 선포하는 복음과 갖는 우정에 따라 다양하다.

연구의 초점이 개종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믿는 자들이 개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이 논의 되었다. 믿는 자들이 어떤 사역 방법을 사용했는가 하는 것보다는 개종자들의 설명을 중심으로 논의 되었다.[29] 또한, 한 사람이 개종하기까지 많은 사람의 영향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만 언급되었다. 따라서, 위에서 알파벳으로 소개된 사람들 중 (믿는 자 A부터 L까지)일부는 아래의 논의에서 빠졌을 수도 있다.[30] 그러나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개종자의 설명에 필요할 때는 아래에서 언급하였다.

믿는 자들의 역할은 여성 그룹과 남성 그룹에서 각각 여섯 명이 이 요소를 강조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즉, 남자 3, 4, 5, 6, 7, 9, 여자 1, 3, 4, 9, 10, 11)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다.[31]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영역구분은 남자 7이 관계를 강조한 것은 믿는 자들이 그의 개종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 믿는 자들이 남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32]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 개종자들 역시 남자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믿는 자 A는 여자 1과 3 그리고 4의 개종 설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공개되지 않은 여자 9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도 남자이다. 심지어 독일 여성인 믿는 자 K에게 특별한 영향을 받은 여자 10 역시 남자 전도자인 믿는 자 J와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다.[33] 이와 같이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남자 믿는 자들이 영향을 미치는 경향인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이 무슬림 여성들에게 효과적인 사역을 했다는 사실은 다소 놀랍다. 그러나 여성들의 설명 어디에서도 남성 전도자들이 부적절하게 행동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조금도 없다. 이 남성들의 삶은 분명하게 그들을 변화시키신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고, 여성들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중요한 역할을 한 남성 믿는 자들은 그들의 사역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서 여성들이 제외되지 않도록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34]

성별에 대한 것은 그렇다 치고, 응답한 개종자들 모두가 그들이 만난 믿는 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면에서) 각각 다른 종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남자 3은 믿는 자 C를 어떤 특별한 것을 가진 사람으로 보았다. 남자 4는 믿는 자 E가 어떻게 더 좋게 변화되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남자 5는 믿는 자들의 도덕적인 깨끗함을 좋아했다. 남자 6은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했다. 그들이 무슬림들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남자 7은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에 감동을 받았고, 믿는 자 H의 집에서 그것을 경험했다. 남자 9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어떤 다른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온유함, 자비, 헌신과 사랑이었다. 여자 1은 믿는 자들의 사랑과 믿음에 끌렸다. 여자 3은 믿는 자 A의 기도와 가르침, 실제적인 도움에 감동을 받았다. 여자 4는 믿는 자 A의 기도와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35] 여자 9는 그녀에게 말했던 진실로 믿는 자와 그녀가 이전에 알고 있었던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간의 차이를 강조했다.[36] 여자 10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많은 영향 아래로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여자 11은 믿는 자 L의 친구가 되고 도움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그것을 강조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믿는 자들의 삶의 질이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도 믿는 자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었다.

6.3.3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열 여섯 명의 응답자들이 (남자 8을 포함하여, 그의 확신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중요한 개종 요소로 보았다. 여덟 명의 남자들과 여덟 명의 여자들이 그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되기까지 이 요소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언급했다. 그러나, 각 사람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 중요성을 다르게 지적했다.[37] 각각의 설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설명해 놓았다. 몇 명의 응답자들은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더 알기를 원했고, 그것에서 그들이 찾던 것을 찾았다. 남자 2의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충족되었다. 남자 7의 진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기독교인들간의 교제를 통해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루어졌다. 여자 1은 예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 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여자 7의 예수님을 더 많이 알고 싶은 호기심과 욕구 역시 ‘예수님이 계시는 곳’의 가르침을 통해 만족되었다. 한편, 남자 9와 남자 10은 개종 전에 진리를 좀 알았지만,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남자 9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이해했지만, 그가 꿈 같은 체험을 한 후에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남자 10은 좋은 무슬림이 되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부활절 토요일에 그리스도와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간절함과 호기심에 더하여, 남자 7과 여자 1, 여자 7은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 상황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랬다. 남자 4는 기독 청년회 사역에서 유익을 얻었다 (그곳 사람들의 삶이 달랐기 때문이다.) 남자 6은 믿는 자 G와 만났을 때 그의 ‘자정 후’ 경험 이후에 예수님에 대하여 배웠다. 여자 4는 카톨릭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나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믿는 자 A에게서 받은 진리와 그가 그녀에게 준 테이프에 대해 말했다. 여자 6 역시 ‘예수님이 계신 곳’의 가르침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른 응답자들은 예수님의 진리가 그들에게 미친 영향을 강조했다. 남자 5는 성경에 대한 관심이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성경이 영적 양식이라는 것을 경험했고,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 8은 성경과 기독교 문서를 읽은 후 그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알았으며 그가 잃었던 것을 찾았다고 느꼈다. 그가 탄 차가 길 밖으로 밀려나가는 경험 후에 더욱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여자 2는 예수님에 대해 배웠으며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친척 앞에서도 주장할 정도까지 되었다. 여자 3은 예수님이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죄의 수치를 가져가신 구원자라는 귀한 진리를 깨닫고 마음이 움직였다. 여자 8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그녀의 개종과 계속된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여자 9는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요약하자면, 이미 예수님의 진리에 대해 호기심과 갈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그 진리를 찾던 사람이나, 그렇지 않던 사람이나 모두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발견했다. 그러한 발견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법을 통해 (신자들을 통해서나, 기독교 미디어, 혹은 성경을 통해서) 일어났다. 그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각 개종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다.[38] 오직 몇 명의 개종자들만이 그 진리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렇지만, 깊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은 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말씀은 그리스도와 만난 열 여섯 명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그 후 그들의 삶이 변했다.

6.3.4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
열 네 명의 개종자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강조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남자 3의 성령님에 대한 관심과, 남자 7의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발견은 하나님의 개입하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포함할 경우는 그 경우는 열 여섯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여덟 명의 남성들과, 여덟 명의 여성들은 각각 다르게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경험했다. 다음의 내용은 각 개종자들이 한 독특한 경험을 폭 넓게 진술하고 있다. 어떤 틀 안에 집어넣지 않고 여러 모습으로 그려보았다.[39]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강조한 몇 명은 매우 감동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 5는 어린 시절 비전으로 보았던 말씀을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성경에서 찾아내고서는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남자 11은 성경을 읽고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다. 여자 3은 ‘예수님이 계신 곳’과 관계하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자 6은 새로운 일거리와 새 집, 그리고 딸의 병을 위해 기도하다가 기적적인 응답을 받고 마음이 움직였다. 여자 7은 남편을 위한 기도가 응답 받는 것을 보았고, 삶에 매우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여자 8은 다른 신자의 기도를 통해 치유를 경험했다.[40] 그러나, 각 경우는 모두 개종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자신들이 인격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남자 2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긍정적으로 변했고, 그의 가족은 그의 삶에 일어난 변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남자 3의 점차적인 개종은 그가 갈구했던 믿음과 사랑을 성령님께서 주심으로 그 정점에 도달했고, 성령님께서 그가 참 신자임을 확신시켜주셨다. 남자 4는 예수님께서 그의 삶을 기적적으로 변화시키심으로 훨씬 덜 호전적이 되었다. 남자 7은 매우 간절하게 하나님을 그의 영적인 아버지로 받아들였고, 그의 성격이 변화되었다. 여자 4는 여섯 명의 자녀들을 잃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통해 그녀의 삶에 일어난 기적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 여자 10은 매우 큰 변화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그녀의 힘든 배경에서 구원 받았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강조한 다른 사람들 모두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그들을 변화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 9는 평안과 위로를 느끼게 해 준 꿈 같은 경험을 통해 믿기로 결심하고 그리스도께로 왔다. 남자 10은 성령님께서 그의 성격을 변화시키시는 폭발적인 경험을 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을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여자 1은 기도의 응답에 감명 받고,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그녀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통해 사랑과 믿음을 경험했다. 여자 11은 꿈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지만, 기적적으로 내부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 분의 신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그룹이 경험한 것들은 전형적으로 모든 개종자들의 경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종은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인 것이다. 그러한 만남은 개종자에게 감명을 주고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요소들, 즉, 신적인 감동과 변화는 그들이 그 경험에 대해 “제대로 표현” 했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진실로 개종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이 (즉, 변화를 일으키는 만남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 열 여섯 명에게 큰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41] 또한 동시에, 각 경험의 독특성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 본질상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은 하나님 자신의 산물이다. 그 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게 계시면서, 그리고 개종의 본질도 그래도 남아 있으면서, 하나님은 각 개인을 모두 다르게 다루신다.

눈에 띄는 다른 요소로 넘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과 깊게 연관된 일면이 눈길을 끈다. 많은 응답자들이 개종과 관련하여 꿈이나 꿈 같은 경험을 했다. 몇몇은 그 경험을 개종 이야기의 일부로 다루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마친 후 (포괄적인 질문지를 통해) 질문을 받고서야 그 경험에 대해 말했다. 이러한 현상이 제시해주는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남자 3과, 5, 6, 9, 10, 11과 여자 11은 꿈 같은 경험을 그들의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제시하였다. 남자 3은 “영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상태로 그 자신이 위해서 기도했던 믿음과 사랑을 받는 것을 보았다. 남자 5가 어렸을 때 보았던 천사의 비전이 그가 후에 개종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남자 6은 그의 “한 밤중”의 경험에서 예수님이 자신에게 오셨다고 결론지었다.[42] 남자 9는 평안과 위로의 느낌이 그에게 왔을 때 그리스도께 신앙을 고백하였다. 남자 10의 개종은 마치 “하나님의 영이 그의 머리에 임하시는 것”과 같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폭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남자 11은 몇 가지 꿈을 꾸었는데, 확신을 주는 꿈을 기점으로 하여 그의 삶을 변화시킨 성경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여자 11은 예수님이 그녀의 가슴을 가리키시는 비전을 본 것이 개종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대부분의 꿈 같은 경험들은 본인들이 깨어있는 동안에 일어났다. 그렇기에 더욱 그 독특함이 개종자들의 마음에 새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식적인 상태와는 별개로, 각 개종자는 그 경험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이었다고 확신했다. 더 나아가, 그 비전들이 모두 응답자들이 개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개종자들이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 자세한 내용을 말한 것이다.[43]

한 편, 남자 4와 8, 여자 1과, 2, 3, 4, 8, 10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꿈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꿈들이 개종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자 4가 부모님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 후 예수님을 보게 된 것 분명 격려가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비전이 그를 개종으로 이끌었다기 보다는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도 아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꿈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은 것 같다.[44]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던 여자 10의 꿈 역시 그녀의 개종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했다기 보다는 개종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 역시 그 꿈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요소들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집중하느라고 그런 것이었다.[45] 다른 사람들은 심지어 꿈에 더 적은 중요성을 두었다. 개종자들 중 아무도 꿈의 자세한 내용에 관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만 말하였다: 남자 8은 자신이 카펫 위에 앉아 있는 꿈을 꾸었는데 카펫이 자신을 들어올리더니 그의 위에 있는 빛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여자 1은 촛불이 켜져 있는 교회에 있는 꿈을 꾸었다. 여자 2는 꿈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믿는 자 A가 그 꿈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었다고 말하였다. 여자 3은 뱀과 물에 관한 꿈을 꾸었는데 믿는 자 A가 그것을 예수님에 비추어서 설명해 주었다.[46] 여자 4는 두 눈 사이에 어떤 침을 맞는 꿈을 꾼 후 매우 지쳐 있었는데 믿는 자 A가 그녀를 위해 기도한 후 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47] 마지막으로 여자 8은 그녀가 꾼 꿈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후자에 설명한 꿈들은 응답자들에게 꿈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들이 말할 만큼의 중요성은 가지고 있는 꿈들이다. 이는 이슬람에서 꿈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반영해 준다. 동시에, 이 꿈들은 일상적인 방법으로 (예를 들면, 그들이 자는 동안) 일어났다고, 또 삶을 변화시키는 만남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꽤 평범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꿈을 꾼 시점이 개종자들에게 중요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그 꿈들이 개종자들의 삶에 좀 더 중요한 (개종과 관련된) 발전을 가져왔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럴 경우, 그 꿈들은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닐지라도) 응답자들의 개종 경험에 이차적인 역할은 충분히 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개종자들이 처음에 이야기할 때에는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질문에 답하면서 그 꿈들을 기억해 낸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개종자들이 그들의 꿈들에 둔 다양한 중요성들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 한다. 개종과 관련된 꿈의 (혹은 꿈 같은) 경험이 자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개종자들 중 일곱은 꿈을 꾼 경험을 그들의 이야기에 포함시켰고, 여덟 명은 그러지 않았다.[48] 전자의 사람들에게는 그 꿈의 경험이 확실한 하나님의 개입이었고, 개종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러나 후자의 사람들은 그 꿈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꿈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더 큰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꿈이나 꿈 같은 경험들은 그 꿈이 개종자에게 변화를 일으키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때에 만이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다가왔다.

6.3.5 예수님
가장 중요한 개종의 요인은 예수님 그분이셨다. 모든 응답자들이 한 명도 예외 없이 예수님을 강조했다. 심지어 개종여부가 불확실한 남자 1과 여자 5 조차도 이 요인을 강조했다.[49] 이는 개종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이 바로 사람들의 순종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나게 되는 분이다. 예수님 없이는 개종이란 없다. 개종자들은 이유 없이 예수님을 강조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각 개종 경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다음에서는 각 개종자의 설명에 나타난 예수님의 중요한 역할을 다양한 상황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개종자들은 그들이 예수님과 만나게 된 것과 관련하여 지적인 요소를 이야기했다. 남자 3은 단계적으로 예수님에게 다가가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자 7은 신약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 8은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자 2는 하나님의 영이 강권하여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고,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마음과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되는 유익에 만족하였다. 여자 3은 예수님이 죄의 수치를 없애신 구세주라는 중요한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자 7의 예수님을 더 알고자 하는 갈망은 ‘예수님이 계신 곳’의 가르침을 통해 채워졌다. 여자 9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게 된 질문들은 그녀로 하여금 예수님께 부르짖게 하였고, 자신이 어느새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50]

다른 개종자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하였다. 남자 5는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 6은 그의 “자정 이후” 경험과 그 이후에 배우게 된 것들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 10은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부활절 전날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여자 1은 사랑과 믿음으로 인해 예수님에게 끌렸다. 여자 4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의 사랑 가득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여자 10은 자신을 사랑하신 예수님에게 마음을 열고 그분이 주시는 평안을 경험했다. 여자 11은 (꿈을 꾼 후) 예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 스스로 복종하게 되면서 그분의 신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과 만남에서 경험한 것들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 남자 2는 자신의 삶에서 예수님이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 변화되었다. 남자 4는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그의 삶에 받아들였을 때 눈에 띄는 변화를 경험하였다. 남자 9는 예수님에게 감동 받고, 열렬히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남자 11은 성경을 읽으면서 경험하게 된 기적적인 치유를 통해 예수님께로 돌아서게 되었다. 여자 6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삶에 기적적으로 역사하신 것에 대한 배경으로서 예수님을 강조했다. 여자 8은 예수님을 믿게 된 결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느끼게 되었다.

여기서 제시된 지적인 요소와, 사랑, 경험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단지 개종자들이 예수님과 만나게 된 다른 면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각각의 경우에 그 자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예수님이 그 중심에 계시다. 그분이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으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모든 요인들 중에 가장 중요한 개종의 요인이 되신다.


7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개종 패턴
7.1 연구 결과
위에서 논의된 개종 요인들은 표 1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여기에 제시된 각 요인들은 특별한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눈에 자주 띄는 요인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표 2는 이와 같이 인터뷰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개종하게 된 핵심 요인들을 가장 눈에 띄는 요인들부터 차례로 제시해주고 있다.[51]

7.2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개종하게 되는 핵심 요인들
이제 팔레스타인 개종자들의 패턴에 대한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모든 개종자에게 적용되는 단 하나의 요인은 있을 수 없다. 각각은 몇 가지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어떤 요인들은 다른 요인들보다 좀 더 자주 등장했다.[52]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그리고 믿는 자들의 역할이었다. 이 각각의 요인들이 많은 개종자들에게 적용된다. 여성과 남성에게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에 있어서 성별상의 특징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성경읽기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이 적용되었지만, 이는 교육 수준에 의한 것이지, 성별의 차이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과 여성들 차이에 작은 차이들은 있다. 그러나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예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개입, 예수님의 진리 및 믿는 자들의 역할의 중요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을 파노라마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그 중심에 계시다. 개종자들은 다른 방법들을 통해 예수님에게로 이끌린다. 이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 진리의 말씀, 믿는 자들의 역할, 성경읽기 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항상 그 중심에 되신다. 이것이 나의 연구를 통해 가장 광범위하게 드러난 패턴이다.[53]

8 무슬림들을 향한 선교: 확증, 오해, 발견

표2. 핵심 개종 요인들
이 연구 초기에도 언급했듯이, 무슬림 사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순교의 위험을 포함하는 상당한 장벽들을 가지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며, 설문에 응한 대부분의 남성 개종자들이 죽음의 위협을 경험했거나, 두려워했다고 답하고 있다. 무슬림 선교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점이 힘든 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개종자들의 생명이 사방에서 위협당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종하는 무슬림들이 정말 있다. 개종은 변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개인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향해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분을 만나게 될 때 일어나는 일이다. 각 팔레스타인 개종자들의 설명은 이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분석되어졌고, 대부분의 경우 진실한 개종으로 보인다. 개종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다른 곳에서 개종했다고 하는 무슬림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개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무슬림들이 그리스도를 향하게 되는 데는 다른 요소들이 사용되었다. 각 개종은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방금 말했듯이, 나의 연구는 다른 요소들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어떤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슬림 개종에 대한 문서들에도 등장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낯설지는 않은 것들이다.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신적인/인간적인 협력이 동원된다. 개종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예수님은 개종이 일어나도록 일하신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기까지 믿는 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성경적 진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문맹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성경의 증거하는 예수님은 다른 방법으로도 제시될 수 있다.[54] 이 과정이 좀 길어질 수도 있지만, 믿는 자들이 일관적이고 신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55] 동시에 개종자들은 신실하게 예수님에게로 돌아섰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 요약하자면, 그들이 만난 예수님은 개종이 일어나게 하는 최종적인 단계였다. 그 분이 기적적으로 중재에 나서실 때 단연 절대적인 특권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 분은 분명 다른 요인들을 활용하셨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예수님과 별개로는, 즉 독립적으로는 돌아설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각 개종은 변화를 일으키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개종 전에 이슬람에 깊이 헌신되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강한 무슬림들이 후에 믿는 자들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바가 없다. 일부 열정적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서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개종자들이 개종 이전에 이슬람에 별로 헌신적이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무슬림들이 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 걸음을 떼어서 이슬람을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슬람이 싫어서 그리스도께로 온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한 거절은 기독교와 관계없이 일어나거나 예수님과 만난 다음에 일어났다. 주요 개종 패턴은 사람들이 이슬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리스도께로 돌아선다고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종자들을 보고 싶다면 이슬람을 공격하지 말고, 대신 무슬림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여야 한다.[56]

마지막으로, 선교신학자들은 내가 꿈들에서 발견한 것을 유용하다고 볼 것이다. 열 다섯 명의 팔레스타인 응답자들 중에 반 조금 못 되는 사람들이 설명하는 과정에서 꿈 같은 경험을 언급했다. 그들은 그 경험이 그들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말한다. 꿈과 개종을 연결시켜 말한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만남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꿈이나 꿈 같은 경험들은 그것이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여는 주요 수단이 되었을 때에만 중요하게 취급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꿈에 대한 통찰은 다른 곳에서도 똑같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연구자들은 개종자들의 꿈 (그리고 다른 현상들)을 다르게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 같은 경험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개종의 본질적인 요인은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있기 때문이다.

참고.
Greenham, Anthony Bryan, ‘Muslim Conversions to Christ: An Investigation
of Palestinian Converts Living in the Holy Land’ (Ph.D.
diss.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2004)
Monette, Duane R., Thomas J. Sullivan, and Cornell R. DeJong, Applied
Social Research: Tool for the Human Services (New York:
Holt, Rinehart & Winston, 1986)
Musk, Bill A., ‘Dreams and the Ordinary Muslim’, i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16 (1988)
Nydell, Margaret K., Understanding Arabs: A Guide for Westerners
(Yarmouth, ME: Intercultural Press, 1987)

[1] Ant Greenham은 남아프리카에 있는 Durban 출신이다. 그는 Dallas에 있는 Criswell College에서 Biblical Studies로 MA를 했고, 미국 North Carolina Wake Forest에 있는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으로 PhD를 했는데, 논문은 이슬람에 대해 썼다. 그와 아내 사이에는 성장한 두 명의 자녀가 있고, 여러 명의 손주들이 있다. 현재는 그가 박사학위를 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2] 눈에 띄는 몇 가지 요소들은 내가 분석한 결과이다. 분명한 중요성을 띤 요소들을 빼 놓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이 분석했다면 내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을 포함했을 수도 있고, 또한 내가 포함한 것을 한 두 개 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 그룹에 대한 패턴은 대략에 따른 것이지, 정확하게 세세한 것들까지 포함한 것은 아니다. 또한 개종과 관계되지 않은 세세한 것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3] 눈에 띄는 영역들은 전체적인 그룹에 적용되지만, 또한 그 그룹을 나누었을 때 그 나누어진 부분(하위 그룹)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하위 그룹들은 미리 임의로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어떤 개종 요소들이 분명하게 적용될 때 하위 그룹으로 명명되었다.
[4] 죽음의 위협을 당한 일곱 명 (남자2와, 남자3, 남자4, 남자5, 남자7, 남자8, 남자10)에 더하여, 남자 6은 그의 가까운 친척 중 한 명이 자신을 죽일 것을 두려워했다. 비록 그가 비밀 신자였기 때문에 아직 위협은 당하지 않았지만 그의 개종 사실이 알려질 경우 그렇게 될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5] 죽음의 위협을 당했거나 그것을 두려워 하는 여덟 명의 남자들 중 네 명(남자 2와, 6, 7, 8)은 믿는 자의 순교와 박해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당한 고난을 알고 있는 것은 적대적인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에게 꽤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6] 포괄적인 질문지에는 정치적 불안정과 두 다른 요소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이 일으키신 기적)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세가지는 내가 개종의 주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넣은 것들이었다.
[7] 다른 두 명인 남자 2와 7은 체포되었을 때 했던 영적인 고심을 정치적 불안정과 연결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남자 2와 7의 경우에는 정치적 불안이 개종의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하게, 여자 1과 3의 개종의 경우, 그들이 정치적 불안정을 개종의 이유로 표시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개종 이야기에서는 전혀 그러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적 불안정을 그들의 주요 개종 이유 중 하나로 보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8] 여자 3은 미디어를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개종 이후에 그녀는 예수님 영화의 가치를 중요하게 보았다. 여자 4부터 8까지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중간 정도로 보았다. 여자 4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여자 1부터 8까지 각 가정 모임은 그들의 정기 모임에서 테이프를 사용하고 있었다.
[9] 남자 1을 포함시킨다면 다섯 명의 개종자가 미디어에 대해 말한 것이 된다.
[10]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등과 같이 현저하게 눈에 띄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6.3에서 다루고 있다.
[11] 응답된 기도에 대해서는 6.3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을 다루면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12] 남자 9가 이 상황에서 정치적 불안정보다는 개인적 위기를 더 강조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13]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자들 중에는 아무도 (정말 개종했는지 의심스러운 남자 1을 제외하고는) 공동체의 격려를 받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여자 9의 경험은 여자 2부터 8까지의 경험들과는 다르다. 여자 9는 다른 지역에서 왔고, 무슬림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격려를 받았기 때문이다.
[14] 방문을 하면서 (여성) 운동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는 나의 연구 범위를 벗어난 영역이었다. 그 지역에 있어서 좀 더 자세히 그 문제에 대한 양질의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한 추후의 조사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개종자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그룹 모임을 방문하는 것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뷰도 실시해야 한다. 그러한 인터뷰는 이미 인터뷰한 여성들의 예들과, 그들의 남성 친척들, 다른 여성 개종자들, 남성 개종자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좀 더 넓은 영역의 개종하지 않은 무슬림 공동체의 남녀들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그룹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지역 그리스도인 운동에 대한 반응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연구는 매우 조심성 있게 이루어져야 하며, 개종자들의 삶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면 절대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15] 이는 아랍 무슬림 사회에서 영광(명예, honor)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16] 여자 3만이 예수님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죄의 “수치”를 가져가셨다고 고백했다. 수치는 분명 영광(명예)와 반대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녀를 개종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하지는 않았다.
[17] 이 용어에 관련된 답을 한 그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아랍어로 인터뷰를 한 사람들이다. 다른 다 사람은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주저함 없이 그것이 영어로 “하나님의 영광” 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영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God”과 아랍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알라”가 의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아랍어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하나님 사이에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 모두 하나님이 매우 영광 받으실 만한 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18] 개종에 대한 설명에서 영광과 관계된 언급이 별로 없다는 것도 이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부분은 개종자들이 나의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한 것이지 그들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포괄적인 질문지를 통해 얻는 정보는 개종 이야기를 보충하고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는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19] 하나님의 영광은 다른 다섯 명 (남자 4와 5, 8, 9와 여자 10) 에게도 중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것을 중간 정도의 중요한 것으로 본 다른 일곱 명의 응답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중요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2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의 죄의 수치를 모두 담당하셨다는 것에 미미한 반대를 표한 후 그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겠노라고 기꺼이 말했던 남자 11만이 예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기본적인 기독교 신학을 알고 있지만, 영광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21] 내가 2003년에 한 연구는 적용 가능한 개종 요인들을 발견하기 위한 개종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포괄적인 질문지에는 등장했지만, 개종 설명에서는 나오지 않은 영광과 같은 요소들에 대한 자세한 탐구까지 할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2003년의 연구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중요성을 둔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그 다음 연구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식적인 연구 제안서를 기대하지 않고, 개방적인 질문지를 바탕으로 가능한 정보들을 모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질문지를 통해 그들의 개종 이야기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즉, 개종 전과 그 이후에) 개종자들이 영광과 수치,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22] Margaret K. Nydell, Understanding Arabs: A Guide for Westerners (Yarmouth, ME:
Intercultural Press, 1987), p. 102.
[23] Margaret K. Nydell, Understanding Arabs, p. 102.
[24] 그가 반드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25] 여자 10은 남자 11과 마찬가지로 좀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꾸란도 좀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읽는 방식은 (본문의 이해 없는) 암송 혹은 낭송이다. 이것이 무슬림 어린이들이 꾸란을 배우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26] 교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계속 성경을 읽게 하였던 그 ‘무엇인가’는 신적인 어떤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7] 이 두 사람은 모두 개종 당시 성경을 잘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남자 10은 영어로, 여자 11은 아랍어로) 충분한 교육을 받았지만, 둘 다 성경읽기를 강조하고 있지 않다.
[28] 남자 1은 예외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성경과 꾸란 사이에 찾아볼 수 있는 논리적인 차이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경우에 그가 진실로 개종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29]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들의 사역 방법에 대해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본 연구에 대한 후속 연구로 개종 패턴에 비추어 사역 방법을 평가해 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연구 프로젝트도 가능할 것이다.
[30] 이 연구는 개종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 (그 중에서도 특히 믿는 자 A부터 L에 의해 개종자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A부터 L에 이르는 믿는 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31] 만일 남자 1과 여자 5가 포함된다면, 그 수는 남자 일곱, 여자 일곱이 될 것이다. 남자 1과 여자 5는 분명 믿는 자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 영향이 그 남자를 진정한 개종으로 인도하지는 않았고, 그 여자를 완전한 개종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32] 남자 3은 여기서 분명히 예외인데, 그는 두 명의 독일 여성인 믿는 자 C와 D에게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33] 이와 대조적으로 여자 11은 그녀의 여자 친구인 믿는 자 L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교묘한 방법을 사용한 기독교 컨퍼런스에서 만난 남자 설교자에게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34]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있는 무슬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남성 믿는 자들이 여성 믿는 자들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이 개종 이야기들에서 남성 믿는 자들이 미치는 영향이 더 많이 등장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35] 여자 1 역시 믿는 자 A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가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이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은 인터뷰한 스물 두 명 중에 아홉 명이 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그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별로 부각되지 않았다. 외국인과 지역 신자들의 역할이 대체로 균형 있게 잘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남자 5와 여자 1, 3, 그리고 여자 4는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남자 3과 여자 10은 독일인들에게, 남자 4와 6, 여자 9와 여자 11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남자 7과 9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36] 이것은 여자 9의 밝히지 않은 이야기에서 나온 내용이다.
[37] 위에서 언급한대로,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같은 중요한 개종 요소들은 포괄적인 질문지에서 만이 아니라, 개종자들이 직접 한 이야기에서 이끌어 낸 것들이다.
[38] 대부분에 있어서, 진리에 대한 개종자들의 발견은 그 진리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 이슬람의 가르침과 비교하여 저울질 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그들이 들은 기독교의 진리를 이해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진리들이 의미하는 것은 항상 광범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을 거절하는 것이 중요한 개종 이유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의 진리에 끌렸다는 것과 그들이 이슬람의 신조에서 돌아섰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39] 각 개종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논의하였다. 그러나 내가 주관적으로 그들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개종자의 관점을 그대로 전달하기로 하겠다.
[40] 거의 모든 응답자들이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 여자 9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이 자신을 개종으로 이끌었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소개되지 않은 여자 9의 이야기는 그녀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상황에서 개종하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누군가가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더 연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기도의 응답을 개종자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의 예 가운데 하나로 보고 싶다.
[41] 이 요소가 강조되는 것은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것에 매우 끌린다는 사실과도 잘 들어맞는다. 나는 응답자들이 그들의 삶에 일어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종자들의 경험이 그 지역에 전래되어 오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들에서 왔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이미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에 끌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번역자)
[42] 남자 6은 자신을 예수님께로 이끈 꿈을 꾸었다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그가 그 “한 밤중”의 경험을 할 때 깨어있었으며 실제로 일어난 일로 그것을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남자 3, 9, 10과 여자 11 같은)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꿈 같은” 경험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43] 남자 6이 한 “한 밤중”의 경험은 좀 독특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강조했다. 이 요소가 분명 그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또한 남자 6은 하나님이 그의 삶에 기적적으로 역사하신 것이 그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데 중간 정도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말하였다. 남자 6이 이 영역에 포함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이 이 그룹 전체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44] 남자 4는 자신이 한 구멍에서 끌려 나오는 또 다른 꿈도 꾸었다. 이 꿈 역시 그의 개종을 확신시켜주고 격려해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45] 남자 4와 여자 10, 여자 11만이 예수님의 비전을 보았다고 말했다. (남자 6과 남자 10은 경험이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제외하였다. 남자 6은 그 당시 “어떤 것”이 그의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나중에 그것이 예수님이었음을 알았다고 말하였고, 남자 10은 “마치” 예수님이 방 안에 들어 오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들 중 아무도 예수님의 신체적인 모습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여자 10만이 하얀 옷을 입고 계셨다 (그리고 두 명의 아이들과 동반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대신에 그들은 그분이 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예수님은 남자 4를 감싸셨고, 그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자 10에게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고, 여자 11에게는 그녀의 가슴을 가리키셨다. 이러한 경험들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들은 예수님의 외모보다는 하신 일에 집중되어 있는 신약적인 접근과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46] 이 꿈은 그녀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당도했을 때 다른 사람이 꾼 꿈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녀는 그 꿈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47] 이 경우 그 꿈 자체보다는 기도해 준 사람이 그녀에게는 더 중요했다.
[48] 지나가면서 밝히고 싶은 것은 꿈을 이야기에 포함한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들이었고, 포함시키지 않은 사람들은 주로 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별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이 꾼 꿈에 대하여 내린,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초자연적인 영향에 대한 개종자들의 평가는 그들이 그 꿈을 이야기에 포함시켰는가 그렇지 않은 가로 결정하였다.
[49] 이 두 사람 모두 삶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남자 1은 분명히 예수님을 매우 긍정적으로 본 반면에, 여자 5는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50] 이 내용은 여자 9의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51] 공동체와 하나님의 영광은 표 3과 4의 가장 마지막에 제시되어있다. 그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 요인들을 강조한 개종자들의 수는 제시되지 않았다. 좀 더 연구가 이루어지면 가능할 것이다.
[52] 순서를 정하는데 있어서 요인들의 정확한 위치보다는 일반적으로 눈에 띄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다르게 분석할 경우 좀 더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예수님에 대한 요인을 그 선두로 하여, 어떤 요인들이 좀 더 눈에 띄는 요소들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53] 나의 논문에서 내가 발견한 것들을 이미 출판된 자료들과,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에 대한 선교사들의 평가, 또한 방글라데시에서 이슬람에서 개종한 열 명을 연구한 것과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내가 발견한 것들이 다른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4] (성경적인) 다른 미디어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곳에서 매우 유용하다. 기본적으로 읽고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경을 읽고 바르게 그 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55] 선교신학자들은 개종이 과정이라는 엥겔 수치와 다른 학자들의 모델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56] 변증학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들이나 개종한 무슬림들, 또한 다른 사람들 역시 기독교와 이슬람을 분명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반 이슬람적인 논쟁은 무슬림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서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임마누엘 – 임마누-알라(Immanuel – Immanu-Allah)

창조신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The Name of the Creator Deity and the Name for God)

글쓴이: 마르틴 골드스미스(Martin Goldsmith)
원문보기: http://www.stfrancismagazine.info/ja/001Immanuel%20–%20Immanu-Allah(1).pdf

1. 들어가는 말
전직 선교사인 마르틴 골드스미스(Martin Goldsmith)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으로, ‘열방그리스도대학’(All Nations Christian College)에서 세계종교학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이 분야에 정평이 난 필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1960년대 OMF와의 초기 사역 이래로, 24년 동안 ‘열방그리스도대학’에서의 강의 그리고 은퇴에 다다르기까지, 마르틴은 지치는 줄 모르고, 온 세상이 복음을 알게 하는 일에 매진해 왔다. 그는 마태복음이 어떻게 교회로 하여금 선교케 하였는지에 대해 다룬 소중한 책을 저술한 바 있다(Martin Goldsmith, Matthew and Mission: The Gospel Through Jewish Eyes (Carlisle: Paternoster, 2001). 이 책에서, 마르틴은 성서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또 성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라’(Allah)로 칭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골드스미스는 이와 동일한 주제에 대해 2006년 12월 28일 있었던 인터서브 아랍지역 모임에서 언급한 바 있었다. 다음은 요약사본이다; 다만 골드스미스의 대화적 문체를 최대한 살리려 했음을 명기하고자 한다.

2. 성서에서의 하나님의 이름들(The Names of God in the Bible)

2.1 ‘엘’(El), 창조신의 이름
마태복음 1:21-25절의 예수탄생과 관한 복음서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임마누엘’(Immanuel)이라는 놀라운 칭호를 받는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엘’(El)이 신명으로서 들어가는 가장 전형적인 칭호이다. 하나님의 이름 ‘엘’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가? ‘엘’은 누구였는가?
우리가 창세기 13장을 살펴보면, 거기에서 ‘엘’은 찾을 수 없다. 복수형태인 ‘엘로힘’(Elohim)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의 단수는 ‘엘로하’(Eloah) 혹은 YHWH(거룩한 신성문자로 ‘아도나이’(adonai)로 바꾸어 읽는다 – 역자주)이다. ‘엘’은 창세기 14장 이전까지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 말은 히브리인이 아닌, 멜기세덱(Melchizedek)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에 의해 소개된다. 사실 ‘엘’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가나안과 모압 그리고 전 구약성서 시대에 걸쳐, 중동지역 사람들에 의해 숭배되던 최고의 창조신이었다.
멜기세덱이 자신의 이름을 아브람에게 소개한 후, ‘엘’은 성서안에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 구약성서에서, 바로 이 말이 ‘엘로힘’(Elohim)이나 ‘엘로하’(Eloah)와 교환가능하게 사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은 창조주를 이제 ‘엘로힘’ 혹은 ‘엘’로 부르게 되었다.

‘엘’을 성서적 계시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 ‘엘로힘’의 성서적 계시와 전혀 다른, 이신교적 배경의 ‘엘’의 성격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단어, 칭호, 이름은 취하였지만, 그 내용은 변경되고 고쳐진 것이다.

2.2 ‘엘라’(Elah), 창조신의 다른 이름
후에,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사람들이 ‘엘라’(Elah)라는 높은 창조주를 숭배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스라서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은 또한 ‘엘로힘’(Elohim)을 부른다. 그 때부터 구약성서의 창조주인 YHWH는 ‘엘로아’(Eloah), ‘엘로힘’(Elohim), ‘엘’(El), 그리고 ‘엘라’(Elah)로 불리운다. 앞의 ‘엘’과 마찬가지로, ‘엘라’의 성격은, 앞선 YHWH에 대한 성서적 계시에 적합하기 위해, 다소간 수정되어 수용되어야만 했다.

2.3 ‘테오스’(Theos), 창조신의 이름
신약성서시대로 접어들어, 창조주의 그리스어 칭호는 ‘테오스’였다. 그리스어를 공부해 보면, ‘테오스’는 보통 ‘신’(神)으로 번역하게 된다. 그리스 만신전(Greek pantheon)의 신(god)의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이를 뛰어 넘었다. 즉 이들은 구약성서의 ‘엘로힘’을 ‘테오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테오스’는 그리스 종교적이고 정령숭배적 상황과 어울려 사용되었다. ‘YHWH’의 칭호가 이 단어로 바뀐 것이다. 이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않는가? ‘테오스’라는 말은, 다양하고 복잡한 그리스적 사상들에 휩싸인 채로, 채택되고 변경되어 ‘JHWH’가 된다. 이 말은 신약성서에서 ‘테오스’로 또한 불린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2.4 인격화된 신이 아닌 창조신 이름을 택하다
우리는 다른 면을 또한 보아야 한다: ‘엘’, ‘엘라’ 그리고 ‘테오스’가, YHWH나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으로 취사선택된 반면, 산당들에서 우상으로 숭배되던 바알이나 유사하게 인격화된 신들은 철저히 제거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들을 철저히 금지하였고, 분쇄하였다. ‘엘로힘 바알’(Elohim Baal)이라고 부르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상숭배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원리가 신약성서에도 적용 되었다. ‘테오스’는 사용되었지만, ‘비너스 신’(God Venus-사랑과 미의 여신(역자주)나 ‘머큐리 신(God Mercury-신들의 사자; 상인,도둑,웅변의 신(역자주)는 어불성설이었다.

3. 어떻게 초대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이름들을 받아드렸나?

유럽에서의 1세기 그리스도교 역시 유사한 과정을 밟았다. 예전과 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교의 창조신이 차용되었다. ‘God’, ‘Gott’, ‘Dieu’, ‘Bog’ 등등이 그것이다. 당시 이교도의 나라 영국은 이교의 창조신인 ‘God’을 그리스도교 도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God’이라는 말은 완전히 이교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이 차용되었다; lesser deity and 성전숭배는 유럽 그리스도교에서 금지되었다.
이상한 것은, 몇몇 낮은 수준의 신들은, 달력 속의 평일의 이름으로 상존하고 있다. 우리들은 태양의 날, 달의 날, Tiu신의 날, Ouden이나 Wodan신의 날, Thor신의 날, Freya여신의 날, 토성의 날 그리고 다시 태양의 날로 돌아오는 일련의 순서를 알고 있다. 웬일인지 때론 그리스도인들 조차 Thor의 날이나 Freya의 날에 상존하는 신을 숭배하는 일을 꺼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4. 이슬람에서의 창조신

4.1. 무함마드와 낮은 신들(the lower deities)

이슬람세계로의 선교라는 입장에서 보면, 무함마드는 이미 우리들에게 낮은 수준의 신이다. 할렐루야! 무함마드 사후 직전, 그가 메카로 돌아와 정복했을 때, 그는 카바(the Ka’aba)의 모든 우상들과 그곳에서 숭배되던 ‘알라’(Allah)의 딸들을 모신 모든 사당을 제거했다 : Uzza, al Manat, al Arusa, ‘알라’의 딸 혹은 배우자로 추정되는 신비스런 al Lat 등이다. (여러분들은 왜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상에 대해 민감히 반응치 못하였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딸들을 제거한 후, 하나님이 아들이 있다라는 사실은 그의 세계관으로는 퇴보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4.2 알라는 ‘엘’과 같은가?
알라는 엘로힘과 같은 분인가? 알라는 창조주를 뜻하는 셈어로 엘로아나, 엘로힘, 엘, 엘라와 어원적으로 매우 가깝다. 그러나 El이나 Elah, Theos, God, Gott, Deui, Bog와 마찬가지로 그 성격이나, 알라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그가 일하는 방식이나, 그가 사람들과 관계하는 방식, 혹은 관계하지 않는 방식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일부 그리스도인 저자들이 말하듯이 알라가 사단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영국 사람이나, 미국 혹은 호주 사람에게 가서 하나님은 사단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분이 될 수 없다. 알라는 알라다. 알라가 알라 이외에 다른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4.3 부적절한 이해들 그러나 같은 사람

만약 내가 여러분들께 나에 대한 인상 즉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에 대해 써 달라고 한다면, 내 생각에, 여러분들 가운데 몇 사람은 몇몇 좋은 점을 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몇몇 사람들은 불쾌한 이야기를 쓰리라. 하지만 여러분들은 나의 인상에 대한 여러분들 각자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물론 여러분들의 설명은 틀릴 수도 있고 실제와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나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에게 가서, ‘내가 생각하기에 마르틴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나의 아내는 여러분들에게 ‘사실 제가 당신들 보다 그에 대해 조금 더 잘 알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마르틴은 이러저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간파하지 못한 그의 성격도 있어요’라고 말하며, 여러분들의 견해를 수정해 줄 것이다.

물론 만약 내가 엘리자베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써 달라고 한다해도, 그것은 내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또 다를 것이다. 우리가 결혼하여 산지도 40년이 넘었을찌라도 말이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서, 골드스미스는 어떤 사람인가를 묘사해 달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에 대한 인상은, 여러분들의 나에 대한 인상은 물론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나 엘리자베스가 생각하는 나와 또 다를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나에 대한 것이지만, 아마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것이리라. 물론 나 역시도 조지 부시(George Bush)나 다른 어떤 사람들에 대해 위와 똑같이 할 수 있다. 여러분 역시 정치인들에 대한 여러분 각자의 견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치인들의 배우자들은 실제로 우리들의 생각과 같지 않을 것이다.

알라(Allah)나 하나님(God)에 대한 이해는 부적절하거나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 모두 부적절하거나 틀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어두운 안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로 그 계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들이 구원받아 우리 앞에 성경이 있을찌라도 말이다. 심지어 우리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점진적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에 충만할찌라도, 여전히 가야할 길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가 직전에 돌아가셨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께서 얼마나 뛰어나신 분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최고로 뛰어난 아버지셨다. 내가 아이였을 때, 나는 아버지의 사진을 내 침대 옆에 늘 두곤 했다. 아이일 때부터 아니 청소년기 때까지 밤에 나는 아버지께, 아니 아버지의 사진를 향해, 내게 아버지는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등에 대해 되내이곤 했다.
그 때, 나는 아버지께 내 마음과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이야기 했다. 그 날 그 날 내가 골을 넣은 것이나 수학에서 백점 받은 일 등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모든 일을 말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아버지와 함께 나누었다. 사실 그것은 한 조각 사진에 지나지 않았고, 그가 없기에 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나는 성장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나는 하늘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똑같이 했다. 내 아버지는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분이신지 이야기 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예배 혹은 찬양이라 부른다. 나는 그 분과 골을 넣거나 더 좋은 성적을 받는 일 보다는 좀더 성숙한 것들에 대해 나누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기도라고 부른다.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는 답을 하지 않는다; 그는 멀리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성령께서는 내가 가까이 이야기해 주신다.
그러나 아버지는 멀리 계시고, 거기 계시지 않는다. 스스로나 그 뜻을 모두 알리지 않으신다. 이것이 성서적인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선교사가 되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열방그리스도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비로서 내 유년시절이 일정부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나의 이해를 결정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의 배경에 기인하였기에,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나의 이해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일은 여러분 모두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성격, 심리형성과정, 혹은 여러분들의 교단배경이나 특정한 영성형성과정 등으로 인해, 여러분들의 하나님 이해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여러분들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확하다고 나는 확신하다. 여러분의 하나님 이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생각,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방법 등에 대해 나열해 보는 것은 상당히 유익한 시도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진실이되 모두다가 진실은 아니며, 오류되 진실과 오류가 공존하는, 아주 재미있는 왜곡된 견해들의 목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5. 임마누엘과 선교
인간으로서, 구원받았든지 받지 못하였든지,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다. 이제서야 나는 영어 단어 ‘좋은/선한’(goog)이라는 말은 다소 뭔가 모자라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좋은/선한’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하나님 스스로의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성품을 묘사하는 아주 분명한 말이다. 하나님은 좋으신/선한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고, 보기에 좋다라고 하신 것이다. 물론 창세기 3장은 인간의 본성은 죄로 인해 타락하여, 진리는 오류와 섞이고, 선함은 죄와 혼합되었다고 말한다. 비슷하게도,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진리와 비진리가, 선함과 죄가 함께 뒤섞였다. 이 말로 인해 여러분이 걱정할 듯하여, 존 칼빈이 기독교강요(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한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칼빈은 타락한 이후에도 인간에게 남겨진 하나님의 이미지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죄악으로 가득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로 인하여 이것이 완화되고, 누그러지며 약화된다. 최고의 창조주, 임마누엘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엘’(El)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여러분들은 이를 창조주의 계약 이름인 YHWH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요한복음에서, 바로 이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YHWH이다. 왜냐하면 이 분은 위대한 ‘나’(I Am)이자 위대한 YHWH이다. 나는 바로 나이다(I am who I am). 그러나 이 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YHWH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창조신이시다. 이 신은 숨겨진 신이고 성서 밖의 종교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신이다; 이는 모압, 가나안 그리고 바빌론 그리고 그리스 종교 등에서, 예배가 종종 최고의 창조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알려지고 접근 가능한 낮은 수준의 신들을 위해서 드려진 이유이다.

우리들의 선교에 바로 이러한 것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랍세계에서 우리 메시지의 최고봉은 예수님이다. 여러분은 그의 이름을 ‘예수아’(Yeshua), ‘이사’(Isa)로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분이 그의 백성을 죄로 부터 구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임마누엘이다. 이 분은 멀리서, 숨겨진채로 있지 않고, 우리와 함께 바로 여기에 계신 최고의 창조주이다. 여러분이 ‘알라’를 알기 원하는가? ‘알라’와 관계하고자 하는가? 좋다! ‘알라’는 주도적으로 메시야 예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그 분은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깨끗케 하시고,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 안에서 ‘임마누-엘’로 그의 사역을 이루신다. 또한 인류의 창조주인 ‘임마누-알라’로 우리 주변에 계신다.

6. 결론
기억컨데 우리 열방그리스도대학의 이슬람과정에서 무슬림 지도자를 초대하여 강연을 부탁하고 학생들과 질의하였던 적이 있다. 질문도 기억이 나지 않고, 대답 또한 대부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그 무슬림 지도자가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신약성서를 여러번 읽었습니다. 나는 많은 그리스도인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항상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에 대해 논쟁도 하지요. 나는 정말 그리스도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계속 말을 했다: ‘내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계속해서 내게 말하는 것인데, 내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계속 질문을 해 보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말하기를:

내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내게, 그들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안다고 계속 말하는 거예요. 그런 일은 불가능한데 말입니다. ‘알라’는 위에 계시고, 전혀 다른 분이며, 저 멀리 계신 분입니다. 알라는 영광스러운 최고의 하나님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지요.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킵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섭리가운데 나와 우리가족 그리고 우리백성과 우리 인간을 지켜주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알라’와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위에 계십니다.

영광스럽게도 ‘알라’는 실제로 영화롭고 영광스러운 모습의 메시야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영어의 ‘God’로 번역된 ‘엘’(El)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교도 종족인 영국의 알려지지 않은 신 God는 영화롭고, 알수 있고, 대화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그 분을 따를 가치가 있는 분이다. 왜냐하면 이 예수가 바로 ‘엘’이며, 이 예수가 우리와 함께 하는 ‘알라’이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14일 일요일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자들에 관한 연구: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 (II)

글쓴이: Ant Greenham[1]
원문: http://www.stfrancismagazine.info/ja/pdf/2010/116-175SFMFEB2010.pdf

4.12 여자 1
이야기
여자1은 어린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이었다. 고등학교를 마쳤지만 정치적 불안정의 여파로 졸업시험을 볼 수 없었다. 무슬림으로서 지킬 것을 지키고 살기는 했지만,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많은 여성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는 그녀의 이웃에 있는 새로 생긴 가정 사역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는 이미 꾸란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가 보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고, 믿는 자 A의 긍정적인 삶과 기도 응답에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이처럼 그녀는 호기심으로 인해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되었지만, 사랑과 믿음 때문에 예수님에게 끌리게 되었다. 그녀는 또한 꿈을 경험했고, 개종에 있어서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 테이프 같은 미디어의 역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2]

예수님은 기적적으로 그녀의 삶을 바꾸셨고, 그녀는 마음에 사랑과 믿음을 경험했다. 그녀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받아들여지는 것을 느꼈고, 박해를 경험해 보지는 않았다.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도 좀 있지만, 그녀의 가족과 친척들도 그녀의 믿음을 잘 알고 있고, 한 일 년 동안 그녀의 집에서 예수님을 찾는 20여 명의 여성들과 함께 모임을 갖기도 하였다.

분석
“사랑”과 “믿음”은 여성 1의 이야기에서 핵심이 된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거하고 그녀의 개종이 또한 그것을 보여준다. 그녀의 이야기가 극적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녀의 삶에 일어난 기적적인 변화를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는 몇 몇 공동체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집을 다른 무슬림 여성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혹은 그 분을 향한 믿음을 갖도록 해 주는 곳으로 기꺼이 사용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성 1이 삶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3]

4.13 여자 2
이야기
여자 2는 많이 교육받지 못한 과부 (그리고 할머니)이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고, 일찍 결혼했으며, 1967년에 난민이 되었지만, 자신의 경험의 잘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일반적인 무슬림이었다고 말하는데 얼마나 성실히 기도하는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좀 이상하지만 그녀는 예수님이나, 모세, 무함마드가 다 선지자들이기 때문에 다 마찬가지이고, 무슬림들이나 그리스도인이나 예배하는 것에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꾸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후부터 그녀는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것은 그가 선지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영이 자신을 더욱 그렇게 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마을에서 여자 1이 말했던 “예수님이 계신 곳”을 발견하고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예수님이 주시는 유익을 더 많이 얻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한 번은 중풍 (혹은 그와 유사한 의학적 상태)이 왔는데 이 개인적인 위기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병 자체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그 상황과 관련하여 기도가 응답된 것이 개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꿈도 꾸었는데 그 내용은 지금 기억할 수가 없다.
그녀는 예수님도 강조했고 그 분의 진리의 말씀과, 테이프와 같은 미디어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도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녀는 스스로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찾아갔지만,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다른 여성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간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또한 어떤 한 신자의 삶 (아마도 믿는 자 A일 것이다.)이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녀는 삶이 편안해졌고, 더 안전함을 느끼고, 마음에 평안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그녀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녀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녀의 아들이 그녀의 기독교 신앙에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박해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병약했지만, 집에서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연계된 여성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었다.

분석
그녀의 이야기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여성 2는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려준다.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다 같다고 그녀가 말한 이유는 아마도 인터뷰 하는 동안 믿지 않는 그녀의 아들이 옆에 앉아있으면서 종종 자기 의견을 내 놓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녀가 개방된 질문지에 답한 것을 보면서 그녀가 정말 개종한 것인지 잠시 고민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한 것을 보면 기독교의 구원 역사와 신학에 필요한 주요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녀가 받은 제한적인 교육과 아들의 반대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부활 같은 것에 대하여)가 그런 염려를 낳게 한 이유인 것 같다. 이제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믿지 않는 친척이 동석한 자리에서 그녀가 두 질문지에 답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녀는 분명히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 받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할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4.14 여자 3
이야기
여자 3은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할머니이다. 무슬림이었을 때 그녀는 기도하고 금식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열심은 아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그녀는 개인적인 위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개종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한 다리를 쓸 수 없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가정에 그녀를 맡겼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은 그녀를 위해 기도했고, 그녀의 다리가 다 나았다. 수 십 년이 지난 후 그녀는 그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던 곳 주변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녀의 다리가 나았던 그 집은 당시 ‘예수님의 계시는 곳’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곳에 믿는 자 A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가서 자신을 소개하려는 마음이 들어서 한 친척을 데리고 그 곳에 갔다. 그들은 그 때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이 도착하자 믿는 자 A는 자신이 꿈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집에 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후 그의 요청대로 그녀는 다른 여성들도 그 곳으로 데리고 갔다.

믿는 자들의 삶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믿는 자 A는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위해서 기도했을 때 소소한 질병을 가진 여성들이 치유 받았고, 그는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주었다. 그는 또한 여자 3에게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수치스러운 죄에서 구원해 주신 구원자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것이 그녀가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는데,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의 메시지 역시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또한 응답된 기도와, 하나님께서 그녀의 삶에 기적적을 역사하신 것,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도 강조했다. 그녀는 꿈도 꾸었는데 (믿는 자 A가 그 꿈을 설명해 주었다.)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개종 이후, (정치적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경제적인 사정이 좀 좋아졌는데, 그것은 그녀가 딸의 직업을 위해 한 기도가 응답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믿는 자들의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그녀의 가정에서 30명 가량의 여성들이 모이는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박해를 경험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녀의 아들과 딸들은 텔레비전에서 예수 영화를 하는 동안 그녀가 돌봐야 할 손주들을 대신 돌봐주어서 그녀가 방해 받지 않고 그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했다.

분석
여성 3의 개종 이야기에는 긴 기간에 걸쳐서 일어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난 장소 (‘예수님이 계시는 곳’)와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믿는 자 A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초점은 예수님 그 분과 그 분의 사역에 맞추어져 있다. 실제로 그녀는 질문지에 답을 기록하면서 그녀의 죄를 사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그 중심에 있고, 그녀의 삶에 나타난 변화는 적어도 개종한 지 3년이 지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영적인 성숙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숙함은 재정적 어려움에 있어서 그녀가 믿는 자 A를 의지하기 보다는 주님을 더 의지하는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또한 (예수 영화를 보면서) 예수님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방해 받지 말아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에서도 나타난다. 많은 다른 여성들을 인도하는 모습에서도 물론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녀의 이야기는 초월적인 만남으로 인한 진정한 변화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15 여자 4
이야기
여자 4는 결혼한 여성으로 아이들이 영아 때 모두 죽었다. 그녀는 요르단에서 성장했지만, 결혼 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처럼 그녀도 기도도 하고 금식도 했다. 심지어 메카에 소(小)순례(이슬람에는 메카에 순례를 가는 정해진 때가 있는데 그 때에 가지 않고 다른 때에 다녀온 것으로, 순례하면서 하는 의식들도 정해진 때 하는 순례보다 약소하다. – 역자 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요르단에서 그녀 이웃에 살던 사람은 그녀를 종종 카톨릭 교회에 데리고 갔다. 그녀 남편의 친구들 대부분도 그리스도인들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평화롭게 함께 살았다. 어느 날 (무슬림) 가정의 친구들이 믿는 자 A를 그녀의 집에 데리고 와서 그녀는 그 때부터 “예수님이 계신 곳”에 다니기 시작했다. 믿는 자 A는 그녀가 꾼 꿈을 설명해 주었고, 그녀는 그가 그녀를 위해서 기도해 준 후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그는 그녀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그에 관한 테이프를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개종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 예수님의 존재와 그분의 진리의 말씀이라고 보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짊어지신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그녀의 삶을 바꾸셨다는 인정했는데, 그러한 그녀의 확신은 그녀가 여섯 자녀들을 모두 비극적으로 잃은 일을 말하는 과정에서도 볼 수 있었다. 개종 후에 다른 아이를 낳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을 잃은 현실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갖고 있었다.

개종 이후 그녀의 삶에 나타난 변화 역시 분명해서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그녀의 사랑에 보답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 에서 받아들여진 것을 느꼈고, 그녀도 그녀의 집에서 여성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4] 덧붙여 말하자면, 그녀의 남편과 조카도 기도의 응답으로 질병이 나았다. 그러나 그녀는 박해를 좀 경험했는데, 무슬림들에게 심문을 받기도 했다. 그로 인해 인터뷰한 그 날 가정 모임에서 사용하려고 했던 테이프를 압수당했다.

분석
신학적인 이해가 좀 부족한 것 같기는 하지만 여자 4의 이야기에서는 개인적인 변화가 가장 핵심이 된다. 그녀가 계속해서 카톨릭을 접했던 것이 개종하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는 그녀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을 만나면서 (그리고 믿는 자 A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여성을 가치는 아이를 낳는 것에서 찾는 문화에서 그녀가 여섯이나 되는 자녀를 잃고 보인 반응에서도 잘 드러난다.[5] 이와 함께 그녀는 믿는 자로서 사랑과 용납을 경험했고, 모임을 인도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한번 박해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녀의 집 환경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집에서 계속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타다 만 집 옆에 붙어있는 검은 비닐 텐트였다. 그녀의 삶에 나타난 (기적적인) 변화에 더하여, 그녀는 예수님과 그 분의 진리의 말씀이 자신의 개종에 특별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그녀가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모두 가져가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이해가 부족하지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진정으로 개종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4.16 여자 5
이야기
여자 5는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기혼 여성이다. 그녀는 대가족 출신이고 지금의 그녀 역시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그녀는 매우 열심 있는 무슬림이었는데 스스로 99% 종교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한 (무슬림) 이웃과 함께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느낀 사랑과 다정함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하게 되었고, 그 분이 누구신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기도가 응답 받는 경험을 하였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가르쳐주는 것에서 유익을 얻었으며, 그리스도인 이웃의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 그 분과 그 분의 진리의 말씀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녀의 삶이 좀 더 편해졌다. 믿는 자들의 공동체가 그녀를 환영했고, 인터뷰 당시 여자 4를 만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몇 사람들이 그녀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관계 맺는 것을 나쁘게 말했지만, 그녀를 박해하지는 않았고,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그 곳에 가는 것을 좋게 보고 있다.

분석
여자 5를 만났을 때, 그녀는 솔직하고 간단하게 개종을 증거했다. 불행히도, 포괄적인 질문지에 그녀가 한 답변은 그녀를 인터뷰할 때 옆에 있었던 여자 4의 것과 모두 같다. 여자 5에게 좀 다른 것은 순례나, 성경 읽기, 꿈 중 그 어느 것도 그녀에게 영향을 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을 할 때 그녀가 존경해 마지 않는 모임 리더와 같은 식으로 답변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그녀의 답변에 큰 비중을 두기는 어려운 것이 된다. 그녀가 죄의 문제를 동의하지 않은 것이나, 예수님이 자신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고 한 것들도 마찬가지로 그다지 신뢰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열린 질문지에 답변한 것으로만 미루어 보면,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서 답한 응답된 기도나, 기적적인 변화 같은 것에 있어서) 그녀는 삶의 변화에 대해 특별하다 할만한 것이 없다.

그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인도자의 예를 따르는 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가 삶에 변화를 일으킬 만한 예수님과의 특별한 만남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여자 5는 여전히 무슬림 여성이며 그러나 믿는 자들과 교제를 즐기고, 예수님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개종의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4.17 여자 6
이야기
여자 6은 이혼한 여성으로 많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그녀는 열심 있는 무슬림이었지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 몇 년 후, 두 번째 인티파다와 함께 그녀는 호텔에서의 일자리를 잃었다. 수입이 없어서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도 없었다. 그녀를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여자 4가 그녀에게 믿는 자 A를 소개해 주어서 그가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그 응답으로 하나님은 그녀에게 새로운 직장을 연결시켜 주었고, 새로 살게 될 곳도 생겼으며, 그녀의 아픈 딸도 고침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그녀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하나님이 그녀의 삶에서 행하신 기적적인 역사를 강조했다. 그녀는 예수님의 그녀의 죄를 십자가에서 모두 담당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가르치는 것에 큰 영향을 받았고, 예수님 그 분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자신의 개종의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그녀가 개종하면서 그녀의 아이들에게 살 길이 생긴 것에 더하여, 그녀는 믿는 자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인터뷰 당시 여자 4의 집에서 모임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곳에 모이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사람들도 그녀를 돌봐주고 있었다. 불행히도, 그녀의 집 주변에 옹기 종기 모여 있는 집들에 사는 사람들이 그녀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관련된 모임을 한다고 그녀를 경찰에 고발했기 때문에, 조만간 그녀는 집을 잃게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기도한 후에 그 집들을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를 찾아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했고, 매니저는 그녀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분석
여자 6은 여자 4가 (그리고 그녀 그룹의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은 그녀의 리더가 한 것과 다르고,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삶에 개입하신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다. 여자 6은 여자 4의 집에서 만나고 있는 여성들과의 교제에 매우 감사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하나님과 가지고 있는 관계는 다른 여성들과 갖는 관계와는 달리 좀 더 독립적인 것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한 것들을 그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으로 보이며, 위에서 설명한 그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그녀가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 만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죄를 모두 가져가셨다는 것에 그녀가 동의하지 않는 것은 여자 4의 경우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즉, 이해의 부족으로 보이며), 그렇게 볼 때, 여자 4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교리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18 여자 7
이야기
여자 7은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결혼한 젊은 여성이다. 열 살에 아버지를 잃었지만 종교적으로는 다른 무슬림들처럼 기도하고 금식했다. 그녀가 성장해서 결혼을 한 후에 그녀의 어머니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가기 시작했다. 그녀도 어머니를 따라서 그렇게 했지만,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가기 보다는) 여자 4의 집에서 만나는 여성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호기심과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가르치는 것들을 접하고 난 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녀는 예수님의 존재와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중요한 개종 요소로 보았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녀의 남편이 어깨와 다리가 아파서 고생할 때 기도해서 많이 나았기 때문에 그녀는 기도가 응답된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게 된 후로 마음에 평화가 생겼고, 삶도 더 나아졌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더 잘하고 있고, 그녀는 직업도 갖게 되었으며, 믿는 자들도 그녀를 받아들여 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박해나 어떤 어려움도 당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가족 중 몇 명은 그녀와 함께 여자 4의 집에서 하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분석
여자 7 역시 그 모임의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변은 여자 5의 것과 같다. (따라서 여자 4의 것과 같은 것이다.) 즉, 그 모임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인터뷰 내내 상당히 강한 성격을 보여주었고, 열린 질문지에 답하면서 가치 있는 답변들을 제시해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로 인해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게 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스스로 선택해서 참석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을 그 모임에 데려오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열망이 바로 그녀를 개종으로 이끈 중요한 요소였다고 강조했고,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경험했으며 (또한 삶도 더 나아졌고), 그녀가 지금 누리고 있는 마음의 평안에 대해 말했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와 진실로 만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그룹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원에 대한 신학이 좀 약하기는 하지만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4.19 여자 8
이야기
여자 8은 제한적인 교육을 받았고, 최근에 과부가 되었다. 무슬림이었을 때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무슬림으로서의 종교를 지켰다. 요르단에서 남편과 오랫동안 살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는 믿는 자 A가 사람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해 준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의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믿는 자 A가 병원에 가서 남편을 위해 기도해주도록 하기도 했다. 얼마 후 남편은 죽었지만, 그는 믿는 자 A가 기도해서 좀 나아지기도 했었다. 그녀는 이후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정기적으로 나갔고, 그곳에서의 교육을 통해 유익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스도께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다른 믿는 자의 기도로 그녀 자신이 고침 받은 것이었다. 그녀는 또한 예수님과, 그 분의 진리의 말씀을 개종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그녀는 꿈도 꾸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6] 요약해서 말하자면, 예수님이 그녀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

그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녀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느꼈다. 그녀는 아직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고 있고, 여자 4의 그룹으로부터 감정적인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녀는 덧붙여 말하기를, 그녀가 신자들과 연계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그녀를 이길 힘이 없다고 했다. 사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을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분석
여자 8은 여자 4와 함께 인터뷰한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변들은 그 그룹의 다른 사람들과 매우 유사했지만 (그리고 같은 신학적 약점을 보였지만) 그녀는 분명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전에 남편을 위해 기도 했을 때 남편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편이 죽음에 이른 것이 그녀의 개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그녀가 그녀 개인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 특히 그녀가 고침 받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녀가 진리를 배워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기적적으로) 고침 받은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또한 매우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분명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의미한다. 그러한 변화로 인해 그녀는 남편을 사별한 것도 잘 견디고 있고, 사람들은 그녀를 이길 힘이 없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20 여자 9
이야기
여자 9는 자신의 개종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소들이 한 신실한 신자가 한 역할과, 성경의 중요성, 특히 이슬람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여성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갈망이었다는 것 정도를 밝히는 것은 그녀가 한 요청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

분석
여자 9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변에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삶을 기적적으로 바꾸셨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어떤 특별한 꿈이나, 치유를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증거는 그리스도가 그녀를 구원하신다는 강한 경외의 감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의 개인적인 관찰에 의하면 그녀가 진정으로 개종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4.21 여자 10
이야기
여자 10은 혼자 사는 독신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심한 학대를 받아서 수년을 한 기관에서 지냈다. 그 결과, 그녀는 신체적, 정신적, 교육적으로 고통 당했다. 그녀는 이슬람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었고, 신중하게 기도나 금식을 하지도 않았고, 꾸란을 읽는 것은 오직 그녀의 삶을 더 힘들게만 했을 뿐이었다.

어린아이로서 그녀가 한참 고통을 당하고 있던 중에, 한 무슬림 친척이 그녀에게 성경을 주었는데 그것은 단지 자신이 성경을 가지고 있기 싫어서 그랬던 것뿐이었다. 누군가 그녀가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어린이 전도자, 믿는 자 J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슬림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잘 몰랐었지만, 꼭 그를 만나보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고, 결국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일로 그녀가 바로 개종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한 독일 여성인 믿는 자 K가 그녀에게 만일 그녀가 예수님에게 마음을 열면 그분이 도와 주실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주님에게 기도를 드렸고, 그 분에게 자신을 내어드렸으며, 평안을 느꼈다. 후에 그녀는 믿는 자 K가 자신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믿는 자 K가 그렇게 한 것은 여자 10이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주님은 기적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하셨고, 현재 그녀와 믿는 자 K는 일반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믿는 자 J나 K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미치는 사랑의 영향력 이외에 성경을 읽은 것이 그녀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가 글을 읽는데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하나님의 개입으로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이해할 수 있었고, 거짓말하는 것과 같은 나쁜 습관들을 고칠 수 있었다. 그녀는 또한 그녀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시켜주는 꿈을 꾸었는데 이는 그녀가 어린 시절에 했던 부정적인 경험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다른 요소들은 이슬람에 대한 거절, 하나님에 대한 경외,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이다.[7]

그녀가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게 된 후, 삶이 점차 나아졌다. 건강도 더 나아졌고, 정신과 약을 먹지 않기 때문에 체중도 많이 줄었다. 처음에는 다른 신자들과 관계 맺는 것에 좀 어려움이 있었지만, 문제는 해결되었고, 신자들이 그녀를 환영하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그녀의 혼자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녀가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이 그녀가 교회 나가는 것을 비난했지만, 여자 10은 그렇다면 자신이 무슬림이었을 때는 왜 가족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결코 주님에게서 돌아서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가족을 사랑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의 간증을 듣고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석
여자 10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학대와 과체중, 약물에 의지하던 십대에서 혼자서 성공적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젊은 여성이 되었다. 그녀는 읽는데 겪었던 어려움도 극복했다. 거짓말을 그쳤고,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자신을 학대한 가족들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이 모든 변화의 유일한 이유는 그녀를 사랑하셔서 사랑 많은 신자들과 성경 그리고 꿈을 보내주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었다.

4.22 여자 11
이야기
여자 11은 잘 교육받은 독신녀였다. 그녀의 무슬림 가족들이 별로 신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정기적으로 기도하지는 않았지만 때로 금식을 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기 오 년 전에 친구인 믿는 자 L이 그녀에게 학문적인 도움을 좀 주면서 자신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여자 11은 좀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믿는 자 L과 일하면서 만난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예수님에 대해 끌리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예수님에 대해 듣게 된 모든 것을 믿었지만, 그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그녀는 가족의 허락으로 믿는 자 L과 함께 기독교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회의 내내 접하게 된 예수님의 신성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에 그녀는 설교자에게 그것에 대해 질문했다. 오랜 토론 끝에 그녀는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녀와 함께 기도하면서 그녀가 예수님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 아침 깨어났을 때 그녀는 비전을 보았는데, 주 예수님이 그녀의 가슴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녀 자신은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빛의 구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일 직후에 그녀는 믿는 자 L에게 달려가서 이 기적적인 꿈에 대해 말했다. 믿는 자 L은 그녀에게 예수님을 본 것은 그녀의 영적 삶의 첫 날이 밝아왔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해주었다. 여자 11은 그렇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한편, 그녀는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다음 한 해 동안 그녀는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고심했다. 혼란 가운데 점차로 그녀는 그 분이 누구시든지 그녀의 삶에 하나님을 원한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셨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녀는 예수님이 그녀를 떠나시지 말고 그녀를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그 때부터 그녀의 삶에서 그녀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다. 후에 그녀는 설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녀 안에 들어오셔서 예수님의 신성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그녀의 꿈과, 그녀의 삶에 기적적으로 역사하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이 그녀의 개종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녀는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그녀의 가족이 그녀가 예수님이 믿게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절 당하거나 박해를 당한 적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그녀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그녀의 가정에 기독교의 영향이 좀 있어서 그녀의 아버지는 신약 성경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다른 점은 그 가족들은 기독교에 대해 지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지만, 여자 11은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분석
하나님의 개입과 그 결과로 그녀의 삶에 일어난 변화가 여자 11의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을 한 것이 그녀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그녀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질문에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는 아직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그녀의 확신은 그녀의 방식대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그녀가 겸손히 하나님께 굴복하면서 지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이루어졌다. 믿는 자들도 돕는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그러나 믿는 자 L의 우정이 (그리고 초대가) 그녀를 꿈을 꾸게 되는 환경으로 인도하였고, 그녀의 개종을 이루어내려고 했던 그 설교자의 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자 11의 경우 핵심은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였고 그 변화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5 동일한 개종 요소들
각 개종의 이야기들이 독특하고 개인마다 개종으로 이끈 요소들이 다양하다. 동시에, 동일하게 중요한 점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두 이야기를 제외한 모든 이야기들이 개종의 본질적인 내용, 즉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어떤 개종의 요소들은 계속 반복되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는 개종의 요소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Duane R. Monette와, Thomas J. Sullivan, Cornell R. DeJong은 인터뷰한 내용을 분석하여 적용하는 것에 대해 알려주는데, 그들은 “문서 분석에 사용될 수 있는 코드 체계”를 제안하면서[8] 그러한 코드 체계는 대체로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한다. 첫째, 어떤 요소의 존재 혹은 부재, 둘째, 어떤 요소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하는 것, 셋째, 어떤 요소에 할애된 공간의 양, 넷째, 표현의 강도.[9]

내가 한 본 연구의 경우에는 특정한 개종 요소들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하는 것과, 그것에 할애된 공간의 양이 내가 만든 질문지에 크게 영향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네 가지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본 연구를 통해 발견한 것들 자체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연구 방법을 코드 체계화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첫째와 넷째 영역을 합친다면 (즉, 어떤 요소의 존재 혹은 부재에 관한 첫째 영역과, 표현의 강도에 대한 넷째 영역), 본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것들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각 이야기에서 표현의 강조를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각 응답자들이 자신의 개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혔기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한 요인들의 내용을 목록으로 나타낸다면 각 응답자에 대한 주요 개종 요소들을 효과적이고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코드 체계를 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표 1 팔레스타인 남성과 여성의 주요 개종 요인들

주요 개종 요인들은 포괄적인 질문지에 응답자들이 답한 것을 바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요약과 분석을 통해 유출한 것이므로 각 응답자들의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10] 표 1은 응답자 남, 녀 각각에 대한 주요 개종 요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표는 응답자 그룹 전체의 특징들을 보여주는 이어지는 다음의 분석들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된다.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자들에 관한 연구: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 (III)에서 계속됩니다.

[1] Ant Greenham은 남아프리카에 있는 Durban 출신이다. 그는 Dallas에 있는 Criswell College에서 Biblical Studies로 MA를 했고, 미국 North Carolina Wake Forest에 있는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으로 PhD를 했는데, 논문은 이슬람에 대해 썼다. 그와 아내 사이에는 성장한 두 명의 자녀가 있고, 여러 명의 손주들이 있다. 현재는 그가 박사학위를 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2] 이 요소들은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대답한 내용이다. 그녀는 자신이 꾼 꿈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네 가지 요소들은 그녀의 개종에 관한 이야기에 잘 들어맞기 때문에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소들로 간주되었다.
[3] 포괄적인 질문지에서 그녀가 세례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와 아내를 여자 1의 집에 데리고 갔고, 또 통역도 해 준 남자 1은 세례는 예민한 문제이니 질문지에서 빼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고, 그래서 여자 2부터 여자 8까지는 그 문제를 묻지 않았다.(Ray Register와 믿는 자 A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 이들 중 대부분이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세례를 예민한 문제로 보는 것은 여성 1부터 8까지라기 보다는 남자 1인 것으로 보인다. 개종 자체에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세례가 개종의 중요한 지표인 것은 사실이다.
[4] 여자 4는 내가 그녀를 인터뷰한 날 여자5와, 6, 7 그리고 여자 8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녀들은 나의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하기 전에 여자 4가 인터뷰할 때 돌아가면서 참여했다.
[5]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떠나지 않은 것 (혹은 둘째 부인을 얻지 않은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아이를 잃은 여인이라는 것과 후손 (반드시 아들이 아닐지라도)이 없는 남자라는 수치가 그들을 짓눌렀을 것이고, 아이를 낳아 줄 다른 아내를 얻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된다. 나는 그 남편을 잠깐 동안만 만나 보았을 뿐인데, 그도 역시 믿는 자임이 확실한 것 같았다. 그가 믿는 자이기 때문에 아내를 떠나지도 않고, 다른 아내를 얻지도 않았을 것이다.
[6] 그녀는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하면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개종 이야기에 비추어볼 때, 꿈 꾼 것이 그다지 중요한 요소였던 것 같지는 않다. 그녀도 꿈을 설명하는데 아무 흥미도 느끼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에게 굳이 꿈을 설명하도록 요청하지 않았다.
[7] 이 네 가지 요소들은 그녀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답변들이다. 그녀가 한 모든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이슬람에 대한 거절과 예수님의 존재가 더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드러난다.
[8] Duane R. Monette, Thomas J. Sullivan, and Cornell R. DeJong, Applied Social Research:Tool for the Human Services (New York: Holt, Rinehart & Winston, 1986), p.175.
[9] 위의 책, p. 181.
[10] 내용 분석과 코드화의 과정은 각 이야기들을 위에서와 같이 요약하는 과정에서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두 개의 질문지들을 함께 통합하면서 요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또한 그 요약들은 각 개종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정확히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2010년 2월 23일 화요일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자들에 관한 연구: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 (I)

글쓴이: Ant Greenham[1]
원문: http://www.stfrancismagazine.info/ja/pdf/2010/116-175SFMFEB2010.pdf

1. 서론
이슬람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무슬림들이 생겨나고 있다. 무슬림들의 개종에 관한 문서를 보면 여러 흥미로운 개종의 이유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개종자들에 대한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11명의 남성들과 11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2003년 1월에 그들의 개종 이유에 대한 연구를 해 보았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 나는 성경에 근거한 개종의 개념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즉, 한 개인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리스도께 겸손히 엎드리면서 그에게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을 개종으로 보았다.[2]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점령지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이 개념을 적용하였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이 지역에 대해 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2 응답자들을 선택한 방법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역 자료를 모두 검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않았다. 그 지역에 있는 개종자들의 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에 살았던 Ray Register는 내가 도움 받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또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스라엘에 살았던 나의 경험도 도움이 되었다.[3]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나를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자들에게 소개해 주었고, 필요할 때는 통역도 해 주었다. 개종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누구를 만나게 될 지 미리 알지 못하고 있었다(아마도 보안상의 이유였을 것이다-역자 주). 내가 인터뷰한 개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뷰가 이루어진 곳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겠다.[4]

3 질문지의 사용
나는 자유 해답식 질문지를 사용하여 응답자들이 그들의 개종 이야기를 제시하도록 하였다. 또한 각 이야기에서 얻은 통찰력을 확실히 하기 위해 좀 더 포괄적인 내용의 질문지를 사용하여 내용을 보충하였다. 즉, 다섯 개의 자유 해답식 질문들로 시작하여 응답자들의 개종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인터뷰를 할 때는 처음에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어린 시절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응답자들이 가능한 한 많이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익숙해 지도록 하였다. 그 다음에 그들이 무슬림이었을 때는 어떠했는지,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지, 개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개종 후에는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를 물었다.

각 인터뷰의 목적은 개종자 자신으로부터 자신이 왜 믿게 되었는지를 듣는 것이었다. 일단 인터뷰 대상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 후에는, 그들에게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변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한 포괄적인 질문지를 사용한 것은 개종자들이 해 준 이야기들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또한 나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에 자료를 보충하고 들은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4 개종자들의 이야기
각각의 이야기들은 모두 다른 내용으로 구성되어있고, 모두 나의 두 가지 질문지에 응답한 것들이다.[5] 동일한 질문을 했기 때문에 각 경우에 유사한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종자들의 이야기이지 내 이야기가 아니다. 개종에 대한 이해에 맞추기 위해 내가 그 이야기들을 재단해 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개종의 개념을 가지고 그 이야기들을 분석했고, 나는 눈에 띄는 강조점들과 좀 앞뒤가 맞지 않는 점들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개종의 이야기들을 전한 후에 각 개종자가 개종을 하게 된 주요 원인을 알아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관계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내가 인터뷰한 11명의 사람들을 ‘남자 1’부터 ‘남자 11’까지로 부르겠다. 또한 여자 11명은 ‘여자 1’부터 ‘여자 11’로 부를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크게 작게 기존의 믿는 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나는 그들은 ‘믿는 자 A’부터 ‘믿는 자 L’까지로 구분하기로 하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익명성을 유지하는 데도 좋고, 여러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동일한 사람을 알아보는데도 유익하다. 동일한 사람은 동일한 명칭으로 불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동일한 믿는 자 A가 여러 개종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그는 다른 개종자들의 이야기에서도 모두 믿는 자 A로 등장할 것이다. 다른 믿는 자들도 개종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지난 가는 영향인 경우가 많고, 기독교인 선생들처럼 한 그룹으로써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별히 구분하여 지칭하지는 않겠다.
4.1 남자 1
이야기
남자 1은 독신으로 20대 후반이었다. 그는 열심 있는 무슬림이 아니었고, 꾸란을 잘 알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예수님을 믿었고 (동정녀 탄생), 꾸란에 예수님에 대한 다른 사실들도 나와 있지만, 그런 것들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꾸란과 성경 사이의 차이점을 논리적으로 살펴 볼 수 있었고, 이 두 권의 책이 모두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가 그의 동네에 살고 있는 두 명의 미국인들(특히 그 둘 중 하나인 믿는자 A)을 만나면서 중요한 진보가 있었다. 그들은 그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했고, 자신들은 예수님을 전하고, 어떻게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지를 전하기 위해 그 곳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남자 1에게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주었다. 남자 1은 비디오로 된 영어와 아랍어 성경 공부 교재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었다. 그 미국인들이 한 역할과 그들이 남자 1에게 제시해 준 그리스도에 대한 자료들은 그가 예수님을 믿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이야기에는 몇 가지 맞지 않는 점들도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종교를 바꾸는 문제(즉, 개종)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가 세례를 받았는지 밝히기를 거절했다. 그의 가까운 가족들은 그가 공식적으로 무슬림으로 남는 한 그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무슬림들 역시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데 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성경이 진리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수께서 주신 영생에 대한 확신과 응답된 기도는 그의 신앙에 역할을 하였다. 예수님이라는 존재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분이었지만, 그는 그리스도께서 기적적으로 그의 삶을 바꾸셨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라는 그의 수치를 (죄는 수치스러운 것이므로 – 역자 주) 가져가셨다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했다. 단지 오래 전에 자신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강조했다.

분석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남자 1의 경우 개종에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그 부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경험은 성경과 꾸란 모두에 근거하여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사실 그는 (지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오랫동안 말해 왔다. 그는 믿는 자 A를 만나기 전부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자신을 이슬람으로부터 멀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세례 받은 것과 이슬람을 떠난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진정한 개종의 표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공개적이지 않은 많은 숨은 신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 1은 그의 삶에서 이슬람을 대신 할만큼 그렇게 중요한 어떤 것도 보이고 있지 않다. 더구나, 그가 말하는 응답된 기도의 경험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그런 기적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온 그런 종류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겸손하게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어떤 표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그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가져가셨다는 사실에 대한 답을 거부한 것도 그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정말 믿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남자 1의 경우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예수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상당히 많아진 무슬림이지만,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6]

4.2 남자 2
이야기
남자 2는 독신이며 지적인 젊은이였고, 장남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58년 동안 종교 지도자로 있었지만 그런 사실이 남자 2에게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는 꾸준하게 기도하거나 금식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한 때도 있었는데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무슬림 공동체가 그를 믿지 않는 자로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종교적인 행위들을 믿지도 않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전부터 이슬람을 멀리 하였다. 하지만 이슬람을 거절했기 때문에 개종한 것은 아니다. 그는 꾸란에 나오는 예수님을 보면서 기독교에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는 더 읽고 싶었고, 지역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에서 문서들을 보내주었다. 개인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공허한 마음은 그를 주님에게로 이끌었다. 그는 성경이 그를 그리스도께로 이끈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성경의 진리가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말씀, 구원의 확신이 특별히 중요했다. 그는 또한 그가 구원 받았을 때 경험한 영광(honor)의 느낌을 강조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의 수치스러운 죄를 가져가심으로 인해 느낀 것이었다. 그 결과로 그의 모든 사고방식이 변했다. 근처에 있던 한 대학의 신자가 그가 방송국에서 받은 자료를 보고는 한 성숙한 아랍 그리스도인인 믿는 자 B를 소개시켜 주었다. 남자 2는 그때쯤 이미 믿는 자였고, 믿는 자 B와의 만남은 그가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확신시켜주었다. 믿는 자 B와 격려가 되는 모임을 가진 후에 그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한 큰 센터에서 하는 믿는 자들의 그룹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성경을 공부하였고, 그것이 진리이며 살아있다는 확신가운데 성장하였다.

그의 개종으로 그의 삶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문제에는 답이 있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단순히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그의 삶을 변화시키셨다. 그의 가족들도 그에게 일어난 변화를 단번에 알아보았고, 그의 아버지는 그의 방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성경과 기독교 서적들을 태워버렸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계속되던 문제들은 별로 종교적이지 않은 그의 삼촌이 끼어들면서 중단되었다. 그는 집을 떠나 대학에 가서 그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지내는 것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그는 구속적인 환경과 마을 사람들의 거절로부터 떠나있는 것이다. 그가 박해 받는 한 신자의 영향을 받아 개종하게 되긴 했지만,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하마스의 즉각적인 영향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하였다.[7] 그는 세례를 받았고, 기독교 사역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만 기존의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 깊이 받아들여졌다고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여행하는 것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분석
남자 2는 이슬람의 제한에서 벗어난 것에 감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가 성경에서 본 진리와 생명이 그의 개종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 진리와 생명이 성경에만 제한되지 않고 그의 삶도 바꾸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인해 일어난 온갖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사회적인 영향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삶의 변화를 가장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예수님이 그에게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고, 그 결과로 그가 경험한 새로움이 믿지 않는 그의 가족들에게 분명하게 보였으며, 그에게 계속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4.3남자 3
이야기
남자 3은 독신으로 매우 힘든 가족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여덟 명의 여자 형제들과 한 명의 남자 형제가 있었다. 그는 열 세 살 때부터 가족들의 생계를 도왔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어머니는 늘 동생들을 돌보느라 바쁘셨기 때문에 그는 늘 혼자라고 느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그의 마을에 있는 안 좋은 지역에서 야채 가게를 운영하면서 마약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무슬림으로서 이슬람의 종교적 실천들을 따라 하기는 했지만 그는 알라를 두려워했다.

어느 날 한 젊은 독일 여성 믿는 자 C가 그의 가게에 왔다. 그는 그녀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어떤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 후에, 그들은 토론을 위해 만나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는 그녀를 초대하여 가족들을 소개해 주었다. 가족들도 그녀를 좋아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말은 그만해야 한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가 그녀에게 그 말을 전달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그녀에게 가족들 모르게 자신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고 알려왔다. 그녀는 그에게 아랍어로 된 성경을 읽으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또한 깨달음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점차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고, 믿는 자 C는 그의 많은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그녀는 그가 무슬림이기 때문에 그와 결혼하기를 거절했지만, 그에게 예수님께 맡기면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그를 결혼한 독일 여성인 믿는 자 D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그녀가 그에게 성경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다고 느꼈고, 눈을 감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 말씀에 응했다.

그 다음 두 해 동안 그는 다른 신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기도했지만, 그가 무슬림들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잘못하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세례를 받았지만 그 이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성령님을 느끼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이미 독일로 돌아간 믿는 자 C 때문이 아니라 바른 이유에서 그런 관계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크리스마스때 그가 독일로 가서 믿는 자 C와 그녀의 가족과 2주 동안 시간을 보냈고, 돌아와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의 영적 삶에는 파동이 있었고, 그는 2년 후에 다시 독일을 방문하였다. 그 때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갔고, 그 곳에 있는 기독교 기관에서 훈련을 받았다. 독일에서 (더 많은 훈련을 받기 위해) 베네수엘라로 떠나기 직전에 그는 자신이 ‘영적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하였다. 그는 그것이 초자연적인 꿈이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깨어있었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끊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비록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자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기도했던 믿음과 사랑을 받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모든 일이 함께 일어났는데, 그가 거기서 본 기적들은 그가 스스로를 전에는 무슬림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자로 보도록 도와주었다.[8] 그는 베네수엘라에 머물렀던 마지막 기간에 (다시) 세례를 받았다.

자신의 개종을 돌아보면서, 그는 자신이 한 발짝 한 발짝씩 예수님께로 왔다고 말했다. 각 발걸음이 중요한 것이었고,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걸음이었다. 사실 성령님이 그가 그리스도께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또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성경 읽기,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본을 보였던 몇 명의 신자들의 삶이 그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강조하였다. 그 때 이후로, 그의 삶은 비록 불완전했지만, 훨씬 나아졌다. 그의 가족은 이 인터뷰가 있기 몇 달 전까지 그의 삶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사촌 몇 명이 위협을 가해 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분명히 신자들의 그룹에 속하겠지만, 그의 가족 이외의 무슬림 공동체에게는 자신의 개종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가족들과 의견 일치를 보았다.

분석
‘과정’이라는 말이 남자 3의 개종의 경우에는 너무나 잘 맞는 말이다.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그는 성령님으로 인해 그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은 그가 초자연적인 꿈을 꾸기 전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되기 전의 경험들이(저자는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이루어져야만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역자 주) 그에게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빼놓고 그의 개종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남자 3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리우스와 같이 개종의 과정에서 몇 가지 영적 경험들을 한 경우이다. 그러나 (그들과 마찬가지로) 남자 3의 경우에도 자신의 경험들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믿는 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분명한 때가 있었다.[9]

4.4 남자 4
이야기
남자 4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십대였고, 인터뷰를 하기 2년 전에 개종하였다. 그의 가까운 가족들은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았다. 비록 가족 들 중 네 명의 삼촌들과 그는 겉으로는 종교적인 것들을 잘 지켰지만 말이다. 그는 무슬림이었지만 그는 1학년부터 로마 카톨릭 학교에 다녔다. 처음부터 그와 카톨릭 사이에는 상호간에 어떤 애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기독교 예배에 참석한 적도 있었지만, 4학년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을 적대시하는 호전적인 무슬림들로 이루어진 학교 폭력배들을 두둔하면서 파괴적인 행동에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카톨릭이었던 그의 반 친구와 이웃에 살던 믿는 자 E로 인해 그의 삶이 바뀌게 되었다. 그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폭력배 두 그룹이 모두 그의 변화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믿는 자 E는 남자 4를 기독교 청년 모임에 초대했다. 남자 4가 갔을 때 그는 무슬림들과 진정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차이를 보았고, 용납 받는 느낌을 받았다. 믿는 E 또한 그에게 카톨릭 신자가 되는 것과 중생(다시 태어남)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남자 4는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그의 삶에 받아들였다.

남자 4는 성경 읽기와, 기독교 서적 읽기, 예수님의 진리의 메시지, 하나님의 영광, 이슬람의 거절 같은 자신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몇 가지 다른 요인들도 지적했다.[10] 그러나 그는 조심스럽게 이슬람과 무함마드를 공격하는 것은 무슬림들을 그리스도께도 인도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의 경우에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를 개종하게 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예수님은 기적적으로 그의 삶을 바꾸셨고, 그는 개종 후 훨씬 덜 호전적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된 후 그의 부모님과 삼촌들은 한 무슬림 종교 지도자에게 그의 결심을 돌이키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 번은 소리 소리 지르며 말이 오고 갔지만, 그는 상대방의 얼굴에 물을 끼얹고 싶은 유혹을 절제할 수 있었다. 한번은 그의 부모님이 그를 집에서 쫓아냈다. 그가 밖에서 떨고 있는 동안, 그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예수님은 판초(한 장의 천으로 된 외투- 역자 주) 같은 것으로 그를 감싸고 계시면서, 결코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또한 몇 번의 기도가 응답 받는 경험을 하였다. 그의 부모님은 절대로 그가 교회에 참석하도록 놓아두실 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했고, 지금은 부모님이 대부분의 경우 그가 교회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학교에서 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선생이 그를 매질 했을 때도 그는 그를 위해서 기도했다. 그 선생은 좀 나아지게 되었고, 그는 그 선생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남자 4는 또한 정치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기도가 그 상황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에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공동체 사이에 적대감이 있을 때 기도를 통해 상황이 해결된 것이다.

분석
아직 젊기는 하지만, 남자 4의 삶에 나타난 변화가 그의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영향이 처음부터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의 변화된 삶에 강하게 이끌렸다. 그는 개종 후에 그의 삶에 나타난 여러 변화들을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나타난 인격적인 변화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신비한 경험들 (기도응답과 같은)이 모두 그의 개종 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그에게서 그런 말을 이끌어내기 전에는 예수님 꿈을 꾼 것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러한 경험들은 그의 개종에 대한 확인이었을 뿐, 그의 개종을 이끌어 낸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4.5남자 5
이야기
남자 5는 나이 많은 결혼한 사람으로 교육은 많이 받지 못하였다. 그는 무슬림으로서도 별로 종교적이지 않았는데, 4학년 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하는 천사의 비전을 보았다. 그는 그 비전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났을 때, 결혼하고 그의 첫 아들이 태어난 후에,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누군가가 그에게 성경을 주었다. 그는 그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그가 비전으로 보았던 그 말씀을 (누가복음 2:13-14 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아직도 어린 시절에 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흥미로웠고,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또한 (미국인) 믿는 자 F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포함한) 다른 신자들과 함께 남자 5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1]
비록 그가 개종한 후에도 몇 년간 특이한 경험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가 어렸을 때 본 비전이 그가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가 한 여러 특이한 경험들은, 뱀에 물렸는데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영적인 인도함을 받는 꿈들, 기도 응답들, 2001년 9월 11일에 있었던 일을 미리 예감 한 것 등이다. 그러나 그의 개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들은 성경(과 기독교 서적)에 나오는 예수님이 전하신 진리와 예수님의 존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이 자신의 삶에서 하신 기적적인 일들, 그리고 신자들의 긍정적인 삶이다. 그는 꾸란과 성경에서 모두 말하는 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지만, 꾸란에서 예수님에 대해 하는 말들이 개종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대신에, 성경이 그의 영적 양식이 되었고, 그는 더 많이 듣기를 원했다. 그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배웠다 (마 4:4)

남자 5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신자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많이 경험하지는 못했다. 한 번은 병원에 갇히기까지 했다. 그는 종종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는 자신이 꾸란에 나오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믿는 자로서 도덕적으로 순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나 강하고, 또한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느낀다. 불행히도, 그가 이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어느 신자들의 그룹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분석
남자 5는 그의 믿지 않는 가족과, 기독교 공동체와의 교제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크게 불리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그가 삶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경험했고, 계속해서 그리스도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그에게 특별한 중요성을 가졌는데, 그것은 그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놀라운 비전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고, 수 년간 영적인 양분을 제공해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존재와 진리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개종 이후에 하게 된 특별한 경험들로 인해 격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 경험들은 믿는 자들과 정기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잘 보완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믿는 자 F와 계속 연락을 갖고 있고, 나의 방문을 매우 기뻐하였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그를 받아들여 준 신자들과의 연합과 그들의 도덕적 가치관을 높이 보는 그의 태도는 그의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6 남자 6
이야기
남자 6은 결혼한 젊은이로 교육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7세대 째 계속 고향에 살면서 좀 지위가 있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장남이 아니라고 강조했으며, 가족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자라는 내내 매우 반항적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모스크에 갔지만, 이슬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자신의 무슬림 이름을 싫어했으며, 다른 무슬림들과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종교 지도자였지만, 6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남자 6은 이렇게 개종하기 전에 이미 이슬람을 거절했고, 그것이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했고, 왜 무슬림들보다 그들이 더 나은 것인지 의아해 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게 된 주 원인은 무슬림 개종자인 믿는 자 G로 인한 것이었다. 믿는 자 G는 남자 6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해주었지만, 남자 6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그것은 믿는 자 G가 턱수염을 기른 것을 보고 그가 강경한 이슬람주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는 자 G가 주는 신약성경을 받았는데 그 안에는 믿는 자 G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는 성경을 읽어 보았고, 때때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 7개월 후에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그가 ‘한 밤중’에 창 밖을 보며 깨어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것이 그의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그를 알지도 못하면서도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는 믿는 자 G를 불러서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었던 그 분(예수님)이 자신에게로 오셨다.’고 말했다. 믿는 자 G는 남자 6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남자 6은 믿는 자 G를 만나기 시작했고,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해 배웠다. 그의 삶이 달라졌다. 그는 죄에서 돌이켜 새로운 법에 매인 사람으로 살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의 개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는 것은 예수님 바로 그 분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정치적인 불안정이다.[12]
정치적 상황이 그를 몹시 짓눌렀다. 그의 외부 환경은 (두 번째 인티파다로 인해,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서 일어난 팔레스타인들의 봉기이다-역자 주) 점점 더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었고, 그는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그의 삶에 개입하신 몇 가지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런 일들은 구원 받은 초기에 좀 더 자주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일들에는 꿈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을을 수색할 때 보호해 주신 것, 기도의 응답 (그 자신과 아버지의 일자리를 위해 기도했을 때) 등이 있었다. 그는 보안 조치로 인해 다른 지역에 있는 신자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어렵기는 했지만, 그들이 자신을 받아들여 주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숨어서 믿고 있었기 때문에 박해는 아직 당해보지 않았다. 만일 그의 개종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의 매부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석
남자 6은 분명 어려운 상황에서 개종을 하였다. 그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몹시 어려움을 당했다. 그가 성장하는 동안 아버지가 투옥되셨고, 현재도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동체와 하나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확실하게 이슬람을 거절했다. 삶을 바꾼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반항과 거절의 상황에서 일어났다. 그가 (한 밤중의 경험의 결과로)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 것과,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이게 된 것은 그의 삶에 순수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 준다. 그의 변화는 그가 호의적으로 다른 신자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인터뷰를 위해 나와 함께 간 사람들에게도 그는 호의적이었다. 비밀 신자이기에 그는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긍정적인 모습은 그가 인터뷰 하는 동안 그의 믿지 않는 아내 앞에서 기꺼이 신앙을 고배하려 했다는 것과, 그가 최근에 그의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아버지를 위한 기도는 아버지의 일자리를 위한 것과 관계된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4.7 남자 7
이야기
남자 7는 잘 교육받은 결혼한 사람이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가정 출신이고, 이슬람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이슬람에서 배운 것과 같지 않은, 죽이는 것을 즐겨 하지 않는 신을 찾기 시작했다. 이 탐색은 그가 아버지와 나눈 사랑 깊은 관계에 영향 받은 것이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가 하나님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해 주었다. 몇 년이 흐른 후, 유대인 정착촌에 살고 있는 믿는 자 H가 그에게 몇 권의 기독교 문서를 주었는데, 그는 폭력보다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신약에 매혹되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무엇인가가 그에게 더 공부하고 배우도록 채근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는 믿는 자 H를 그의 집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일년의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이 주님께 삶을 드리도록 창조된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한 소년이 갑자기 친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의 삶과 성품에서 큰 변화를 경험하였다. 그는 자신의 개종에서 특히 그리스도인의 교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밖에 영생의 확신과,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중요하게 보았다.

그는 신자들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졌지만, 강한 거절과 박해도 경험해야 했다. 그가 그의 문화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끊으려 할 때마다 항상 문제가 있었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그가 더욱 주님을 신뢰하도록 해 주었고, 그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정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숨어있어서 그렇지, 분명히 훨씬 더 많은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는 분명히 자신처럼 진리를 알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는 신자들은 숫자적으로 충분치 않다고 보고 있었다.

분석
남자 7의 개종에서는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들간의 교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그가 그러한 관계를 통해 진정한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가 육신의 아버지와 가진 관계 역시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기 위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13]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이슬람에서 떠나 신약을 읽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하였다. 현재, 핍박을 받고 있음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 역시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강한 바람을 나타냄으로써 그의 삶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4.8 남자 8
이야기
남자 8은 잘 교육받은 결혼한 사람이다. 그의 부모님은 무슬림이셨고, 그는 학교에서 다른 과목들과 함께 이슬람을 공부하였지만, 그렇게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 목적 없이 사는 잃은 자 된 사람이었다. 십대시절 그는 믿는 자 H가 그의 친구 남자 7에게 준 몇 권의 문서들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들을 열심히 읽고 그의 마음과 삶이 변하고 깨끗해 지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그는 믿는 자 H가 그에게 준 성경을 읽고 그가 잃은 무엇인가를 발견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매우 강한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삶은 더욱 변화되었다.

한번은 그가 믿는 자 H와 함께 차를 운전하고 가고 있었는데 한 부주의한 운전자에 의해 차선을 이탈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다. 그런데 매우 충격을 받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차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사고가 있은 후 남자 8에게 모든 것이 변하였다. 그는 이제 주님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경을 계속해서 공부하면서 그를 위해 대신 돌아가신 분을 위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다른 요소는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 영생에 대한 확신, 꿈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었다.[14] 그는 또한 체포된 후에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힘든 때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의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개종 후에 그의 삶은 더욱 발전하여 어머니의 죽음마저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을 맛보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졌고,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만끽했다. 그러나 인터뷰 당시 그는 (죽음의 위협을 포함하는) 심각한 박해를 경험하고 있었고, 과거에도 이미 그런 박해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분석
남자 8은 남자 7과 가까운 친구였고 서로가 있는 자리에서 각각 인터뷰를 하였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남자 8의 개종 경험은 개인의 위기가 그 정점을 이룬 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진정한, 그리고 매우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였지만, 차선을 벗어나게 된 사고에서 살아남게 된 후에야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러한 확신은 그가 성경을 읽으면서 더욱 깊어졌고, 그의 전 삶을 그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요약하자면, 이 과정은 분명하게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의 변화된 삶은 개인적인 슬픔과 박해에도 사라지지 않는 그의 기쁨의 경험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4.9 남자9
이야기
남자 9는 잘 교육받은 사람으로 유대인 신자와 결혼했다. 성장과정에서 그는 라마단 동안 금식하였고, 금요일에는 아버지와 함께 기도하였지만 종교를 강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그는 17세 때부터 이슬람을 멀리하기 시작하였고, 종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1948년에 난민이 된 그의 부모님은 그와 그의 열 형제들을 사립 카톨릭 학교에 보낼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그는 점차로 죄와 구원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라크나 러시아에서 학위를 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카톨릭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가 카톨릭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 대학에 계신 그의 (외국인) 선생님들이 그에게 성경이 어떤 책인지를 잘 알려주셨다. 그는 학교에서 이슬람이 말하는 예수님에 대해 배웠지만,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어떤 다른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관대함과, 자비, 헌신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는 구약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구약의 말씀들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배운 사랑과 기쁨, 평안과 연결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또한 시온주의자들의 하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신약을 읽으면서 그 본질적인 메시지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는 교회 예배에 참석했지만, 계속해서 뭔가가 가로 막혀있는 듯 해서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신앙이라는 것이 인종이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첫 인티파다가 이 때 일어났다. 그는 거의 3년간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더욱 악화될수록 그는 더욱 성경을 갈망했다. 어느 날 그는 꿈을 꾸는 것 같은 어떤 경험을 했다: 그는 평화와 안정을 느꼈고, 그가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어떤 말할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예수님에게 감동을 받은 그는 그 분께 열정적으로 신앙을 고백했다. 그의 삶에 이러한 위기를 겪으면서 그는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 바로 직후에 그에게 영국에서 기독교를 공부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생겼다. 그는 영국에서 안수를 받고, 구약과 신약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후에는 유대인 신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그 이해가 더욱 깊어졌다. 그 결혼으로 그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받았지만, 결혼한 부부로 인정 받는 데는 아직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하는 모임에서 예배드릴 수 있었다. 비록 미래는 (정치적으로) 여전히 냉혹해 보였지만 그는 두렵지 않았다.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족했다. 그의 가족은 그의 개종에 대해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반응, 즉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가 시민권을 받음으로써 갖게 된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를 사용하여 가족들을 최대한 돕고 있다.

분석
남자 9는 카톨릭 교육과 긍정적인 그리스도인의 본, 그리고 신약을 읽는 것을 통해 기독교의 진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성경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기보다는 마음의 변화(즉, 거듭남)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스스로 가지고 있던 저항감을 포함하는) 어떤 장벽으로 인해 그가 꿈 같은 어떤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 경험이 그의 삶을 그리스도께서 인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가 그 전에 이미 집중하여 성경을 읽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후에 따라온 순수한 변화는 구약에 대한 인정과 정치적인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신뢰하는 그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15]

4.10남자 10
이야기
남자 10은 미국 시민권을 가진 독신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역에 헌신적이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매우 독선적인 무슬림 팔레스타인인 아버지와 카톨릭을 믿는 브라질인 엄마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와 그의 누나가 집에서 종교적인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이슬람식 문화와 전통가운데 성장했다. 남자 10은 아버지쪽 삼촌들(그들 역시 브라질 여성들과 결혼했다)의 집을 방문해서 예수님 사진을 보고는 궁금하게 여겼다. 그가 일곱 살이었을 때 어머니는 그가 도서실에서 어린이 성경 빌리는 것을 허락했다. 그는 그 이야기들을 읽었고, 그림들에 매혹되었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성경을 아버지가 보지 않도록 숨기라고 그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그가 아홉 살이었을 때 집을 떠났고, 아버지는 그와 그의 누나를 그의 고향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으로 데리고 가서 삼 년 동안 그곳에 있게 했다. 그는 그 때쯤 아버지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물었는데, 아버지는 그에게 무슬림들은 예수님을 존경하지만 그 분보다 더 크신 분이 계시다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그 후에 남자 10은 열렬한 무슬림이 되었다. 모든 종교적 실천들을 날마다 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모세와 예수님은 믿지만 무함마드는 알지 못하는 그의 어릴 적 친구들에게 이슬람을 전하고 싶어했다. 어느 저녁, 그는 두 가지 상반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젊은 영어권 신자가 예수님이 당하신 배신에 대해 말해 주었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서 한 무슬림 소녀가 십자가를 조롱하면서 무슬림들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즉시 다시 이슬람으로 돌아갔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이슬람이 옳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알라께 간절히 빌었지만 아무 응답도 받지 못했다. 어느 때는 알라께 그렇다면 자신은 예수님께로 가서 그 분께 응답을 구하겠다고 알라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심 있는 무슬림으로서 그의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것을 비난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내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열 다섯에 접어들었을 때, 부활절 전야에 그는 아버지의 집에 혼자서 있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는 몇 년 전에 그가 성경을 읽었던 바로 그 소파 옆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영이 그의 위에 임하셨다.” 그는 내부가 폭발하는 것처럼 느꼈는데 마치 예수님이 방으로 걸어 들어 오시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는 즉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는 치약으로 자신의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고 어머니를 불러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기 때문에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머니를 향해 사랑을 느꼈다. 그들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그는 자신의 개종을 회상하면서 성경보다는 기독교 방송과 문서가 한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신뢰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존재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 여전히 큰 중요성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기적적으로 그의 삶을 변화시키셨다.
그는 개종 후 가끔 교회에 나갔는데 교회에서 사람들이 그에게 죄인의 기도를 하도록 시켰다. 그러나 그의 개종사실을 알아차린 아버지가 그를 모욕하고, 때리고, 집에서 쫓아내 버렸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간혹 그 교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교회 문을 닫게 하겠다고 교회를 협박했다. 다른 두 교회는 교회 문을 닫도록 그의 아버지가 고소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아무런 교제도 갖지 못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도 하지 못했다. 그는 반항하고, 마약을 하고,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다. 그 자신 역시 아버지와 누나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슬람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그를 영원히 집에서 쫓아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에게로 갔고, 교회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 받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성경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마침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올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의 그의 사역은 매우 극적이었다. 돌아온 후에 그는 두 마을에서 쫓아냄을 당했고, 매를 맞았고, 죽음의 위협을 당했다. 사실, 몇 달 전에 그 곳들 중 한 곳에서 한 신자가 순교했다. 그 역시 몇 번의 고비를 넘겼다. 그는 하마스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건드릴 수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이 끊어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분석
남자 10은 어려서부터 강한 종교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를 오갔다. 주로 이슬람에 머물렀지만, 계속해서 좋은 무슬림으로 남고자 했던 그의 결심은 그의 기도에 침묵하는 알라에 의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약해졌다. 그 후에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당하기는 했지만, 부활절 토요일에 그가 하게 된 예수님의 경험은 그의 삶에 분수령이 되었다. 그 강력한 만남이 (성경적인 바탕이 아직 확고하지는 못했지만) 그를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으로 이끌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각적이고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는데 그것은 그의 어머니를 용서한 것이다. 초신자로서 그가 보인 연약함은 상처 받기 쉬운 십대에 지독하고 지배적인 아버지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개종이 진심이었는지를 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그는 영적으로 성장했고, 후에 그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한 사역을 놀라운 용기를 보여주었다.

4.11 남자 11
이야기
남자 11은 이제 개종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젊은이였다. 그는 두 살부터 15살까지 경건한 무슬림으로 살았고 매일 꾸란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이슬람은 그를 만족시켜주지 못했고, 그의 마음에 공허감만을 주었기에 그는 이슬람을 떠났다. 그의 어린 시절 역시 심리적이고 의학적인 문제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악몽을 꾸거나, 머리에서 소리가 들린다거나,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없다거나, 식습관, 두통, 이명(귀에서 소리가 나는 것-역자 주), 발과 눈의 문제, 신경성 등. 이 중 많은 문제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가끔, 그는 벨 소리를 듣는 꿈을 꾸었는데 그런 날이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지만,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지 못했다.

인터뷰를 하기 십 개월 전에 그는 한 이스라엘인이 쏜 총에 맞아서 심하게 다쳐서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16] 그러나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그가 꿈에서 들었던 벨 소리가 다시 들리고 난 후 11일 이내에 그는 걸을 수 있게 되었고 퇴원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위기를 겪으면서 그는 머리 속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 라는 이름을 들었고 꿈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그가 죄인이고, 거짓말쟁이고, 그의 일에 헌신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는 회개할 수 밖에 없었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었다. 이 꿈이 그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는 성경을 구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고향에 있는 기독교 기관에서 만나게 된 믿는 자 I로부터 그것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이틀 동안 집중하여 성경을 읽었다. 성경 읽기를 마친 날 아침에 그는 두통 없이 깨어날 수 있었고 이명도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식사도 잘 할 수 있었고, 마음에도 평강이 있었다. 그가 믿는 자 I 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믿는 자 I가 그에게 마리아가 예수님을 어떻게 잉태하게 되었는지 하는 것과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알려주었다. 믿는 자 I는 또한 그에게 하나님께 감사 드릴 것과 죄를 고백하고, 성경을 읽고, 매일 기도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그렇게 했고, 그가 기도 드리자 계속해서 육체적 심리적인 것들이 호전되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께로 왔다. 누가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가 성경을 읽었을 때 경험한 기적적인 치유 때문이다.

아직 몇 가지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수치스러운 그의 죄를 가져가셨다는 것 등), 그의 삶은 개종 이후 영적, 감정적, 육체적, 사회적으로 증진되었다. 그는 다른 신자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을 느꼈고, 그의 대 가족들에게서도 소외되지 않도록 잘 대처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무슬림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성경을 읽는 것을 통해 고침 받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성경을 읽고 있다는 사실도 전하고 있었다. 그가 경험한 변화가 그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믿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분석
남자 11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기적적인 변화의 이야기이다. 그는 아직 미성숙한 신자이지만, 하나님이 그의 삶에서 이루신 변화를 간과할 수 없었다. 그러한 기적들에 대해 예수님께 감사 드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또한 그가 성경을 읽고 있으며, 죄로부터 돌아선 것을 비롯하여 그의 삶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무슬림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가 아직 개종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을 알려준다.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자들에 관한 연구: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 (II)에서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 Ant Greenham은 남아프리카에 있는 Durban 출신이다. 그는 Dallas에 있는 Criswell College에서 Biblical Studies로 MA를 했고, 미국 North Carolina Wake Forest에 있는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으로 PhD를 했는데, 논문은 이슬람에 대해 썼다. 그와 아내 사이에는 성장한 두 명의 자녀가 있고, 여러 명의 손주들이 있다. 현재는 그가 박사학위를 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2] 여기 서 ‘과정’이라는 말은 어떤 개종이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 Transformation’는 개종자가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경험하게 되는 새로운 삶을 말한다. ‘겸손한 엎드림’은 자기 자신의 엎드림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죄와 어두움, 우상, 사단에게 매어있던 부분에 대한 포기를 뜻 한다. 이 과정은 개종자가 그리스도께로 향하면서,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능력을 행사하시면서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신과 인간 사이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위적으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3] 내가 개종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언급하면서 고마움을 표하겠지만, 그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사역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과격한 무슬림들이 이미 개종자들뿐 아니라, 선교사들도 공격하고 있다. 나는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4]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의 보안이 너무나 불안하기 때문에,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개종자를 공격할 수 있고, 또한 이 글을 읽고 나서 악한 의도를 가지고 특정인을 찾아볼 수도 있다. 연구에 사용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나의 박사 논문 “Muslim Conversions to Christ: An Investigation of Palestinian Converts Living in the Holy Land” (Ph.D. diss.,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2004)을 참조하라.
[5] 대부분의 경우, 개종자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 인터뷰 전에 알게 된 사실과, 인터뷰 후에 알게 된 사실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을 분석할 때는 그것을 구분하여 생각했는데, 특히 개종자의 이야기가 외부 영향을 받는 경향이 보일 때 더욱 그러했다. (여기서 외부 영향에는 포괄적인 질문들을 다루는 질문지에서 나온 제안들을 포함한다.)
[6] 남자 1의 경우가 더욱 복잡한 것은 그가 인터뷰를 할 당시 믿는 자 A에게 고용되어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더욱 남자 1로 하여금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그리스도와의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는 자라는 인상을 주고 싶게 하였을 것이다. 인터뷰 후에 응답자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은 연구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도 없다.) 남자 1의 경우에는 한 1년쯤 후에 다시 이슬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따라서 인터뷰를 하면서 생겼던 남자 1이 정말 개종한 것인가 하는 염려가 근거 있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7] 그를 해치려고 한 사람들이 그에게 손을 뻗치려고 했다면 그들은 아마 체포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과격한 사람들이 이미 이스라엘에 한 번 붙잡힌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만일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거주지들 사이에 있는 검문소를 통과하려고 한다면 체포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남자 2는 현재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다.
[8] 그는 기적들이라고 말했지만, 그 기적들이 무엇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에서 남자 3에게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진실로 믿는 자였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러한 깨달음이 있게 된 방법보다는 그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었다.
[9] 그 독일 여성이 한 역할도 집고 넘어가야 한다. 각 과정을 주님이 주관하셨고, 그들도 그렇게 된 것을 매우 기뻐했음이 틀림 없다. 따라서 남자 3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은 믿는 자 C와 로맨틱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이거나 (처음에 일이 그렇게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혹은 믿는 자 D와 함께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당시 믿는 자 D는 그가 완전히 개종했다고 보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그가 긴 여정을 거쳐 진정한 개종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10] 이 다섯 가지 요인들은 주로 그가 포괄적인 질문서에 답변한 것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그는 다섯 가지를 각각 강조해서 말했지만, 여기서는 그냥 간단하게 나열하기만 했다. 그러나 남자 4는 내가 순서를 매기도록 제시한 개종 요인들 대부분에 대해 그것들이 모두 자신의 개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남자 4가 나에게 말해 준 것에 비추어서 이 다섯 가지 요인들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평가하였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남자 4에게 정말 중요했던 요인들을 추려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여기서 언급한 다섯 가지 중에 두 가지, 즉, 이슬람의 거절과, 예수님의 진리의 메시지가 남자 4의 개종에 주요 영향을 미친 요소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11] 믿는 자 5의 개종은 Bill A. Musk가 책에 기록하고 있는 그 이야기인 것 같다. 빌 머스크는 “1960년대에 팔레스타인에서 자기 마을에 있던 기독교 병원을 몇 번 방문하던 한 무슬림이 선교사를 자기 마을로 초대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하늘의 천사 꿈을 보게 되었는지 설명하면서 천사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로다.’ 고 노래했다고 말했다. 후에 그가 청년이 되어 성경을 샀을 때 그는 그 구절을 성경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선교사의 초대는 그에게 촉진제가 되었다. 그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는 또 다른 중요한 꿈을 꾸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 며칠 되었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 선교사가 전한 길을 따르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계속해서 그 선교사와 만남을 가졌고, 마침내 숨은 신자가 되었다.” Bill A. Musk, “Dreams and the Ordinary Muslim,”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16 (1988), p. 168. 머스크가 기록하고 있는 것과 나의 설명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머스크가 기록하고 있는 그 마을 사람이 내가 인터뷰한 남자 5와 절대적으로 일치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므로, 남자 5의 개종에 대한 것은 그냥 내가 연구한 자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한 명으로 보는 것이 가장 나을 것 같다.
[12] 이 네 가지는 포괄적인 질문지에 그가 답한 내용이다. 각각이 그가 자신의 개종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와 잘 들어맞고, 따라서 이 네 가지가 모두 아래에 설명해 놓은 대로 그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3] 이는 매우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무슬림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보는 개념을 거절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육체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남자 7이 하나님을 그의 영적인 아버지로 받아들인 것은 그의 개종에서 초월적인 요소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14] 남자 8은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하면서 이 다섯 가지 요소들에 각각 다른 강조점을 두었다. 그의 경우에는 예수님과 구원의 확신만이 정말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분석에서 다시 다루게 될 것이다.
[15] 그가 유대인 신자와 결혼했다는 것 역시 그의 삶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슬림 팔레스타인 사람과 유대인 신자 부부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에 살면서 겪게 되는 힘든 상황들에 대한 분석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본 연구의 범위에서는 벗어난다.
[16] 그가 이스라엘 거주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에 지나치게 염려한 한 이스라엘 군인이 총을 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일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2010년 1월 31일 일요일

신학적 도전: 이스라엘(the State of Israel),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을 괴롭게 하다!

글쓴이: 살림 무나야(Salim J. Munayer, 무살라하 책임자 http://www.musalaha.org/)
원본: http://www.stfrancismagazine.info/ja/pdf/2008/The%20Theological%20Challenge.pdf

1.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운명
1948년 국가 이스라엘의 탄생은 팔레스타인 사회에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문제는 항상 논쟁이 되어 왔고, 심지어 국제적 모임에서도 늘상 있는 일이다. 1948년 전쟁의 결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단 기억에 엄청난 상흔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유대국가의 성립에 따른 일반적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논설되어 온 바 있지만, 이 가운데 존재하는 소수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여러 면에서 있어,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동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험-즉 중동 전 지역으로의 분산, 난민으로서의 삶, 영토소실 그리고 연구기관들의 손실 등- 을 해오고 있다. 인구변화상으로도,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럽과 남,북미로 이주를 해 버린 팔레스타인 무슬림들 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버나드 사벨라(Dr. Bernard Sabell)의 연구에 잘 나타나 있는 바, 이러한 현상과 그 결과들은 대부분 국가 이스라엘의 태생에 기인한다.

2.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신학적 의문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이 분산될 때,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 또한 국가 이스라엘의 탄생에 관한 수 많은 신학적 문제들과 당면하였다. 이 한정된 글 내에서, 이러한 모든 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필자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베들레헴신학교(the Bethlehem Bible College)의 교학처장으로서, 필자는 성서를 팔레스타인 학생들에게 가르치곤 하는데, 종종 지금 학생들이 당면한 정치적 환경에 대한 신학적 의미에 대해 자문하곤 한다. 선생이라는 입장 때문에, 학생들은 상당히 기대하며 필자가 올바른 대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나 복잡하여 대부분의 경우, 명확한 답은 알 수 없다.
예컨대, 학생들은 가끔 매일 당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부당한 처사들에 대해 어떻게 대항하여야 할지를 묻고 한다. 검문소들(checkpoints)를 통과하면서 당하는 모욕과 차별은 커다란 상처로 남아 분노하고 심지어 경멸하게 한다.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날 수 없는(베들레험 사람들의 상황이지만) 신세는, 새장 안에 갇힌 신세이고, 어디로, 언제 가야할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몹시 두려운 경험일 것이다. 서안지구(the West Bank)를 감싸는 장벽은 그 안에 사는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어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지독한 부정의를 허락하시는가? 이에 더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에 어찌 반응하여야 하는가? “예수님이라면 어찌 하셨을까?”라는 자문을 시작점으로 해 보지만 이로써 족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며 말씀하신, 자비한 은혜의 수여자인 동시에, 악에 저항하고 친히 몸으로 성전의 환전상들을 몰아내신, 분노하는 의로운 선생을 알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세계 모든 압박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인 것이지만,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몇 가지 독특한 문제들이 상존한다.
언젠가 한 학생이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신학적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어느날 유대인 정착촌 사람들이 트렉터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에 건물을 짓고자 했다. 이 땅은 이 학생의 집안이 수백년 동안 소유하던 곳이다. 이 학생은 이스라엘 경찰에 도움을 청하였지만, 경찰들은 보호를 거절하였다. 학생 집안에서 자신들이 이 땅의 소유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보이며 유대인 정착촌 사람들에게 저항을 하자, 이들은 성서를 들면서 이 땅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을 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이 청년에게 큰 문제의식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땅을 빼앗고자 하는 이들이 그들의 정당성을 위하여 이용한 성서는 바로 이 학생이 신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성서이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물론 모든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적 정체성과 부르심 그리고 선교에의 사명 그리고 영적인 유산 등을 공급하는 것이 바로 이 성서였다. 이 경험은 바로 이 학생의 성서와 그 의미 뿐만 아니라, 자신의 땅에 대한 안정성을 흔들었다. 주께서는 이곳에서 태어나시고, 사셨고, 가르치시며 병을 고치셨고, 또한 같은 장소에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셨다. 바로 여기는 옛 예언자들의 땅이며, 수 백년 동안 이어져 온 신앙의 전통과 유산이 태동한 곳이다.

3. ‘진정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우리들의 적들에게 약속하셨는가?’
어떻게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성서가 자신들의 땅을 다른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셨다는 딜레마를 다루어야 하는가? 그냥 보통 사람들도 아니고, 자신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이들에게 말이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인 조상들이자, 성서이야기의 주인공들인 유대인들은 바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이 싸우고 투쟁하여야 하는 바로 그 “적”인 것이다. 이 난처한 방정식에 반응하고자 했던 수없이 많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어 왔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적, 종교적 정체성을 억제하거나 완전히 거부했다. 왜냐하면 이는 그들의 종족적, 민족적 정체와 큰 충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는 자유를 향한 정치투쟁 운동을 하는 세속적인 팔레스타인사람들과 함께 했다.
다른 이들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회피하고자, 구약성서의 중요성을 가치절하하여, 신약성서에만 집중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또 다른 반응은 구약성서를 간직하지만, 유대인과 관계된 계약이나 약속을 다루는 모든 구절 등은 생략한 채, 선택적인 읽기만을 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반응들 가운데 하나인 팔레스타인 해방신학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강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왜냐하면 주변인요, 피억압자요, 왜곡된 이들의 관점에서 정의에 관한 성서의 시각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유대인들(이스라엘시민권자들인 이들은 대부분 군인들이나 유대인정착촌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어쩔 수 없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학적 관점을 채색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유독히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여야만 하는 도전이다.

4. 서구 그리스도인들이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서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국가로서의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 관한 인식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과는 판이하다. 이는 몇몇 역사적, 신학적 요인들에 의해 크게 영향 받은 바 있다. 유대인학살(the Holocaust)에 대한 엄중한 영향력과, 바로 이러한 일이 현대의 교육받아, 문명화된 그리스도교적 유럽사회에서 발생하였다는 죄의식은, 서구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에 대한 온정적 시선을 갖게 하였다.
특히 서구 그리스도교의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역사가 유대인학살을 가능케한 유럽의 시대정신(Zeitgeist)으로 기능하였다는 사실을 염두할 때, 유대인들을 잘 대접하고자 하는 뜻은 이해할만하다. 신학적으로, 이는 중대한 변화였다. 또한 대체로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Evangelical Christians) 가운데, 유대인들에 대한 신학적,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예컨대,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유대적 뿌리(예컨대 성서고고학에 대한 열정 등으로 나타난다)에 관한 새로운 관심과 함께, 국가 이스라엘에 관한 정치적, 신학적 성원은 서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아주 당연하고 더할 나위없는 태도였을 것이다. 이는 수백년 동안의 박해에 대한 보상적 차원의 행동일 뿐만 아니라, 성서예언의 성취로서 환영하였다.
유대인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당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1948년(혹은 1967년) 이래, 미국과 유럽사회에 풍미한 바 있는, 이러한 종말론적 사건 이해는 이스라엘을 향한 정치적 후원과 순전한 사랑으로 지속적으로 견지되어 오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평화정착 노력이나 이 땅에 관한 협상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사람들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반대하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선물과 약속을 불경하게 거절하는 것요, 예수님 재림의 장애물로 이해한다.

5. 새로운 신학적 시각의 요청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신학적 논제는 심각한 반향을 불러 온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들의 상실에 대한 정의로운 분배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게 된다든가 혹은 팔레스타인사람들과 이들의 공동체는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로막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는 또한 수백년 동안의 소수자로서, 성지(the Holy Land)에서의 그들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한 오랜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충격적인 메시지는, 일부 그리스도교 시온주의자(Christian Zionists)의 냉담한 태도에 의해 형성된다.
많은 그리스도교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인내심이 거의 없다. 하여 국가 이스라엘에서의 정치적 열의에 순복하든지, 떠나 버리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재는 그저 시간을 지연시키는 일이기에, 이들이 떠나는 것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인 더 많은 유대인들을 위해 양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두말 할 것 없이, 이러한 주장은 당신의 가족이나 집 그리고 땅이 그 결과로 고통를 겪지 않을 때, 더욱 쉽게 진전된다. 이러한 측면은 서구사회의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소소한 신학적 문제일찌는 몰라도,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 자체와 관계된 중심적인 문제이다.
만약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거부하는 태도와 그리스도교 시온주의자의 냉담한 태도, 모두가 잘못이라면, 질문이 생기는데: 무엇이 올바른 태도인가? 우선, 감정적으로 휩쓸릴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유대인(the Jewish people)과 정치국가 이스라엘(the political State of Israel) 사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서에서 유대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동시에, 우리들은 국가는 정치적 실체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유대인(the Jews)에 관해 언급할 때, 그는 유대인에 대해 말하고 있지, 오늘날의 정치국가 이스라엘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이 둘 사이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치국가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국가를 목적으로 태동하였다. 그래서 유대인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유대인들은 성서적, 역사적 이해를 기반으로, 국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신실하심을 성취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아무리 복잡해도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하기에,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
둘째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 이해를 위한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이스라엘의 부정의와 모든 이스라엘을 등치시켰던 반유대주의의 사냥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우리는 유대인들을 통하여, 성서도, 예언자들도, 무엇보다 메시야가 우리에게 오셨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60년 동안의 정치적 사건들이 유대인에 관한 이해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일을 거부한다. 비록 어려운 일이지만,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이 땅(the Land)에 관해 갖고 있는 성서적 주장을 용인해야만 한다. 뿐 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인할 수 없고, 서구교회(the Western Church)에 의해 무시당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존재는, 땅의 신학(theology of the Land)이나 하나님의 계약(God’s covenant)의 실현 등과 같은 주제에 관한 논쟁을 유도하고, 이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의 역할에 관한 단순한 가정에 관해 도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작업들이 여전히 요청된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 하나님의 유대인과의 계약 그리고 땅의 신학 등에 결코 과거에도 지금도 몰입된 적이 없다. 그러나 1948년의 사건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러한 주제에 관한 연구와 질문들을 하게 했다. 어떤 이들은 성서로 돌아가, 위의 복잡한 신학적 주제들과 이에 따른 정치적 의미들에 관한 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스라엘 문제에 관해 세계 그리스도교계는 큰 갈등을 맛 보았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두 진영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세대주의자들로 알려진, 대부분의 복음주의적 그리스도교 시온주의 진영(Evangelical Christian Zionist)은 친 이스라엘 그리고 반 팔레스타인 입장을 견지한다. 하지만 정의와 사회복음을 옹호하는 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대해 보다 비판적 입장을,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대해 우호적 경향을 보인다. 우리는 특정한 이들을 반대하기 위해 우리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 어떤 형태의 신학도 우리의 근본적 신앙원리와 상충함을 천명한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믿는 신앙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이 함정을 거부하여야 한다. 우리는 비록 이 문제에 관한 최종적이고 올바른 해결과는 아직 멀리 있지만, 바로 여기가 훌륭한 시작점이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무살라하’(‘화해’를 뜻하는 아랍어-번역자 주)가 지지하는 화해의 장 내에서, 이스라엘의 메시야닉 유대인들(Israeli Messianic Jews)과 교제가 필요하다. ‘무살라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에 투영된 것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화해를 증진하려는 비영리기구이다. 우리는 우선,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과, 메시야닉 이스라엘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우리 각자의 공동체 안에서, 화해의 격려자와 촉매제가 되고자 한다. 우리 모두는 앉아서 대화하고, 함께 이 모든 주제들에 관하여 이야기 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모든 견해를 개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들은 두 공동체의 부족한 신학적 안정망을 발전시킬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비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를 소홀히 다룰다면 그 어떤 신학도 궁극적으로는 실패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주제들을 특정한 바 있고, 서로 만나야만 하는 이유도 알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해의 신학을 모색하는 도상에 있다. 이 신학은 팔레스타인에게는 정의를, 이스라엘에게는 희망과 안녕이라는 각기 공동체가 공히 바라는 필요를 전달하여야만 한다. 우리는 함께 이 도전에 응전하여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