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Reconciliation among the Bedouin
글쓴이: Sarang Kim
1. 베두윈 사회,역사 그리고 전통
1.1 베두윈 문화의 중요성
베두윈 족은 사막에 거주하는 아랍 민족이다. 그들의 조상은 선사 시대부터 아라비아에 거주하는, 구약의 창세기에 언급된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인 셈족이다.[i] 베두윈들의 기원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욕단 (셈의 아들: 아랍인들은 예맨 의 신화적 영웅인 카흐탄 Kahtan으로 부른다)과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그 수가 늘어 부족을 형성하고 부족간 연맹체의 구조를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다.[ii] 비록 그들이 사막에서 이곳 저곳을 떠도는 유목민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아랍어를 쓰는 귀족 출신의 배경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이슬람교가 아랍에 확립(7th century) 되기 이전부터 베두윈들의 언어는 아랍어였고, 그들은 움마야드 왕조 당시의 귀족 이였다 (the Umayyad, 661-750). 그러므로 당시 일부 움마야드 왕가의 상류층 자제들은 아랍어를 배우기 위하여 사막에 찾아와서 그들과 함께 살기도 했으며 또한 중기 시대에도 문법학자들과 이슬람 법학자들이 베두윈 들을 찾아와 그들의 선례를 중시하여 법적 판결을 행하고 그들의 어법에 맞춰 문법규칙을 정했다.[iii] 그러므로 베두윈 들의 전통과 가치관들은 여전히 아랍인들 가운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베두윈들 역시도 그 자신들의 귀족 출생과 아랍 문화의 뿌리가 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실제 베두윈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화해(중재)의 방법들을 간단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날 베두윈들은 아라비아, 걸프, 네게브와 북 아프리카 시나이 반도 등에 널리 퍼져서 살고 있으며 대부분 사막뿐만이 아니라 도시 등에도 정착해서 살고 있고 문명화된 현대 도시 베두윈들도 많은 수를 차지한다. 게다가 연대감이 강한 부족의 구조하에서, 지역들마다 각각의 부족과 씨족들에 따라 다양한 화해의 규율과 방법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다양한 규율과 방법들이 있다 할지라도, 모두가 사람들을 중재하는 제 3자라는 공통적인 필요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본 고는 베두윈 부족간에 행해지고 있는 화해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그들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베두윈 뿐만 아니라 다른 아랍인들과의 관계에서도 한층 더 다가가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1.2 사회 구조와 전통의 영향들
베두윈들 간에 행해지는 화해의 방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부족간의 구조와 그 연대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랍 국가들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오랜 기간 동안, 아랍 반도 전역을 거쳐 아랍인들은 수 많은 지역부족과 씨족들로 나눠져 있었다. 그들은 그 어떤 정치적 조직이나 이념이 아닌, 같은 전통적 정서를 나누는, 혈연 공동체들로 구성 되어 있었다.[iv] 일반적으로, 부족은 수 많은 단위의 씨족들로 형성되어 있으며, 씨족은 더 나아가 많은 가문(가족)들로 나뉘어져 있다. 영어의 개념으로 흔히 혈통, 혹은 가계 (lineages)들을 일컬으며 보통 5대로 형성되어 있는 부계 사회이다 (great-great-grand father). 같은 혈통을 갖는 가계는 베두윈 삶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단위이다. 이 단위는 적어도 1년 중 한 때는 함께 무리 지어 텐트를 치며 사는 목축 경제의 기본 단위가 되기도 한다. 이 다양한 가계 혹은 가문의 리더들은 씨족 의회를 구성한다. 이렇게 강하게 연결된 각각의 가문 그룹들이 베두윈 친족들인 것이다. 한 사람의 베두윈의 삶은 그의 친족들을, 또한 그의 친족들은 그를 의지하며 서로 연결 되어 있는 것이다.[v]
베두윈들의 부족이나 씨족 심지어 친족에 대한 가치는 일반적으로 비 아랍 세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며 강력하다. 그러므로 눈에 보여지는 많은 베두윈들의 성격이나 특징들은 이 부족 구조와 그 유대감에 깊게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베두윈 사회에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인 명예는 그룹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부족과 씨족에 대한 전적인 충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이슬람교가 아랍인들의 공식적인 종교이기는 하지만, 베두윈들 에게는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내려오는,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사막에는 모스크들도 많지 않았었고 공식적으로 학교 교육( 요르단에서는 베두윈들에 대한 공교육이 약 3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을 받기 이전까지는 이슬람의 교리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베두윈들의 전통은 코란의 가르침보다도 강력할 수 있었으며 아직도 베두윈들 사이에는 민속 신앙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두윈들의 오랜 기간 동안 그리고 여전히 어느 정도의 제한된 주 정부 통치권 밖에서의 삶의 방식 때문에, 그들은 그들 부족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자치적인 사회적 기구(부족에서 추방한다든지 혹은 피 값의 징수라든지 범죄에 대한 복수 집행 등을 할 수 있는 기능)를 가지고 있다. 아랍인들에게는 권리(정의)보다는 관습(전통)이 더 강력하며 실제로 관습(전통)은 도덕과 종교 면에서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정의인 것이다.[vi]
베두윈 들에게는 세가지 법이 있다: 베두윈 법, 이슬람 법(샤리아) 그리고 일반 법(국가 법). 부족과 씨족의 쉐이크(장로)들은 분쟁의 경우에서 재판관으로서 행사한다.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할 경우 부족 안에서 세습적으로 내려오는 재판관들도 또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평판을 가진 두 사람의 증인들이 죄를 인정하는데 요구 된다.[vii] 비록 베두윈 법이 공식적인 법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다스리는 가장 강력한 법으로 행사되고 있다.
1.3 베두윈 삶의 특성
베두윈들의 화해 과정은 공식적인 절차라기 보다는 오히려 가치관의 관점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 그들의 문화적 가치와 도덕관들이 이 화해 과정을 이루어 나가는데 있어 깊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막에서의 거친 삶 때문에 베두윈들은 독특하고 다양한 특성과 삶의 양식들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호전성과 충성도가 뛰어난 민족으로 유명하다. 사막으로부터 삶에 필요한 충분한 자원을 얻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다른 부족을 습격하여 재물을 얻는 것이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허용되었다. 상인들과 경작자(개발자)들은 그들의 습격으로부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카와스(khawas) 라는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viii] 그러나 베두윈들의 습격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그들이 다른 유목 부족으로부터 여자들을 잡아 왔을 때 그들은 여자들에게 어떤 폭력이나 성적 희롱을 행하지 않고 단지 노예로만 삼았을 뿐 이였다. 그들에게 타 부족을 습격한다는 것은 사막의 지루하고도 단순한 삶에 있어서, 생명의 손실 없이 노예와 음식과 교통 수단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수단 이였으며 일종의 삶에 활력소를 주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랍 선교의 선구자인 즈베머(Samuel Zewemer)는 이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습격이란 유목민들 사이에 정교한 예술이다; 도덕성이 놓은 아랍의 습격자들은 정직하며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규율적이다. 그는 그의 희생자들을 밤에 습격하지 않으며 갑작스런 침략에 의한 피 흘림을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 또한 만약 그의 습격이 실패한다면 그는 가능한 첫 번째 텐트에 들어가 그 텐트 주인의 명예에 호소하여 보호를 요청할 수 있었다.”[ix]
그러나 피 흘림에 관해서 만큼은 그들은 매우 엄격했다. 과거 한 사람의 생명은 씨족의 힘 이였다. 씨족의 세력은 재산으로서가 아닌 얼마나 많은 전사를 가졌는가에 의해 평가되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두 눈을 잃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과 동등하게 여겨졌다. 두 눈을 잃은 사람은 전사로서 전투에 나서거나 낙타를 몰거나 경작자로서 소용이 없기에 부족의 관점에서는 먹여 살려야 하는 쓸모 없는 골치거리가 되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한 생명에 해당하는 피 값이 시력을 잃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 되었다.[x]
손님에 대한 환대 역시 가장 기본적이며 규례[xi]이며 또한 사막의 고초와 위험에 의하여 배어난 베두윈 특성중의 하나이다. 커피는 오늘날도 여전히 손님에 대한 주인의 환대의 표시이며 동시에 친구인지 적인지를 분간하는 방법 중 하나로서 제공된다. 명예의 관례 역시 베두윈들의 화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개인 뿐 만이 아니라 가족과 부족을 유지하는 명예(Sharaf)에 대한 관례는 아주 엄격하다. 가족 혹은 부족의 전체 명성의 유지와 손실은 세대와 세대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명예는 가족이나 씨족의 유착 (아사비야Asabiyyah)과 관련이 있다.‘아사비야’란 씨족이나 부족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끝이 없는 충성을 의미한다. 아랍 역사가인 이븐 칼둔(14세기) 은‘아사비야’란 역사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며 인류 사회의 기장 기본적인 결속이라고 말했다.[xii]
부족간 습격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자연적 상황에 의하여, 가족의 부와 운명이 불확실 했던 그 이전 때부터, 베두윈들은 모든 것이 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숙명론을 발전시켰다. 오직 유일하게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품위와 명예를 지키는 것 이였다. 유목생활의 환경으로 말미암아 궁핍하게 될지라도 베두윈들은 부를 가진 다른 어떤 자들보다도 더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가진 물질적 소유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명성과 행동에 의해 평가 받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xiii]
물질적 부나 소유보다 명예에 대한 높은 평가는 베두윈들로 하여금 자신의 명예를 화해 조정의 과정 속에서도 소중하게 지키게 한다. 만약 누군가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했다면 설령 그의 마음속에서는 상대방을 용서했다 할지라도 그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야만 한다. 실제로 베두윈들의 화해 조정 과정을 보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빨리 화해를 맺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과정들을 통하여 올바로 그들의 명예를 되찾는 일없이, 신속한 화해를 맺는 것은 수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화해를 맺는 것 그 자체 보다 화해의 과정가운데 그들의 명예를 바르게 되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2. 분쟁의 종류들과 화해(조정)의 방법들
확대 가족은 아랍사회의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아랍 사회는 개인주의가 아닌 전체 씨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베두윈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들의 부족과 강한 결속력이 있으며, 같은 부족의 사람들은 그에게 있어서 더 큰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확대 가족은 위기의 때나 특별한 때에 함께한다. 만약 부족이나 가족의 구성원 중 누군가가 곤란에 처한다면 전체 가족들은 그를 돕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동원할 것이다.
2.1 부족들 간의 분쟁
만약 어떤 사람이 타 부족의 누군가와 분쟁이 생긴다면 이것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두 부족간의 문제로 확대 된다. 각 부족은 각각의 서열 체계와 문제들을 판결할 수 있는 조직체를 가진 수많은 씨족들로 구성 되어 있다. 만약 씨족이나 부족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각 부족의 쉐이크나 판결자들이 이것을 다루게 된다. 그러나 부족간의 분쟁이 생긴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좋은 평판을 가진 제 3 부족에서의 쉐이크나 판결자 (al-Qadir)가 중재자로 요구 되어지고 그가 두 부족간의 화해 조정 과정을 이끌게 된다. 화해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각 부족의 영역에 발을 들일 수 가 없다. 조정을 이루는 쉐이크가 두 부족을 방문하며 각 부족을 대표하는 쉐이크나 어른들과 오랜 협상을 거치며 그 후 손실(피해)에 대한 대가를 결정하게 된다. 두 부족간에 제 3의 중재자가 필요한가를 설명해 주는 매우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 부족들간에 습격이 일어났고, 한 사람이 살해를 당하게 되었다. 그 후 두 부족간에는 피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생명에는 생명이라는 원칙아래 반드시 한 사람의 동일한 피 흘림이 요구되었다. 살인을 행한 부족의 쉐이크는 자원하여 화해를 맺기 위해 상대 부족을 방문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도착하여 입을 열기도 전 길 한가운데서 상대 부족에 의하여 총격을 당하여 죽고 말았다.”[xiv]
쉐이크는 다양하게 적용되는 호칭으로 학교 선생님이나 모스크의 관료들 혹은 영어의 “sir”에 해당하는, 나이들은 낯선 이를 부를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사막에서는 일반적으로 공통체를 대표하는 부족 혹은 가족의 수장 등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쉐이크란 모든 법 집행자나 행정관 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들 부족의 번영은 그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xv] 오늘날 쉐이크의 중요성은 부족들의 구성원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자치 지구의 정부 관료들과의 협상을 잘 이루어내는 능력에 달려있다.[xvi]
2.2 직계 혹은 확대 가족간의 분쟁
씨족이나 친족간에 분쟁이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그 씨족의 쉐이크나 노인들이 중재자가 된다. 분쟁의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가족 그룹들을 기본단위로 하는 연속된 공의회들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결정이 내려지며 때로는 씨족들의 공의회를 거쳐 또한 부족의 자체 공의회까지 가기도 한다.[xvii] 가족간의 분쟁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손 위 남자 형제가 중재를 이끄며, 연장자를 공경하는 문화적 영향으로, 여성 역시도 나이가 들게 되면 그 위치가 부상하여,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상속 같은 가족 구성원내의 남자와 여자 형제들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베두윈 사회에서는 아버지와 큰 오빠(남자 동생)가 여성의 후견인이 된다. 과거에 여성은 법적인 위치가 없었기에 오직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그늘 속에서만 존재하였다.[xviii] 그러나 비단 과거뿐만이 아닌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전통 관습 속에서 자신의 법적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야르묵 대학의 인류학과 교수인 무함마드 슈나크는 베두윈 여성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아랍여성들까지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상속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상속권리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 아버지의 재산에 대하여, 마을에서 받아들여지는 일반적인 관습처럼, 자신들에게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 권리는 전적으로 남자 형제들이나 혹은 부계 쪽의 남자 친척들에게만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 여성들 중 하나가 그녀의 권리를 요구하고 그녀의 남자형제들과 상속권에 대하여 논쟁한다면 그녀는‘여자는 그녀의 부모의 집에서 결혼할 때까지 머무는 손님이다.’라는 대답을 들을 것이다. 즉 딸은 아버지의 상속에 대한 권리는 없으며 단지 손님과도 같은 환대를 받을 자격만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xix]
2.3 배우자들 간의 분쟁
베두윈들은 일처다부제의 결혼제도를 갖고 있다.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오늘날 베두윈들 가운데는 두 명의 부인이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부 부족에서는 주간 중에는 시내에서 일을 하며 주말에는 사막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보통 이런 경우 각각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xx] 여자들은 보통 사촌과 결혼하며 여성이 결혼 할 연령에 도달하면 양가의 부모들에 의하여 적합한 신랑감이 결정된다. 이러한 친족간의 결혼과 엄격한 관례들은 그들 가문의 명예를 지키며 더욱 안정된 부족간 결속을 원하는 데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베두윈들 사이에서 이혼은 일반적인 일상사이며 당사자들에게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양쪽 모두 그들의 평판에 손실 없이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다. 이혼을 원하는 남성은 다른 증인들 앞에서 단지 그의 의지만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여성은 결혼 당시 받았던 지참금을 지킬 수 가 있다. 반면 아내가 남편과 이혼을 원한다면 남편이 했던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단지 남편을 떠나서 아버지의 텐트로 돌아오면 된다. 만약 여성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원한다면 남편은 곧 이혼에 응하게 되고 지참금의 반환이 협상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xxi]
전통적으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연대감보다도 아버지와 딸 혹은 형제 자매간의연대감이 더 강한 사회가 베두인 사회이다. 윌리엄 랭체스터( William Lancaster)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베두윈 여성은 누구 누구의 딸 누구로 알려지며 그 것이 그녀의 진정한
정체성이다. 그녀는 누구의 아내로서나 누구의 엄마로서 그녀의 정체성을
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 혹은 아들은 법률적으로는
전적으로 다른 그룹에 속하며 심지어 부족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법적 책임은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 혹은 부족의 남성 친척에게 있는
것이다.”[xxii]
아내와 남편간의 문제가 있는 경우 흔히 부인의 큰 오빠 혹은 동생이 중재자가 된다. 문제가 클 경우에는 베두윈의 법과 전통을 잘 아는 쉐이크 혹은 종교적인 법률을 잘 아는 부족은 판단관 (qaadi) 혹은 정부의 관료들 (muktar)이 회의를 소집하여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여자는 그 모임에 참여할 수 없고 그녀의 오빠(남동생)나 아버지가 참석한다. 때로 법정까지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에도 그녀는 아버지나 오빠(남 동생)를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이다.
3. 화해 언약들 (계약들)[xxiii]
3.1 커피 언약
베두윈들은 어떤 손님이라도 신이 보낸 손님으로 여기고 따뜻하게 맞이한다. 커피는 이러한 환대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베두윈들은 언제나 그의 고귀한 손님을 환대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xxiv] 방문을 하자마자 접대 받는 커피는 평화의 언약을 맺는 것을 의미한다. 세 잔의 커피가 접대되는데 각 잔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 환대 (Daif), 번영(Keif) 그리고 어떠한 문제나 사고에서의 보호 (Sayf).[xxv] 그러나 양쪽 당사자들 간에 문제가 있는 경우 화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손님은 보통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접대하고 마시는 것은 손님과 주인간에 평화를 주고 받는 표시인 것이다.
3.2 소금과 만사프( mansaf- 아랍 전통 양고기 정식)언약
비록 화해가 성사되었다 할지라도 만약 주인이 소금이 들어 있지 않는 빵이나 음식을 대접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화해 후에 그들은 소금이 들어간 빵과 만사프를 먹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실상 만사프라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보다 동물을 죽여 피를 흘린다는 것에 더욱 의미를 둘 수 있다. 이러한 동물을 죽이는 절차는 일종의 속죄를 의미하며 피의 복수에 대한 보상으로 또 다른 피가 흘려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언약을 잘 보여주는 한 예가 있다.[xxvi] 1929년경 마프락의 베니 핫산 과 제라쉬의 파우리라는 요르단 두 부족 간에 피 흘림의 분쟁이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싸움이 계속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다. 화해를 위한 여러 모임들이 있었으나 언제나 소금없는 빵과 만사프만이 접대될 뿐이었다. 즉 화해가 진지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죽고 죽이는 것만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핫산 왕자(훗날 후세인왕의 동생)는 이것을 알게 되고 중재자로 나설 것을 결심하게 된다. 화해를 주선하는 모임에서 그는 그녀의 어린 딸을 데리고 화해를 요청하게 된다. 그는 양쪽 장로들에게 자신의 딸을 피를 취할 것을 제안한다. 두 부족의 장로들은 중재자로서의 왕자의 결단에 깊게 감동을 받고 결국 화해를 맺게 된다.그 딸의 피 흘림 없이 그들은 소금이 들어간 빵을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이다.
사막 지역에서 음식은 매우 귀한 것으로 대부분의 베두윈들은 그들은 삶에서 때로 배고픔을 경험한다. 고기는 오직 결혼 향연이나 기념적인 행사 혹은 손님들이 있는 경우에만 먹을 수 있으며 [xxvii], 빵은 아주 귀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소금이 들어간 빵과 만사프를 함께 나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그들이 마음을 열고 화해가 맺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3.3 피의 언약- 피 값(blood money)[xxviii]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암몬 족속의 후손들로서 베두윈들은 생명을 그 어느 것보다도 귀하게 여긴다.[xxix] 누구든지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죽은 자의 가족에게 생명을 빚졌다는 것이 고대 아랍사회의 법률이었다. 피의 복수에 대한 법은 코란에서도 인정되어있고 아라비아의 어느 지역에서도 신성한 권리로 여겨진다. 아랍인에게 있어서는 피 흘림에 대하여 어떤 마땅한 댓가나 복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욕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법은 계속 되는 분쟁이나 피 흘림을 막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아랍의 타운이나 사막에서는 그 어떤 큰 몸 싸움 없이 몇 시간 동안 계속 말다툼만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직접 맞부딪쳐 싸우기를 겁내기 때문이 아니라, 피 흘림과 또 그에 따라 야기되는 피의 복수를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이다.[xxx]
피 흘림의 복수에 대한 법은 누구든지 피를 흘린 사람은 그 죽은 자의 가족에게 피에 대한 대가로 피 값이나 혹은 생명을 빚졌다는 것이다.[xxxi] 그 가족들은 살인자의 생명을 요청하거나[xxxii],혹은 그와 관련된 5대를 포함하는 가족에 대한 생명 값을 주장할 수 있다.[xxxiii] 이 “ 5대의 그룹”은 그의 부계 쪽의 5대를 모두 포함한다. 분노에 가득 찬 처음 5일 동안 생명이 취해지지 않았다면 일반적으로 피 값의 거래가 받아들여진다.[xxxiv] 때때로 공식적인 언약 문서가 오고 가거나 (sulha) [xxxv] 혹은 화해 후의 특별한 예식등이 거해지기도 한다. 게투르드 벨은 그 화해 예식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랍인들이 그들의 피의 분쟁을 끝내려고 할 때 두 원수들은 상해자의
텐트 앞에 함께 선다. 그 텐트의 주인은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들고
남쪽으로 돌아선 후 마당에 원을 그리며 신을 부른다. 그 후 그는 텐트의
자락을 베어내어 화로에서 한 줌의 재로 만든 후 원안으로 던지고
일곱 번 그의 칼로 선을 내려친다. 그 후 가해자가 그 원안에 들어가고
그의 적의 친척 중 한 명이 크게 외친다.‘나는 나에게 죄를 범한 살인자를 취합니다!’”[xxxvi]
그러나 오늘날 베두윈들은 현대 문명에 많이 노출되었고 또한 도시에 거주하는 베두윈들도 많다. 그러므로 중대한 범죄가 아닌 이상은 흔히들 사과의 표시로 선물을 주기도 한다. 남자들은 낙타나 칼 혹은 새 옷들을 여자들은 보석이나 옷 혹은 음식 등을 요리해 준다.
4. 제 삼자의 필요
베두윈들의 화해 과정에는, 어떤 수준의 화해(조정)에서도 일반적으로 제 3자의 개입을 통해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부족간의 분쟁뿐만이 아닌 개인의 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왜 제 3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그 배경을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랜 기간 동안 전통을 통하여 형성 된 것 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중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조건들이 있는데 제 3자는 반드시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자여야만 한다.[xxxvii] 중재자는 또한 높은 도덕적 명성을 가져야 하며 양쪽 부족만이 아닌 그 지역에서도 존경 받는 자여야 한다. 그는 공정한 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자여야 하고 또한 양쪽 부족으로부터 어떤 원망이나 원성이 없는 자여야 한다. 그러므로 중재자는 그저 제 3 부족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다.
베두윈들은 명예를 높이 평가한다. 그들이 직접 조정 과정에 참여한다면, 적들과 직접 대화한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 3자를 가졌을 때 그들은 어떤 명예의 손실이나 또 다른 분쟁 없이 정확히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형태로든 그들이 명예를 손실했다면 그들은 다른 부족들(제 3 자들)앞에서 그 것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 3자라는 증인을 가졌을 때 이것은 더욱 유익하게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제 3자는 중재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명예를 회복한 것에 대한 증인도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제 3자는 또한 두 부족간의 또 다른 분쟁을 막을 수 있으며 그 어떤 손실 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5. 전도적 제안
다른 무슬림들과 같이 베두윈들은 죄를 행위적 개념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행과 종교적 의무를 행함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행이나 악행을 헤아리는 것만이 아닌 하나님과 우리간의 관계라는 면을 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저지른 것뿐 만이 아니라 죄인이 된 것이다. 우리의 속 사람은 이미 더럽혀 졌으며 온전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피의 복수에 대한 전통으로 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되며 제 3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단 피가 흘려졌다면 이것은 반드시 또 다른 피로만 배상 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피 값(돈)으로 지불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죄는 그 어떤 다른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죄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이다.- 영원한 사망 (롬 6:23, 히 9:27)
베두윈들에게는 두 부족간의 관계에서 아무런 죄책이 없는 제 3 부족의 쉐이크만이 평화 협정을 이룰 수 있다. 아무 죄책이 없는 자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전통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제 3 자 쉐이크로서 베두윈들에게 강조할 수 있게 해준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단 하나의 죄도 없이 완전한 삶을 사신 분이다.(고후 5:21).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중재자로 나서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는 죄가 없으신 완전한 인간이시며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재자로서의 예수님을 강조한다면 베두윈들에게 있어 이해하기에 쉬운 접촉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i] Alan Keohane, Bedouin, (London, kyle Cathie limt, 1994), p.9.
[ii] Ibid.p.16
[iii] 공일주, 아랍문화의 이해, (서울: 대한 출판사, 1996), pp.247-250.
[iv] S.M. Zwemer. Arabia: The Cradle of Islam, (USA: The caxton press, 1900), p.159.
[v] Shirley Kay, The Bedouin, (USA: Crane, Russak & company, 1978), p.78.
[vi] Samuel Ives Curtiss, Primitive Semitic Religion Today,(UK:London, 1902), p.65
[vii] Shirley Kay, p.80.
[viii] Alan Keohane, p.10.
[ix] S. M. Zwemer, p.264.
[x] Ibid.
[xi] Shirley Kay, p.19.
[xii] 공일주, p.265.
[xiii] Alan Keohane, p.70.
[xiv] S. M. Zwemer, p.265.
[xv] Austine Kennett, Bedouin Justic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25), p.145.
[xvi] Shirley Kay, p.80.
[xvii] Ibid., p.79.
[xviii] William Lancaster, The Rawala Bedouin Today, (USA: Waveland, 1997), p.45.
[xix] Mohammed Shunnaq, Women and the Social Reality behind the process of inheritance: An Anthropological Study of a Society in Northern Jordan, (Jordan; Department of Anthropology Institute of Archeology and Anthropology, 1995), p.6.
[xx] 사막의 텐트를 방문하다 보면 나이들은 베두윈 여성 혼자 거하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남편은 시내에서 젊은 부인과 살고 있고 그녀의 자녀들 역시 시내에서 또 다른 어머니의 집에 거하면서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xxi] Mohammed Shunnaq, p.108.
[xxii] William Lancaster, p.58.
[xxiii] 요르단의 선교 병원 창설자와 행정 담당자와의 인터뷰(저자가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음) 07.07.2008
[xxiv] Gerturde Bell, Syria:The Desert and the Sown,(UK: London, 1908),p.33.
[xxv] 공일주, 아랍문명의 이해, (서울: 예영, 2006), p.189.
[xxvi] A.C와의 인터뷰(저자가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음)
[xxvii] http://kcm.co.kr/ 11.2008
[xxviii] 피 값으로서의 시나이 반도에서 한 사람의 생명 값은 낙타 41마리에 해당되며 여성의 경우에는 남자에 의해 죽었는가 여자에 의해 죽었는가에 의해 달라진다. 만약 여자가 죽인 것이라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동등한 힘이 있었던 결로 추정되어 일반적인 피 값의 낙타 41마리가 요구된다. 그러나 남자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일반적 피 값의 4배가 요구된다. - Austine Kennett, pp.131-133.
[xxix] 생명을 중시하는 영향으로 흔히 사막에서의 자살의 경우는 도시보다도 훨씬 적은 편이다.- E. H. Palmer, Desert of the Exodus, (UK: Cambridge university, 1871), p.80.
[xxx] S. M. Zwemer, p.265.
[xxxi] Claude Reignier Conder, Heth and Moab, (UK:London, 1883), p.318.
[xxxii] William Charles Maughan, Alps of Arabia, (UK:London, 1875, reprint 2005), p.185.
[xxxiii] Numbers 1
[xxxiv] Shirley Kay, p.79.
[xxxv] Joseph Ginat, Blood Disputes among Bedouin and rural Arabs in Israel, (Pittsburgh; University of Pittsburgh, 1987), p.34.
[xxxvi] Gertude Bell, p.42.
[xxxvii] Joseph Ginat, p.31.
2009년 2월 8일 일요일
2009년 1월 11일 일요일
이집트의 수피즘: 카이로의 사당 문화
원제: Sufism in Egypt: The Shrine Culture of Cairo
Sophia Kim
들어가는 말
흔히 이슬람을 율법적인 종교라고 말한다.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무슬림들에게 남은 것은 거룩한 책 꾸란과, 예언자의 언행록인 하디스이다. 무함마드가 마지막 예언자였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더 이상 예언자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무슬림들은 마지막 예언자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전철에 타면 하디스에 나오는 ‘탈 것에 탈 때 하는 두아에 دعاء الركوب’ 를 암송한다. 모스크 문에는 모스크에 들어갈 때 하는 두아에와 모스크에서 나올 때 하는 두아에(دعاء دخول المسجد & دعاء الخروج من المسجد)가 붙어있다. 라마단 동안 모스크 주변을 걷다보면 작은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쌓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예언자가 음식을 먹은 후 이를 쑤셨다고 하는데서 기원한 것이다. 또한 라마단에 해가 진 후 예언자가 대추야자를 먹는 것으로 금식을 깨었다고 해서 라마단 달 저녁 무슬림들이 금식을 깰 시간이 되면 대추야자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예언자의 말과 행동에서 유래한 풍습들은 많이 있다.
풍습뿐 아니라 건물, 모스크의 문양 등에서도 예언자의 언행에서 유래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무함마드가 가장 칭송할 만한 자비로운 행동으로 꼽은 두 가지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과 무지한 자에게 종교를 알려주는 것이었다는 점에 기인하여 이집트에는 싸빌(سبيل, 길가는 사람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식수를 모아놓은 건물) 쿠탑(كتاب, 꾸란 학교)이 유적으로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언자의 언행을 따라 해도 예언자는 죽은 사람이고, 남아있는 것은 문자들뿐이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창조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깨닫는다거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잘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문자만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는 커다란 빈 공간이 있다. 영적인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느냐고 물으면 인간을 만드시고 귀를 만드신 분이 왜 기도를 듣지 못하시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은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없다면 그들의 기도는 올라가는 한쪽 방향만 열려 있는 기도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기도보다는 어떤 일을 해결받기 위한 기도일 수밖에 없다. 일이 잘 해결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하는 것이다. 함두릴래 الحمد لله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의 이 말은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다.
영적인 공백을 채워주지 못하는 종교는 오래 가기 힘들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이슬람을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죽은 후 천국에 가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무슬림이기만 하면 천국에 가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나쁜 무슬림이라도 정해진 기간 동안 지옥에서 벌을 받고 나면 결국은 천국에 가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슬람을 떠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영적인 갈급함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수피즘이다. 이슬람의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이슬람의 영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수피즘을 이슬람의 영성이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수피즘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자 개념, 사람들이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는 실제적인 공간이 되는 사당(마깜 مقام)이 하는 역할과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수피즘은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수피즘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이집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실제적인 공간과 사람들을 언급하기 위해 이집트의 카이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수피즘(앗타사우프, التصوف)이란?
수피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움마이야드 왕조가 세계 정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을 때, 이러한 정복 활동으로 인해 세속화 되어가는 세상을 경계하며 지옥의 공포를 외치고 다녔던 경건한 신자들에게서 수피즘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수피
صوفى라는 이름도 이들이 입고 다녔던 어두운 색깔의 양모 옷 수프 صوف에서 그 유래를 찾는 학자들이 많다.
이에 반해 이슬람의 영성은 예언자 무함마드시기부터 존재해 왔으며, 드러나지 않은 채 무함마드 사후에도 계속해서 지속되고 풍성해져 가다가 나중에 수피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파즐루 라흐만은 예언자 무함마드는 알라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신비적인 알라의 임재를 이미 느끼고 있었으며, 그러한 그의 영성은 강력한 종교적, 윤리적 사회의 건설을 통해 역사적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마틴 링은 수피즘이 곧 이슬람이며, 이슬람의 참 영성은 선택받은 수피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첫 수피 스승 (쉐이크 شيخ)이었으며 모든 영성을 지닌 자로서 이후의 다양한 영성을 지닌 모든 수피들의 영적 스승이요 기원이 된다.
이와 같이 수피즘의 기원이 예언자 무함마드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수피즘의 정통성은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다. 그 중 가장 크고 분명한 이유는 수피즘이 추구하는 바가 정통 이슬람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수피들이 추구하는 것은 알라로부터 직접적으로 얻게 되는 지식과 알라와의 하나됨이다. 이는 화나 فناء(소멸)와 바까 بقاء (머무름)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 화나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남’, 바까는 자신 안에서 또는 신과 함께 머묾으로써 진실한 ‘나’ 곧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바까의 상태는 수피의 기본적인 가르침인 ‘세상의 본질은 신’이라는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은 그 본질이 신의 현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까의 상태에서 신은 수피에게 존재하고 그를 통해 현현하게 되는 것이다. 수피는 신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보고, 듣고, 말하며 신의 대리자로서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나와 바까의 상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육신(훌룰 حلول)과는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화나의 상태는 성육신이라기보다는 신의 임재 앞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알라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정통 이슬람은 수피즘의 이러한 이론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으며, 이는 꾸란과 하디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단적인 외부의 영향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더 나아가 9세기 후반에 주요 논쟁점으로 등장했던 성자 개념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성자라는 특별한 계층을 대두시킴으로써 알라와 인간 사이에 중재자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 울라마(علماء이슬람법학자들)와 더욱 첨예한 대립을 가져왔다. 수피즘은 무함마드 사후 더 이상 예언자를 기대할 수 없는 이슬람에서, 예언자의 영성을 잇는 특별한 사람들인 성자들이 예언자를 계승하여 신으로부터 오는 영감을 이어나간다고 말한다. 수피즘에서 예언자 무함마드는 신에게 가까이 가기를 추구하는 모든 성자들의 모델이며, 또한 신의 현현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완전한 인간이다.
수피즘이 꾸란에서 기원한 것인지, 즉 원래부터 이슬람에 존재하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이슬람 역사 내내 수피즘은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다. 수피즘은 9세기에 이르러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13세기에 절정을 이루면서 사람들 사이에 깊이 파고들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유명한 이슬람법학자였다가 11세기 후반 수피가 되어 이슬람 법학자들로 하여금 수피즘을 다시 생각하도록 도전한 가잘리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이슬람에서 수피즘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을 이야기 했다. 그것은 신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식의 한계를 수피즘이 채워준다는 것이었다. 가잘리는 이슬람에 빠져있는 영성을 채워주는 수피즘의 역할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성자(왈리, ولى)들은 누구인가?
성자들은 수피들 중에서 수피의 길(타리까, طريقة)의 마지막 단계, 즉 화나와 바까의 단계에 도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소유하게 된 자들이다. 수피즘에는 모든 수피들이 걷게 되는 수피의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걷는 수피들 중 일부만이, 극소수만이 성자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모든 수피들의 최대의 목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얻는 단계인 성자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성자들은 예언자의 영적인 계보를 잇는 존재들로서 일반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은 성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하는 자들인 성자들은 예언자들이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듯이, 신에게 근접한 자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만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자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예언자 무함마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적 계보이다. 혈연적인 가족 계보와는 구분되는 영적인 계보(이스나드, اسناد)는 성자가 예언자에게서 축복 (바라카, بركة)을 유전적으로 계승받았다는 증거이며, 또한 영적 능력이 이어져 내려오는 통로로 인정되었다.
성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으로 인해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고, 또한 하나님에게 근접한 자들로서,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자들로서 그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예언자를 계승하는 자들로서 계시된 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움마(أمة,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실제적인 힘이라고 수피들은 주장한다.
3) 이슬람 사회 속의 성자들: 수피 사당 문화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 성자들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슬람 사회에서 수피즘의 영향과 성자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곳은 수피 사당이다. 수피 사당은 성자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성자가 죽은 후 그 무덤을 중심으로 세운 건물로, 보통 돔으로 덮여 있는 작은 건물이며, 그 건물 안에 관이 놓여 있고, 관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유명한 성자들의 경우에는 관 주위에 아름다운 문양의 울타리가 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관을 보호하고 있다. 관에 가까이 할수록 더 좋다고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성자로부터 축복을 축적하고, 사업이나, 질병 등의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자들의 무덤을 방문한다. 방문자들이 성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일반적인 것은 병으로부터 치유 받는 것이다. 이 경우 무덤 주위의 물품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며, 때로 병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생명을 상징하는 물의 경우, 무덤 근처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서 사용하기도 하고, 무덤 근처에 있는 나뭇잎이나 나무 열매도 특별한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병이 잘 낫기로 유명한 한 사당을 방문한 남성은 그 곳에서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다리가 아픈 사람, 머리가 아픈 사람이 많이 치유 받는 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팠다가 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실제로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도 그토록 확신하는 모습이 순박하고 정겨워 보이면서도, 있지도 않은 사실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필자가 루까이야 수피 사당(السيدة رقية , 1133)을 방문 했을 때 마침 그 곳을 찾았던 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가 며칠 후 수술을 할 예정이라서 이곳을 방문했다는 아저씨는 마당에 떨어져 있는 나무 열매를 주어서 아내에게도 주고 자신도 먹었다. 함께 방문한 친구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아저씨는 이 열매를 먹으면 곧 결혼하게 될 것이라며 친구에게도 열매를 주었다. 그 부부는 이 사당 뿐 아니라 다른 큰 사당들을 모두 돌고 있었다. 바라카는 많이 축적할수록 좋은 것이고, 어느 사당에서 기도한 것이 효험을 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부부들처럼 유명한 여러 사당들을 모두 방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이 사당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에게 근접한 존재인 성자들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사정을 아뢰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성자들이 방문자들의 요청을 언제든 기쁘게 받아 주며, 하나님과 방문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 준다고 믿고 있다. 무슬림들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 힘든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성자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특별한 존재이면서도 또한 동시에 무슬림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무슬림들은 성자를 찾아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하고 위로와 응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4) 이집트의 수피즘
오늘날은 과거보다 수피들의 수가 줄어들었다고들 한다. 영성을 추구하고, 세속화 되는 것을 경계하는 수피즘의 성향이 이슬람 세계 전반에 불고 있는 현대화의 과정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시골이나 변두리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피즘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집트이다. 이집트에는 리화이, 샤딜리야, 티자니야, 아흐마디야, 바다위야, 부르하니야, 루화이야, 나끄쉬반디야, 알 바지야 등 여러 종단들이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이집트의 하산 알-반나가 창설하였고, 아랍 세계 전체로 퍼져나간 무슬림 형제단은 티자니야 종단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수피 인구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고, 문서마다 수치의 차이도 크다. 이집트 인구의 3분의 1정도로 보는 자료에서부터 90퍼센트까지 보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남자만 수피로 가입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집트 인구의 1/3이라는 숫자가 적은 숫자는 아니다.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집트 곳곳에서 여러 수피 종단들과 많은 사당들, 지크르 홍보문, 지크르 ذكر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집트에서 수피즘의 강세를 느낄 수 있다. ⌜이집트의 신비주의자들⌟이라는 책은 수피즘이 원래 이집트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근거 중에 하나로 이집트에 수피의 수가 가장 많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이집트에서 신실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 ‘혹시 수피세요?’ 하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재차 물으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집트에 수피즘이 왕성하기는 하지만 수피즘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수피가 아닌 사람들의 수피즘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수피들도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약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수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좀 난감해 하면서 그들도 분명 무슬림들이라는 사실을 먼저 강조한다. 그런 후에 그들은 정도를 걷는 다기 보다는 좀 옆길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해 준다. 카이로의 모스크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함두릴래, 나는 수피가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왜 그것이 ‘함두릴래’냐고 물으니, 수피들은 나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수피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신도 호세인 모스크에 가고 그 곳의 사당을 방문하지만 수피들과는 다른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사람의 경우에는 자신이 수피임을 적극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별로 숨기려는 기색도 없었다. 그는 수피들이 자신이 수피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수피즘이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수피들의 경우에는 숨기고자 하는 기색이 많이 보였다. 한 아저씨는 수피냐는 질문에 나는 순니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순니인 것은 알고 있는데 혹시 수피시냐고 재차 물으니 말없이 그렇다는 표시를 했다.
필자가 만나 수피들은 대부분 신실하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에게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이슬람이 참 종교임을 강조하다가 결국에는 무슬림이 되기 위한 신앙고백(샤하다, شهادة)을 고백하라고 강요하다시피 말하기도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지 않느냐며, 어서 신앙고백을 하고 무슬림이 되라고 조르다시피 한다. 다른 것은 아예 보지도 듣지도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수피가 아니었다. 이러한 차이가 율법에 매어 있는 것과 영성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좀 지나친 것일까?
5) 카이로의 사당 문화
① 카이로의 사당들
카이로에는 호세인 모스크나, 사이에다 자이납, 아이샤 모스크, 싸이에다 나피사 등 사당을 포함하고 있는 크고 유명한 모스크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구석 구석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규모의 사당들이 여기 저기에 많이 있다.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 생겨난 마을이나, 옛 거리들을 걷다보면 이런 작은 사당들을 자주 보게 된다. 어떤 것들은 버려져서 쓰레기가 쌓여 있어서 이곳은 이제 사당이 아닌가 하고 물으면 그래도 여전히 사당은 사당이라고 사람들이 말해 준다. 크고 화려한 사당들은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사당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 주변이 아름다운 울타리로 둘려 있다. 반면에 작은 사당들은 대부분 수놓은 깨끗한 천으로 덮여 있고,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거나 어떤 특별한 장식들이 되어 있지는 않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 고양이가 들어가서 앉아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 옛 거리에서 발견한 사당에는 여자들이 서 너 명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있을 곳이 없어서 그곳에 살림을 차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데 오가며 자주 들른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 있는 한 사당은 지역 성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왜 성자인지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수리 중이라서 들어가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곳에 그 성자와 일곱 아들이 함께 묻혀 있다는 것, 이집트의 다른 성자들처럼 그 성자도 이집트인들을 품은 사람이라는 설명을 바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그렇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성자라고 말했다.
작은 사당들이 모여 있는 곳은 복잡한 시내 거리 보다는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 생긴 마을이나, 옛 거리들이다. 언젠가 방문한 적이 있는 한 무덤 마을은 사람들에게서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곳이었다. 길 가면서 우연히 스쳐 지나가던 아이를 안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마치 돈을 맡겨 놓은 듯이 ‘우리 가난하고 불쌍하니까 돈을 달라’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돈을 바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길가에 있는 무너져 가는 싸빌-쿠탑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그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다. 왜 안 되느냐고 묻자 이유도 말하지 않으면서 절대 안 된다고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좀 더 자세히 물어보니 그 마을에 있는 모스크에 있는 사람(아마 이맘이 아닐까 싶다)이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보다 조금 전에 모스크에서 만났던 불친절하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그 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며 외국인이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말해 주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별로 위협까지는 느끼지 못했지만, 외부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느껴지고, 이집트 사람들은 친절하다는 통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었다.
② 사당을 찾는 사람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라마단이나 성자의 축일 때에는 더욱 많아지지만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사당을 자주 찾는다. 지역 성자로 알려진 루까이야 사당의 경우 하루 평균 50명 정도 방문을 하고 금요일에 하는 지크르 때에는 200명 정도 모인다고 한다. 그 곳에서 조금 더 가면 있는 싸이에다 나피사 모스크는 사당을 포함하고 있는 매우 크고 아름다운 모스크인데 그 곳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 무덤 마을 외곽에 있는 작은 사당은 평소에는 잠가 두었다가 방문객이 와서 요청을 하면 열어주곤 하는데, 그 작은 모스크에도 하루 평균 8명 정도의 방문객이 있다고 했다. 필자가 참석했던 한 지크르에는 남자들만 250-300명 가량의 수피들이 참석했었다. 그 사당의 경우 지크르가 일주일에 2번 있었는데 그렇게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지크르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셈이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다 수피는 아니다. 성자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은 메카 순례를 의미하는 하즈 حج와는 구분하여 지야라 زيارة(방문이라는 뜻)라고 하는데, 전통에 의하면 지야라는 원래 이슬람 신학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죽음과 내세를 상기한다는 의미로 행해진다. 수피가 아니라고 밝힌 한 사람 역시 호세인 모스크에 가고 사당을 방문하지만 그곳에 대고 기도하지는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그 곳에 대고 기도하는 것은 이슬람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알라에게 개인적으로 아뢰고 싶은 것들은 하루 5번 행하는 기도시간에 두아에를 통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무슬림들에게 지야라는 단순한 상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의 고달픈 문제들을 가지고 사당을 찾으며, 그 곳에서 응답과 위로를 구한다. 반드시 수피 종단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도 성자의 무덤을 찾는 것이다.
호세인 모스크나, 싸이에다 나피사, 사이에다 자이납, 아이샤 모스크 같이 크고 유명한 사당의 경우 지역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에서도 찾아온다. 어렵게 여행 경비를 모아 1년에 한 번 정도 방문하면서 주변의 큰 모스크들을 모두 돌아보고 가기도 하고, 몸이 안 좋거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루 날을 잡아 좋아하는 사당을 방문하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멀리서 오는 경우도 있고, 다른 여자 친척들과 함께 오기도 한다. 멀리서 온 한 여성을 만나 굳이 이렇게 멀리까지 올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동네에도 사당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크고 훌륭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머리가 아파서 왔다는 그 여성의 말을 참고로 할 때 크고 좋은 사당이 더 효험이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당이 딸린 한 모스크에서 만난 여성은 사당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가슴 아프고 문제가 있어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아프거나, 수술을 앞두고 있거나,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나 등의 실제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직업이 없어서 오랫동안 고통 받고 있는 사람, 도저히 나눌 수 없는 사연이어서 눈물로 대신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유명한 사당에서 관 주변의 울타리를 붙들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오랫동안 어찌나 서럽게 흐느끼는지 보고 있는 사람도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여성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며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 내가 그 중 한 사람에게 왜 우는지 아느냐고 묻자, ‘하나님은 아신다 (الله هو عارف 알라, 후와 아에리프)’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들도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나의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기에 남의 슬픔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삶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
③ 사당 문화
사람들은 사당에 가서 무엇을 할까? 사당을 찾는 가장 큰 목적은 성자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것이다. 사당을 찾은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관 주위를 돌면서 입을 맞추고 꾸란 구절을 외우고, 죽은 성자의 사방에 대고 기도하기 위해 관 주변을 돌면서 소원을 아뢴다. 관의 머리 있는 부분에 특별한 장식을 해 놓아서 머리 부분이 어디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관의 사방에 대고 기도를 한다. 인격체라면 어느 방향에서 기도를 하든지 다 들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데, 그들은 성자의 사방에 대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매우 간절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간절한 마음이 역력히 보이는 표정으로 관을 향해 고개를 든다.
관 앞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를 넣기도 하고 돈을 넣기도 하는 함이 따로 있지만, 사람들은 가능하면 관이 있는 곳 주변에 종이나 물건을 놓기를 원한다. 유리로 막혀 있고 울타리가 둘려 있는 관 주변에 성자에게 주는 선물들, 소원을 적은 종이들, 돈, 스카프 등의 물건들이 들어가 있다. 몸이 아파서 직접 오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그 사람에게 속한 물건을 관 옆에 놓아둠으로써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도 하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결혼을 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경우에는 자기 옷을 넣어 놓기도 한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보이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사당은 문제 해결을 위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위로를 얻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쉬는 날 사당을 방문한다. 2년째 남편이 직업을 찾지 못해 하루 하루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다는 한 여성은 쉬는 날마다 사당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 여성에게 사당은 힘든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 곳으로 보였다. 어려운 살림에 조금씩 돈을 모아 멀리서 큰 사당을 찾아오는 여성들에게도 사당은 단순한 문제 해결 장소가 아니라, 삶의 고통을 하소연 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위로를 얻는 곳일 것이다. 사람들은 사당에 앉아서 도란 도란 이야기도 하고, 한 구석에 앉아 꾸란을 읽기도 한다. 그냥 조용히 앉아 쉬기도 하고, 학교 간 딸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수술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는 곳이고, 시험을 앞두고 기도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의 눈에 사당은 힘든 삶에서 잠시 벗어나 사랑하는 성자 옆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비쳤다.
사람들은 성자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크고 화려한 사당으로 향하는 골목길 내내 꽃을 파는 사람들, 향수를 파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꽃들은 사당에 있는 성자에게 주는 꽃이라고 했다. 사당 안에 들어가 보니 정말로 관 주변의 울타리에 아까 밖에서 보았던 꽃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꽂혀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꽃은 왜 꽂아 놓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누군가를 사랑하면 선물을 주기 마련이라며 성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슬람에서 하나님은 초월자이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사람들 사이에 거하는 성자들을 향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내재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기에 기꺼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라에게 대신 아뢰어 주는 성자들이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가는 말
이슬람의 성자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와 매우 흡사하다. 사당 옆에 살고 있던 한 가난한 여성은 성자들이 자신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자들은 초월하시는 하나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고, 기꺼이 인간들의 소원을 대신 말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들도 이 땅에 살다가 죽었기에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고 기꺼이 들어준다. 그런 성자들에게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위로를 구한다.
성자들은 우리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여성에게 왜 그러냐고, 죄 때문에 그런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자신들은 하루에 5번 기도하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펄쩍 뛰었다. 그런데 왜 성자가 필요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답변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곳에 살면서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사람, 죽어서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교제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사당의 관 주변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를 잡고 하염없이 울던 여인이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았다.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을까? 이혼당한 여인은 아니었을까? 성경은 한 여성과만 결혼할 것을 말하고 있고 이혼을 금하기 때문에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성경이 말하는 결혼관을 동경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많은 무슬림 여성들에게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일 뿐이다.
Sophia Kim
들어가는 말
흔히 이슬람을 율법적인 종교라고 말한다.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무슬림들에게 남은 것은 거룩한 책 꾸란과, 예언자의 언행록인 하디스이다. 무함마드가 마지막 예언자였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더 이상 예언자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무슬림들은 마지막 예언자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전철에 타면 하디스에 나오는 ‘탈 것에 탈 때 하는 두아에 دعاء الركوب’ 를 암송한다. 모스크 문에는 모스크에 들어갈 때 하는 두아에와 모스크에서 나올 때 하는 두아에(دعاء دخول المسجد & دعاء الخروج من المسجد)가 붙어있다. 라마단 동안 모스크 주변을 걷다보면 작은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쌓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예언자가 음식을 먹은 후 이를 쑤셨다고 하는데서 기원한 것이다. 또한 라마단에 해가 진 후 예언자가 대추야자를 먹는 것으로 금식을 깨었다고 해서 라마단 달 저녁 무슬림들이 금식을 깰 시간이 되면 대추야자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예언자의 말과 행동에서 유래한 풍습들은 많이 있다.
풍습뿐 아니라 건물, 모스크의 문양 등에서도 예언자의 언행에서 유래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무함마드가 가장 칭송할 만한 자비로운 행동으로 꼽은 두 가지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과 무지한 자에게 종교를 알려주는 것이었다는 점에 기인하여 이집트에는 싸빌(سبيل, 길가는 사람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식수를 모아놓은 건물) 쿠탑(كتاب, 꾸란 학교)이 유적으로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언자의 언행을 따라 해도 예언자는 죽은 사람이고, 남아있는 것은 문자들뿐이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창조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깨닫는다거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잘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문자만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는 커다란 빈 공간이 있다. 영적인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느냐고 물으면 인간을 만드시고 귀를 만드신 분이 왜 기도를 듣지 못하시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은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없다면 그들의 기도는 올라가는 한쪽 방향만 열려 있는 기도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기도보다는 어떤 일을 해결받기 위한 기도일 수밖에 없다. 일이 잘 해결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하는 것이다. 함두릴래 الحمد لله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의 이 말은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다.
영적인 공백을 채워주지 못하는 종교는 오래 가기 힘들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이슬람을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죽은 후 천국에 가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무슬림이기만 하면 천국에 가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나쁜 무슬림이라도 정해진 기간 동안 지옥에서 벌을 받고 나면 결국은 천국에 가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슬람을 떠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영적인 갈급함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수피즘이다. 이슬람의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이슬람의 영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수피즘을 이슬람의 영성이라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수피즘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자 개념, 사람들이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는 실제적인 공간이 되는 사당(마깜 مقام)이 하는 역할과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수피즘은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수피즘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이집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실제적인 공간과 사람들을 언급하기 위해 이집트의 카이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수피즘(앗타사우프, التصوف)이란?
수피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움마이야드 왕조가 세계 정복에 힘을 기울이고 있을 때, 이러한 정복 활동으로 인해 세속화 되어가는 세상을 경계하며 지옥의 공포를 외치고 다녔던 경건한 신자들에게서 수피즘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수피
صوفى라는 이름도 이들이 입고 다녔던 어두운 색깔의 양모 옷 수프 صوف에서 그 유래를 찾는 학자들이 많다.
이에 반해 이슬람의 영성은 예언자 무함마드시기부터 존재해 왔으며, 드러나지 않은 채 무함마드 사후에도 계속해서 지속되고 풍성해져 가다가 나중에 수피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파즐루 라흐만은 예언자 무함마드는 알라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신비적인 알라의 임재를 이미 느끼고 있었으며, 그러한 그의 영성은 강력한 종교적, 윤리적 사회의 건설을 통해 역사적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마틴 링은 수피즘이 곧 이슬람이며, 이슬람의 참 영성은 선택받은 수피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첫 수피 스승 (쉐이크 شيخ)이었으며 모든 영성을 지닌 자로서 이후의 다양한 영성을 지닌 모든 수피들의 영적 스승이요 기원이 된다.
이와 같이 수피즘의 기원이 예언자 무함마드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수피즘의 정통성은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다. 그 중 가장 크고 분명한 이유는 수피즘이 추구하는 바가 정통 이슬람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수피들이 추구하는 것은 알라로부터 직접적으로 얻게 되는 지식과 알라와의 하나됨이다. 이는 화나 فناء(소멸)와 바까 بقاء (머무름)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 화나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남’, 바까는 자신 안에서 또는 신과 함께 머묾으로써 진실한 ‘나’ 곧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바까의 상태는 수피의 기본적인 가르침인 ‘세상의 본질은 신’이라는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은 그 본질이 신의 현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까의 상태에서 신은 수피에게 존재하고 그를 통해 현현하게 되는 것이다. 수피는 신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보고, 듣고, 말하며 신의 대리자로서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화나와 바까의 상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육신(훌룰 حلول)과는 현저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화나의 상태는 성육신이라기보다는 신의 임재 앞에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알라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정통 이슬람은 수피즘의 이러한 이론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으며, 이는 꾸란과 하디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단적인 외부의 영향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더 나아가 9세기 후반에 주요 논쟁점으로 등장했던 성자 개념은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성자라는 특별한 계층을 대두시킴으로써 알라와 인간 사이에 중재자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 울라마(علماء이슬람법학자들)와 더욱 첨예한 대립을 가져왔다. 수피즘은 무함마드 사후 더 이상 예언자를 기대할 수 없는 이슬람에서, 예언자의 영성을 잇는 특별한 사람들인 성자들이 예언자를 계승하여 신으로부터 오는 영감을 이어나간다고 말한다. 수피즘에서 예언자 무함마드는 신에게 가까이 가기를 추구하는 모든 성자들의 모델이며, 또한 신의 현현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완전한 인간이다.
수피즘이 꾸란에서 기원한 것인지, 즉 원래부터 이슬람에 존재하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이슬람 역사 내내 수피즘은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다. 수피즘은 9세기에 이르러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13세기에 절정을 이루면서 사람들 사이에 깊이 파고들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유명한 이슬람법학자였다가 11세기 후반 수피가 되어 이슬람 법학자들로 하여금 수피즘을 다시 생각하도록 도전한 가잘리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이슬람에서 수피즘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을 이야기 했다. 그것은 신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식의 한계를 수피즘이 채워준다는 것이었다. 가잘리는 이슬람에 빠져있는 영성을 채워주는 수피즘의 역할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성자(왈리, ولى)들은 누구인가?
성자들은 수피들 중에서 수피의 길(타리까, طريقة)의 마지막 단계, 즉 화나와 바까의 단계에 도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소유하게 된 자들이다. 수피즘에는 모든 수피들이 걷게 되는 수피의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걷는 수피들 중 일부만이, 극소수만이 성자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모든 수피들의 최대의 목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얻는 단계인 성자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성자들은 예언자의 영적인 계보를 잇는 존재들로서 일반 사람들과는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은 성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하는 자들인 성자들은 예언자들이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듯이, 신에게 근접한 자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만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자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예언자 무함마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적 계보이다. 혈연적인 가족 계보와는 구분되는 영적인 계보(이스나드, اسناد)는 성자가 예언자에게서 축복 (바라카, بركة)을 유전적으로 계승받았다는 증거이며, 또한 영적 능력이 이어져 내려오는 통로로 인정되었다.
성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으로 인해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이고, 또한 하나님에게 근접한 자들로서,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자들로서 그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예언자를 계승하는 자들로서 계시된 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움마(أمة,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실제적인 힘이라고 수피들은 주장한다.
3) 이슬람 사회 속의 성자들: 수피 사당 문화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 성자들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슬람 사회에서 수피즘의 영향과 성자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곳은 수피 사당이다. 수피 사당은 성자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성자가 죽은 후 그 무덤을 중심으로 세운 건물로, 보통 돔으로 덮여 있는 작은 건물이며, 그 건물 안에 관이 놓여 있고, 관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유명한 성자들의 경우에는 관 주위에 아름다운 문양의 울타리가 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관을 보호하고 있다. 관에 가까이 할수록 더 좋다고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성자로부터 축복을 축적하고, 사업이나, 질병 등의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자들의 무덤을 방문한다. 방문자들이 성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일반적인 것은 병으로부터 치유 받는 것이다. 이 경우 무덤 주위의 물품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며, 때로 병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생명을 상징하는 물의 경우, 무덤 근처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서 사용하기도 하고, 무덤 근처에 있는 나뭇잎이나 나무 열매도 특별한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병이 잘 낫기로 유명한 한 사당을 방문한 남성은 그 곳에서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다리가 아픈 사람, 머리가 아픈 사람이 많이 치유 받는 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팠다가 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실제로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도 그토록 확신하는 모습이 순박하고 정겨워 보이면서도, 있지도 않은 사실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필자가 루까이야 수피 사당(السيدة رقية , 1133)을 방문 했을 때 마침 그 곳을 찾았던 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가 며칠 후 수술을 할 예정이라서 이곳을 방문했다는 아저씨는 마당에 떨어져 있는 나무 열매를 주어서 아내에게도 주고 자신도 먹었다. 함께 방문한 친구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아저씨는 이 열매를 먹으면 곧 결혼하게 될 것이라며 친구에게도 열매를 주었다. 그 부부는 이 사당 뿐 아니라 다른 큰 사당들을 모두 돌고 있었다. 바라카는 많이 축적할수록 좋은 것이고, 어느 사당에서 기도한 것이 효험을 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부부들처럼 유명한 여러 사당들을 모두 방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이 사당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에게 근접한 존재인 성자들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사정을 아뢰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성자들이 방문자들의 요청을 언제든 기쁘게 받아 주며, 하나님과 방문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 준다고 믿고 있다. 무슬림들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 힘든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성자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특별한 존재이면서도 또한 동시에 무슬림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무슬림들은 성자를 찾아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하고 위로와 응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4) 이집트의 수피즘
오늘날은 과거보다 수피들의 수가 줄어들었다고들 한다. 영성을 추구하고, 세속화 되는 것을 경계하는 수피즘의 성향이 이슬람 세계 전반에 불고 있는 현대화의 과정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시골이나 변두리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피즘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집트이다. 이집트에는 리화이, 샤딜리야, 티자니야, 아흐마디야, 바다위야, 부르하니야, 루화이야, 나끄쉬반디야, 알 바지야 등 여러 종단들이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이집트의 하산 알-반나가 창설하였고, 아랍 세계 전체로 퍼져나간 무슬림 형제단은 티자니야 종단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수피 인구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고, 문서마다 수치의 차이도 크다. 이집트 인구의 3분의 1정도로 보는 자료에서부터 90퍼센트까지 보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남자만 수피로 가입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집트 인구의 1/3이라는 숫자가 적은 숫자는 아니다.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집트 곳곳에서 여러 수피 종단들과 많은 사당들, 지크르 홍보문, 지크르 ذكر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집트에서 수피즘의 강세를 느낄 수 있다. ⌜이집트의 신비주의자들⌟이라는 책은 수피즘이 원래 이집트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근거 중에 하나로 이집트에 수피의 수가 가장 많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이집트에서 신실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 ‘혹시 수피세요?’ 하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재차 물으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집트에 수피즘이 왕성하기는 하지만 수피즘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수피가 아닌 사람들의 수피즘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수피들도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약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수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좀 난감해 하면서 그들도 분명 무슬림들이라는 사실을 먼저 강조한다. 그런 후에 그들은 정도를 걷는 다기 보다는 좀 옆길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해 준다. 카이로의 모스크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함두릴래, 나는 수피가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왜 그것이 ‘함두릴래’냐고 물으니, 수피들은 나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수피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신도 호세인 모스크에 가고 그 곳의 사당을 방문하지만 수피들과는 다른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사람의 경우에는 자신이 수피임을 적극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별로 숨기려는 기색도 없었다. 그는 수피들이 자신이 수피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수피즘이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수피들의 경우에는 숨기고자 하는 기색이 많이 보였다. 한 아저씨는 수피냐는 질문에 나는 순니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순니인 것은 알고 있는데 혹시 수피시냐고 재차 물으니 말없이 그렇다는 표시를 했다.
필자가 만나 수피들은 대부분 신실하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필자가 알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에게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이슬람이 참 종교임을 강조하다가 결국에는 무슬림이 되기 위한 신앙고백(샤하다, شهادة)을 고백하라고 강요하다시피 말하기도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지 않느냐며, 어서 신앙고백을 하고 무슬림이 되라고 조르다시피 한다. 다른 것은 아예 보지도 듣지도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수피가 아니었다. 이러한 차이가 율법에 매어 있는 것과 영성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좀 지나친 것일까?
5) 카이로의 사당 문화
① 카이로의 사당들
카이로에는 호세인 모스크나, 사이에다 자이납, 아이샤 모스크, 싸이에다 나피사 등 사당을 포함하고 있는 크고 유명한 모스크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구석 구석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규모의 사당들이 여기 저기에 많이 있다.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 생겨난 마을이나, 옛 거리들을 걷다보면 이런 작은 사당들을 자주 보게 된다. 어떤 것들은 버려져서 쓰레기가 쌓여 있어서 이곳은 이제 사당이 아닌가 하고 물으면 그래도 여전히 사당은 사당이라고 사람들이 말해 준다. 크고 화려한 사당들은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사당도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 주변이 아름다운 울타리로 둘려 있다. 반면에 작은 사당들은 대부분 수놓은 깨끗한 천으로 덮여 있고,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거나 어떤 특별한 장식들이 되어 있지는 않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 고양이가 들어가서 앉아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 옛 거리에서 발견한 사당에는 여자들이 서 너 명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있을 곳이 없어서 그곳에 살림을 차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데 오가며 자주 들른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 있는 한 사당은 지역 성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왜 성자인지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수리 중이라서 들어가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곳에 그 성자와 일곱 아들이 함께 묻혀 있다는 것, 이집트의 다른 성자들처럼 그 성자도 이집트인들을 품은 사람이라는 설명을 바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그렇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성자라고 말했다.
작은 사당들이 모여 있는 곳은 복잡한 시내 거리 보다는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 생긴 마을이나, 옛 거리들이다. 언젠가 방문한 적이 있는 한 무덤 마을은 사람들에게서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곳이었다. 길 가면서 우연히 스쳐 지나가던 아이를 안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마치 돈을 맡겨 놓은 듯이 ‘우리 가난하고 불쌍하니까 돈을 달라’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돈을 바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길가에 있는 무너져 가는 싸빌-쿠탑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그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다. 왜 안 되느냐고 묻자 이유도 말하지 않으면서 절대 안 된다고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좀 더 자세히 물어보니 그 마을에 있는 모스크에 있는 사람(아마 이맘이 아닐까 싶다)이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보다 조금 전에 모스크에서 만났던 불친절하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그 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며 외국인이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말해 주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별로 위협까지는 느끼지 못했지만, 외부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느껴지고, 이집트 사람들은 친절하다는 통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었다.
② 사당을 찾는 사람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라마단이나 성자의 축일 때에는 더욱 많아지지만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사당을 자주 찾는다. 지역 성자로 알려진 루까이야 사당의 경우 하루 평균 50명 정도 방문을 하고 금요일에 하는 지크르 때에는 200명 정도 모인다고 한다. 그 곳에서 조금 더 가면 있는 싸이에다 나피사 모스크는 사당을 포함하고 있는 매우 크고 아름다운 모스크인데 그 곳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 무덤 마을 외곽에 있는 작은 사당은 평소에는 잠가 두었다가 방문객이 와서 요청을 하면 열어주곤 하는데, 그 작은 모스크에도 하루 평균 8명 정도의 방문객이 있다고 했다. 필자가 참석했던 한 지크르에는 남자들만 250-300명 가량의 수피들이 참석했었다. 그 사당의 경우 지크르가 일주일에 2번 있었는데 그렇게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지크르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셈이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다 수피는 아니다. 성자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은 메카 순례를 의미하는 하즈 حج와는 구분하여 지야라 زيارة(방문이라는 뜻)라고 하는데, 전통에 의하면 지야라는 원래 이슬람 신학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죽음과 내세를 상기한다는 의미로 행해진다. 수피가 아니라고 밝힌 한 사람 역시 호세인 모스크에 가고 사당을 방문하지만 그곳에 대고 기도하지는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그 곳에 대고 기도하는 것은 이슬람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알라에게 개인적으로 아뢰고 싶은 것들은 하루 5번 행하는 기도시간에 두아에를 통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무슬림들에게 지야라는 단순한 상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의 고달픈 문제들을 가지고 사당을 찾으며, 그 곳에서 응답과 위로를 구한다. 반드시 수피 종단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도 성자의 무덤을 찾는 것이다.
호세인 모스크나, 싸이에다 나피사, 사이에다 자이납, 아이샤 모스크 같이 크고 유명한 사당의 경우 지역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에서도 찾아온다. 어렵게 여행 경비를 모아 1년에 한 번 정도 방문하면서 주변의 큰 모스크들을 모두 돌아보고 가기도 하고, 몸이 안 좋거나,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루 날을 잡아 좋아하는 사당을 방문하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멀리서 오는 경우도 있고, 다른 여자 친척들과 함께 오기도 한다. 멀리서 온 한 여성을 만나 굳이 이렇게 멀리까지 올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동네에도 사당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크고 훌륭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머리가 아파서 왔다는 그 여성의 말을 참고로 할 때 크고 좋은 사당이 더 효험이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당이 딸린 한 모스크에서 만난 여성은 사당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가슴 아프고 문제가 있어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아프거나, 수술을 앞두고 있거나,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나 등의 실제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직업이 없어서 오랫동안 고통 받고 있는 사람, 도저히 나눌 수 없는 사연이어서 눈물로 대신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유명한 사당에서 관 주변의 울타리를 붙들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오랫동안 어찌나 서럽게 흐느끼는지 보고 있는 사람도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여성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며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 내가 그 중 한 사람에게 왜 우는지 아느냐고 묻자, ‘하나님은 아신다 (الله هو عارف 알라, 후와 아에리프)’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들도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나의 슬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기에 남의 슬픔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삶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
③ 사당 문화
사람들은 사당에 가서 무엇을 할까? 사당을 찾는 가장 큰 목적은 성자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것이다. 사당을 찾은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관 주위를 돌면서 입을 맞추고 꾸란 구절을 외우고, 죽은 성자의 사방에 대고 기도하기 위해 관 주변을 돌면서 소원을 아뢴다. 관의 머리 있는 부분에 특별한 장식을 해 놓아서 머리 부분이 어디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관의 사방에 대고 기도를 한다. 인격체라면 어느 방향에서 기도를 하든지 다 들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데, 그들은 성자의 사방에 대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매우 간절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간절한 마음이 역력히 보이는 표정으로 관을 향해 고개를 든다.
관 앞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를 넣기도 하고 돈을 넣기도 하는 함이 따로 있지만, 사람들은 가능하면 관이 있는 곳 주변에 종이나 물건을 놓기를 원한다. 유리로 막혀 있고 울타리가 둘려 있는 관 주변에 성자에게 주는 선물들, 소원을 적은 종이들, 돈, 스카프 등의 물건들이 들어가 있다. 몸이 아파서 직접 오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그 사람에게 속한 물건을 관 옆에 놓아둠으로써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도 하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결혼을 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경우에는 자기 옷을 넣어 놓기도 한다. 사당을 찾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보이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사당은 문제 해결을 위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위로를 얻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쉬는 날 사당을 방문한다. 2년째 남편이 직업을 찾지 못해 하루 하루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다는 한 여성은 쉬는 날마다 사당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 여성에게 사당은 힘든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 곳으로 보였다. 어려운 살림에 조금씩 돈을 모아 멀리서 큰 사당을 찾아오는 여성들에게도 사당은 단순한 문제 해결 장소가 아니라, 삶의 고통을 하소연 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위로를 얻는 곳일 것이다. 사람들은 사당에 앉아서 도란 도란 이야기도 하고, 한 구석에 앉아 꾸란을 읽기도 한다. 그냥 조용히 앉아 쉬기도 하고, 학교 간 딸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수술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는 곳이고, 시험을 앞두고 기도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의 눈에 사당은 힘든 삶에서 잠시 벗어나 사랑하는 성자 옆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비쳤다.
사람들은 성자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크고 화려한 사당으로 향하는 골목길 내내 꽃을 파는 사람들, 향수를 파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꽃들은 사당에 있는 성자에게 주는 꽃이라고 했다. 사당 안에 들어가 보니 정말로 관 주변의 울타리에 아까 밖에서 보았던 꽃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꽂혀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꽃은 왜 꽂아 놓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누군가를 사랑하면 선물을 주기 마련이라며 성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슬람에서 하나님은 초월자이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사람들 사이에 거하는 성자들을 향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내재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기에 기꺼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라에게 대신 아뢰어 주는 성자들이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가는 말
이슬람의 성자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와 매우 흡사하다. 사당 옆에 살고 있던 한 가난한 여성은 성자들이 자신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자들은 초월하시는 하나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고, 기꺼이 인간들의 소원을 대신 말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들도 이 땅에 살다가 죽었기에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고 기꺼이 들어준다. 그런 성자들에게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위로를 구한다.
성자들은 우리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여성에게 왜 그러냐고, 죄 때문에 그런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자신들은 하루에 5번 기도하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펄쩍 뛰었다. 그런데 왜 성자가 필요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답변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곳에 살면서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사람, 죽어서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교제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사당의 관 주변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를 잡고 하염없이 울던 여인이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았다.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을까? 이혼당한 여인은 아니었을까? 성경은 한 여성과만 결혼할 것을 말하고 있고 이혼을 금하기 때문에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성경이 말하는 결혼관을 동경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많은 무슬림 여성들에게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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