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제: Raymond Lull: Medieval Theologian, Philosopher, and Missionary to Muslims
글쓴이: J. Scott Bridger1
1. 서론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윌리엄 캐리(1761-1834) 가 18, 19세기에 인도에 가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때는 보통 선교의 시작으로 본다. 그 외에는 기독교 역사 첫 3 세기 이후에는 복음 전파에 그다지 큰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5세기의 성 패드릭 St. Patrick 이나, 13, 14세기의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St. Francis of Assisi, 그리고 레이먼드 룰(미주 2), 그리고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선교사가 된 후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에게 나아갔던 19세기의 죠셉 월프 Joseph Wolff 같은 사람들의 노력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무슬림들에게 이루어진 선교의 역사만을 생각한다면 복음 전파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과 대면한 것은 대부분 습격하고 다니는 지하드주의자들(성스러운 전쟁을 외치며 종교의 이름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역자 주)을 피해 다니거나, 아니면 십자군으로 이들과 맞서거나, 그도 아니면 딤미(미주 3) 정책이나 개종으로 인해 가족과 삶에 엄청난 압력을 받는 경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그리스도는 항상 순교자들(즉, 증인들)을 보냈고, 따라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희생제물로 삼으려고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생명과 신체적인 위험을 감수한 개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많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끔찍한 결과를 눈 앞에 두고서도 대단한 용기와 희생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글은 레이먼드 룰의 삶과 사상에 관해 나눔으로써 복음 전파가 소홀했었다고 여겨지는 기간에 대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지금의 이시기가 전투적인 이슬람이 만연하고 무슬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선교적인 노력이 지극히 도전 받고 있으며, 때로 선교사들의 극단적인 희생까지도 요구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룰의 삶과 본보기는 그가 살았던 시기를 생각해 볼 때 실로 놀랍다고 말할 수 있다. 그에 대해 즈웨머 Zwemer 는 이렇게 적고 있다: ‘12세기와 13세기에 찾아볼 수 있는 선교 정신은 십자군의 정신이 전부였다. 그들은 칼을 들었고, 칼로 망했다. 그러나 레이먼드 룰은 진정으로 놀랄만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십자군이 진정한 그 분의 무기인 용서와 평화를 가지고 십자가를 위해 싸웠다면 십자군은 세상에 어떤 존재가 되었으며,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까?’(미주 4) 룰 자신은 이렇게 적고 있다: ‘많은 기사들이 바다를 건너 거룩한 땅으로 가는 것을 본다. 그들은 무기로 무장하여 그것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얻어내기 전에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다. 하지만 내게는 거룩한 땅의 정복은 사도들이 이루어낸 것처럼 사랑과 기도, 그리고 눈물과 피를 쏟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정복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미주 5)
룰의 삶과 사상을 나누려면 두 부분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첫 부분은 룰의 배경과, 교육, 개종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 부분은 신학자와 철학자로서의 룰의 사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특히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그가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해 설명한 것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려고 한다. 룰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 여기에 제시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은 때로 적대적이기까지 한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나누기 위해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한 그의 열정이다. 그것이 그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것이었고, 그의 사상과 철학도 오직 그 빛을 통해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피어스 Peers는 룰의 저술들 가운데 하나에서 다양한 주제에 관해 논평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묵상서의 이차적인 주제들 가운데 특별히 부각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의 개종에 대한 것이다. 이 책 한 권에서만도 룰이 그렇게 자주 이 주제로 되돌아가곤 한다는 것은 그 주제가 그의 삶을 지배하는 열정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미주 6) 그의 그러한 열정이 이 글의 요점이 될 것이다.
2 룰의 생애
레이먼드 룰은 스페인 동쪽 해안에서 좀 떨어져 있는 한 섬인 마조르카 Majorca 의 팔마 Palma 에서 1232/35년에 태어났다.(미주 7) 그는 레이먼드 룰과 엘리자베스 데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1232년에 아라곤의 왕 제임스 1세가 마조르카를 무슬림들의 손에서 재탈환한 후에 그 곳에 정착했다.(미주 8) 레이먼드의 아버지는 제임스 왕이 무슬림들에 대항하여 캠페인을 벌이던 시기에 십자군으로 제임스의 군대에 있었다. 전쟁 후 제임스는 그를 따르던 자들에게 넓은 지역의 땅을 상으로 하사했다.
룰의 아버지도 그렇게 땅을 하사 받은 사람으로 아들 역시 왕실에서 좋은 직책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했다.(미주 9) 룰은 제임스 왕의 자녀들, 특히 제임스 2세의 교사가 되었다가 후에는 행정관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왕의 마음에 들기 위한 삶의 방식은 그에게 덫이 되었다. 그 자신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이 타락한 시기에 극도로 부도덕한 삶을 살았다. 술, 여자, 노래가 왕과 왕자들이 가장 즐기는 것들이었다.(미주 10)
룰은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와 궁전시도 잘 지었다. 하지만 그 주제는 주로 ‘불법적인 사랑의 기쁨’이었다.(미주 11) 그러한 생활은 그에게 두 자녀 도메네크와 막달레나를 낳아 준 블랑카 피카니와 결혼한 후에도 계속되었다.(미주 12) 방탕과 부도덕으로 얼룩진 그의 생활은 그가 32세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가 어떻게 개종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피어스는 그 중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두 개 다 그의 전기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고, 어디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충분한 것들이라고 말한다.(미주 13) 여기에 소개되는 것은 가장 믿을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비슷한 사건이 룰의 저서인 휄릭스 Felix 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미주 14) 또한 여기 소개되는 이야기는 그의 개종에 대한 다른 설명들과도 잘 맞는 요소들이 많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룰은 결혼한 여인인 시그노라 암브로시아 집의 창문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는 당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헛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상아빛 목과 가슴에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즉석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부인은 그를 불러서 그가 그렇게도 아름답게 여기는 그녀의 가슴을 보여주었는데 그 가슴은 끔찍한 암(cancer)에게 먹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그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생각을 바꾸도록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레이먼드, 나는 따르라.’ 그는 그의 궁정 직위를 버리고, 그의 모든 자산을 판 후 로다 혹은 라다라고 하는 산에 있는 작은 암자로 들어갔다. 이것은 1266년의 일이었다.(미주 15)
개종 후 룰은 몇 달간을 묵상과 기도로 보내면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슬림 선교를 위해 부르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미주 16) 그러나 그는 성직자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라틴어와 아랍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궁정에서 일했던 그의 경력이 왕과 왕자들, 그리고 교황까지도 설득하여 언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서 선교사들을 준비시켜 ‘영적인 십자군’이 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룰은 자기 자신이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미 고난 당하신 주님처럼 자신도 고난 당하기를 바랬다.’(미주 17)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9년 동안을 신학과, 철학, 논리, 의학, 그리고 특별히 아랍어를 공부하면서 보냈다. 아랍어를 공부하기 위해 그는 무슬림 노예를 사서 그가 아랍어와 이슬람에 관해 자신을 가르치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팔마에 사는 무슬림들과 유대인들과 논쟁도 하게 되었다. 그는 제임스 2세의 보호 아래서 이런 일들을 해 나갔는데, 제임스 2세는 왕자시절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룰은 또한 이 시기에 꾸란과 알-가잘리의 Al-Ghazzali 글들도 연구하고 싶어했다.(미주 18) 그 결과로 그는 논리와, 철학, 그리고 몇 가지 다른 분야들에 대한 저술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시기의 주요 저술은 묵상서 the Book of Contemplation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그것을 아랍어로 저술하였다.(미주 19) 그는 또한 라틴어와 자국어인 카탈란어 Catalan 로도 저술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서구에서는)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정교한 철학 논문을 작성한 첫 그리스도인 저술가가 되었다.(미주 20)
그가 자신에게 아랍어를 가르치게 하려고 사들인 노예는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주인을 살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룰은 이 일로 큰 충격을 받고 9년 전에 했던 것처럼 한동안 기도와 묵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시기에 그는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믿지 않는 자들이 반박할 수 없는 기술 Art (즉, 방법)을 만들어 내서 기독교의 진리가 모든 사람들 위에 서게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미주 21) 이 책의 제목은, 시리즈로 볼 수도 있는데, Ars Magna 혹은 Ars Generalis 이다.(미주 22) 보너 Bonner 는 그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그 (노예의 자살) 후에 라몬은 집에서 그리 멀리 않은 어떤 산에 올라갔다. 평온함 가운데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기 위해서였다. 거의 일 주일 가량을 머물렀을 때, 어느 날 하늘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주님께서 앞에서 말한 그 책의 저술에 대해 어떻게 믿지 않는 자들의 오류를 보여줄 것인지 그 형태와 방법을 그의 마음에 떠올려주셨다.(미주 23) 그 책은 원래 묵상서가 될 것이었지만, 그리고 묵상서임에는 틀림이 없고, 또한 룰의 모든 사상이 그 책에 드러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 책의 형태를 구성하고, 어떻게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가에 있었다.(미주 24) 이것이 새롭게 영감을 받은 그 기술에 대한 주요 과제가 될 것이었다. 이제 42세가 된 룰은 그의 역작이 될 저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시작하고 있었다.(미주 25)
룰의 사상과,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변증법을 살펴 보기 전에, 룰이 개종을 하고 9년을 배우는 것에 사용한 후, 그 생의 나머지 40년이 어떠했는지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룰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 볼 때, ‘영적 십자군’을 시도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설득하여 그 가치를 깨닫도록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여행하고, 가르치고, 왕과 교황들의 후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 수 일, 수 개월을 보냈다. 그 모든 것이 그가 갖게 된 비전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의 열망이 외면당한 적도 많이 있었지만, 그가 무언가를 이루어낸 것도 있다. 룰이 8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비엔나에서 열린 협의회(1311-1312) 에 참석하여 동양어(히브리어, 아랍어, 칼데아어 Chaldean )를 가르치는 언어 학교를 설립할 것을 교황에게 직접 건의 하였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Paris, Oxford, Bologna, Salamanca, 그리고 교황청 Papal Court 에서 학생들이 이 언어들을 배우고 선교사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룰의 가장 큰 업적은 그의 선교 여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북아프리카로 세 번 그런 여행을 떠났다. 처음에는 튜니지아의 수도 투니스로 가서 무슬림 학자(울레마)를 만나 그들 종교를 자신에게 확신시킬 수 있으면 자신이 무슬림이 되겠노라고 제안했다. 며칠 동안의 논쟁 후 그 도시의 이맘들과 지도자들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는 그들 중 몇 명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술탄에게 가서 룰을 감옥에 가두고 처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좀 더 유순한 리더의 중재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항구로 보내져서 몇 명 안 되는 믿는 자들과의 몇 번의 은밀한 접촉 시도 후에 강제로 유럽으로 보내졌다. 이 때가 1291년 혹은 1292년이었을 것이다. 룰은 평생에 두 번 더 그런 여행을 했는데, 마지막 여행은 1315/16년에 있었다. 그 여행은 알제리아에 있는 Bougie시에서 83세의 룰이 성난 무리들의 손에 순교 당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의 몸은 마침내 팔마로 다시 보내져서 샌프란시스코의 교회에 아직도 묻혀 있다.
어떻게 해서 무슬림들의 신 개념에 대한 룰의 접근이 무슬림들에게 그렇게도 위협적이었으며,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진리를 잘 드러낸 것으로 보이는가? 다음 부분에서 우리는 룰의 변증적, 복음주의적 방법과 관련된 그의 신학적 철학적 개념들을 좀 살펴볼 것이다. 특히, 룰의 사상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와, 그가 사용한 기술의 성격, 그리고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인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한 그의 접근 방법을 살펴볼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룰의 변증법의 기초가 되고 있는데, 이는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이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제시되는 이 두 교리에 대한 설명은 룰의 책인 “이방인과 세 현자의 책 Book of the Gentile and the Three Wise Men”에서 가져온 것이다.(미주 28)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비록 룰이 학자이고 학자적인 방법으로 논증하고 있지만, 그가 한 개종의 경험이 그의 철학과 선교사로서의 방법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즈웨머가 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룰의 내적 생활의 열쇠가 되는 것은 그의 개종의 경험이다. 성육신적 사랑이 육적인 사랑을 극복했고, 룰의 모든 열정과 천재적인 시성 poetry 이 십자가를 향한 복종에 쏟아졌다. 그가 젊어서 본 비전이 그가 나이를 먹은 후에 내세운 모토를 설명해 준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있지 않은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He who loves not lives not; he who lives by the Life can not die.’ 고난 당하시는 구세주 이미지는 그가 산 50년간 줄곧 그를 살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스도 그 분을 향한 사랑이 그의 가슴을 채웠고, 그의 정신을 빚었고, 그의 펜 pen 에 영감을 불어 넣었으며, 그의 영혼이 순교의 관 crown 을 간절히 소망하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가 계시에 대한 그 큰 신비에 대해, 그리고 무슬림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합당한 증거를 찾아내었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그의 비전을 회상했다. 삼위일체에 대한 그의 증거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령에 의해 우리에게 계시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 증거였던 것이다.(미주 29)
3 룰의 사상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의 개종에 대한 룰의 관심이 그의 사상과 저술들에 나타나는 주요 동기요 중심이 된다. 그는 철학이 신학에 보조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강조했는데, 개종에 대한 룰의 관심만이 그가 철학에 대해 취했던 이러한 태도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 줄 수 있다.(미주 30) 룰이 살았던 시대는 유럽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 사상가들의 개념들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중에 있었다. 이 사상들은 중동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정교회 수도승들과 이븐 시나(아비시나) Ibn Sina (Avicenna)와 이븐 라쉬드(아베로스) Ibn Rushd (Averroes) 같은 무슬림 철학자들과 주석가들이 지니고 있었던 것들이 새롭게 소개된 것들이었다. 이 시기는 아랍 이슬람 세계가 가지고 있던 것들에 철학과 학문이 동요되는 시기였다. 따라서 룰은 그런 철학자들의 사상에 영향 받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인도하려면 그 자신이 그런 사상들을 섭렵하고 반박해서 기독교 신앙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도적 관심에 붙들려, 룰은 철학과 신학 사이에 분리의 벽을 세우려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이는 그의 전 생애 동안 매우 뜨거운 논쟁거리였는데,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아베로스의 주석들과 기독교 세계에 속해 있는 그의 추종자들, 즉 ‘의심스러운 진리 double truth’라고 알려진 것을 지지했던 라틴 아베로스들 Latin Averroists(즉, 기독교 세계에 살면서 아베로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역자 주)로부터 시작했다. 의심스러운 진리 이론은 철학적으로는 진리일 수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아직 진리라고 볼 수 없는 것,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한 이론이다.(미주 31) 룰은 그런 개점이 지식인 무슬림들 사이에 기독교 메시지가 살아날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보았다. 그는 이성이 가장 깊은 신앙의 신비를 믿을 수 있는 이성적인 바탕을 제시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St. Ramon de Penyafort 과 Ramon Marti 같은 그보다 앞선 도미니크 수도사들을 비판했다. 이들은 발렌시아에서 룰처럼 비폭력적인 방법들을 사용하여 무슬림들을 기독교로 이끌었지만, 룰은 마티가 기독교의 합리성을 보여주는 이성의 역할을 무시했기 때문에 튀니지의 술탄 al-Mustansir를 개종시키는데는 실패했다고 보았다.(미주 32) 마티는 술탄이 이슬람의 진리를 포기하도록 설득했지만 기독교의 진리를 확신시키는 데는 실패함으로써, 그 술탄이 이슬람의 진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보다 오히려 못한 상태를 만들었다.(미주 33) 룰은 이것을 큰 비극으로 보았으며, 그가 생각해낸 방법 Art 을 적절히 사용하면 이러한 비극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합리성을 증명하는 ‘필연적인 이유들’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코플레스톤 Copleston 은 철학에 대한 룰의 태도와,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이 목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준다:
무슬림들의 개종에 대한 그의 관심은 철학이 신학에 종속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주장뿐 아니라, 이성의 능력으로 신앙의 교리들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게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를 바탕으로 ‘필연적인 이유들 necessary reasons’로 신앙에 대한 문제들을 ‘증명’하려 하는 그의 제안을 이해해야 한다. 그가 기독교의 신비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합리화하려고 할 때 그것은 St. Anselm 나 Richard of St. Victor가 삼위일체에 대해 ‘필연적인 이유들’을 말한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룰은 신앙이 이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다룬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그는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에서 믿는 것들이 이성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는 것들에 대해 이성적으로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더 나아가, 아베로스들이 받은 비난, 즉 그들이 ‘이중 진리’를 붙잡고 있다는 비난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고 믿으면서, 룰은 신학과 철학이 갈라서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신학적 교리들이 이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성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미주 34)
이러한 ‘필연적인 이유들’을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룰은 알고 있었다.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신앙과 이성 사이의 충돌을 피하면서, 어느 정도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거나, 혹은 적어도 그 타당성을 보여야 했을 것이다. 룰은 자신이 이성주의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섬세한 조화를 강조하고, 그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그런 노력에 따르기 마련인 위험을 피하기 위해 룰은 종종 세 종교 모두에 존재하는 기초적인 전제(신학적, 철학적)부터 출발하는 것을 선택했다.(미주 35) 보너는 이렇게 설명한다: ‘룰은 신에 대한 일련의 전제에서부터 시작한다. 신은 존재하시고, 한 분이시며, 모든 것의 근원(first cause)이 되시고, 등등. 그리고 나서 그는 세 종교 모두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의 속성으로 들어간다 (비록 다른 시기에 다른 형태를 띠기는 하지만)… 룰은 이러한 속성들을 특성 properties, 미덕 virtues, 이성 reasons (rationes), 혹은 종종 위엄 dignities 이라고 칭한다.(미주 36)
룰은 그의 사상의 하위 구조가 되는 신과 세계에 대한 다섯 가지 원칙을 나열한다.(미주 37)
1. 신은 그 자신의 본질적인 함과, 위대함, 영원성, 능력, 지혜, 의지, 미덕, 진리, 영광을 가지고 있다. (다른 곳에서 그는 9가지 이상 되는 신의 속성들을 나열한다. 따라서 여기에 나열된 것들이 모든 속성을 다 나열한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2. 이 속성들 혹은 위엄들은 서로 대치됨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하나님의 본질이 합쳐져서 그 속성들이 서로 융통성 있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 속성들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 분 이라는 사실에 어긋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단순함의 개념이다.)
3. 이 위엄들은 실재하는 것이다.
4. 실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룰의 사실주의적 존재론을 보여준다.)
5. 각 위엄들은 이 세상에 있는 각 창조물의 역량에 맞도록 영향력을 발휘하여, 각 창조물들이 그들의 제 1 원인이 되는 것 (즉, 신)을 닮도록 한다. 각 창조물의 역량은 그 창조물이 얼마나 그 위엄과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설명을 하면서 룰은 창조물이 하나님의 속성에 맞는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매우 일반적인 중세 사상을 반영한다. 룰은 사실주의자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존재론적인 구조를 갖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그의 방법(Art)의 목적은 ‘진리를 알고 그에 동의하는 방법이 가능한 한 실재하는 방법에 가장 가깝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The aim of his Art was ‘to make the modus intelligendi [the mode or manner of knowing or assenting to truth] conform as closely as possible to the modus essendi [the mode or manner of existing or imbibing/exuding essence].’) (미주39)
그래서 그는 기독교의 신비를 우주 구조의 한 부분으로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설명’ 혹은 증거가 ‘필요한 이성’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미주40) 보너는 룰의 방법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가 그 방법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룰 자신도 조심스럽게 지적했듯이 논리도 아니고 형이상학도 아닌 오히려 그 둘 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본질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설명은 룰이 사용한 ‘방법(Art)’ 이라는 말에 있다. 그리스어 tevcnh를 학문적으로 해석한 이 말은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교리가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룰은 전체 우주 구조 the modus essendi 를 가지고 그 위에 또 하나의 다른 구조를 올려놓고 있는데 그것은 그 최초 the first 와 관련되었고 또 그것에서부터 나온 the modus intelligendi의 구조이다.(미주41)
이와 같은 룰의 사상의 대체적인 윤곽을 가지고 우리는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타당성에 대한 그의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에서 우리는 그의 주장을 소개할 것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과 룰에게 미친 중세 철학자들의 다양한 영향에 대해서는 미주와 참고서적 목록에 소개되어 있는 저술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룰의 작품인 ‘이방인과 세 현자의 책’ (Book of the Gentile and the Three Wise Men)은 룰의 일반적인 변증학적 접근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그가 란다 산에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 쓰여진 비유적인 allegorical 책이다.(미주 42)
네 인물이 있다: 이방인, 유대인 현자, 기독교인 현자, 그리고 무슬림 현자.
이 가운데 세 대표자들은 유일신 종교를 믿고 있고 종교적 문제와 관련해 종종 모이게 되는 친구들이다. 이방인은 먼 땅에서 온 사람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는 동안 그 세 친구들은 한 훌륭한 목초지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데 그 곳에는 다섯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에 물을 대는 한 샘이 있다. 그 샘 옆에는 지성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을 만나서 그들은 그 다섯 그루의 나무들이 무엇인지 그 각각의 꽃들에 쓰여져 있는 글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미주 43) 그녀는 그 나무들과 꽃들이 하나님의 본질, 창조되지 아니한 미덕 virtues, 창조된 미덕, 죽음에 이르는 죄, 그리고 그와 관련된 그 이외의 많은 사항들 conditions을 결합시켜 놓은 것이라고 설명한다.(미주 44) 더 나아가 그 모든 것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고, 알고,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또한 이렇게 덧붙인다. “이 모든 사항들이 꽃들을 다스리는데, 그 꽃들은 하나님과 그 분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고, 심지어는 그들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교정하는 원리요 교리가 됩니다.(미주 45) 그 여인이 그들 셋을 떠나간 후에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여러분 하나의 분파에 속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해 harm 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종교에 속할 때 오는 좋은 점에 대해서 논의해 봅시다. 이 나무들 아래에 앉아서 꽃들과 이 나무들이 나타내는 사항들에 따라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해 나누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권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으니, 논증적이고 필요한 이성 demonstrative and necessary
reasons 에 의해 어떤 동의점에 도달하도록 해 봅시다.”(미주46) 그들이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 이방인이 그 장소에 도착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인사를 하자 그가 누구든지 자신에게 이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이방인의 책 the Book of the Gentile’은 시작이 된다. 결국, 각각의 세 현자는 그 이방인에게 자신의 신앙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갖게 되고, 그 와중에 그 이방인은 교리의 성격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각 현자들이 대답을 한다. 룰은 유대인과 무슬림의 신앙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그의 이 두 신앙에 대한 설명은 매우 훌륭하다.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바르게 보여주는 것은 룰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이것이 바로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삼위일체와 성육신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삼위일체와 성육신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부 한다고 보는 것이다.-역자 주) (미주47)하나님의 완전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 시대에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미주48)
- 계속됩니다.
원본바로가기 Raymond Lull: Medieval Theologian, Philosopher, and Missionary to Musl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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