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8일 화요일

무슬림 개종자들에 관한 연구: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 (III)


원제: A STUDY OF PALESTINIAN MUSLIM CONVERSIONS TO CHRIST

6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개종 요인 분석
6.1 이슬람의 역할
다량의 연구를 분석할 때나 사용할 수 있는 통계적인 방법론을 본 연구에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정리해 본 개종 요소들은 눈에 띄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뿐이다.[2] 결과를 보면 어떤 개종 요소들은 전혀 나타나있지 않거나 혹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어떤 것들은 자주 반복된다. 팔레스타인 응답자들 그룹에 적용된 개종 패턴은 이와 같이 좀 덜 하게나 좀 더 눈에 띄는 영역들로 나타난다.[3]

소수의 응답자들에게 나타난 중요한 개종 요소들을 논의하기 전에, 전체적으로 빠져있는 요소를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응답자들은 개종 전에도 이슬람에 별로 깊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야 하기 때문에 기도하고 금식하기는 했지만, 무슬림 성직자였던 사람은 없었다. (이슬람에는 성직자 개념이 없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맘과 같이 전적으로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 번역자) 오직 한 명, 여자 4만이 메카에 한 번 다녀왔으나 그것도 소순례였다. 따라서 응답자들 중 아무도 개종 전에 강경한 무슬림이었던 사람은 없다. 남자 10은 스스로 자신이 좀 예외적인 경우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역시 이슬람뿐 아니라 기독교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있었고, 다른 방법으로 두 종교 모두에 끌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슬람만은 분명하게 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종자들의 약한 이슬람 배경은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있는 경우 개종이 힘들다는 가정을 어느 정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개종자 개개인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공동체적으로 보았을 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이슬람을 강하게 신봉하던 사람이 180도 변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경우는 없지만, 남자들 중 일곱은 개종 후에 죽음의 위협을 당했다. 이는 공동체가 개종자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공동체적으로 이미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미쳐지고 있음에도 개종자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있는 경우 개종이 힘들다는 말이 반만 맞는 말이 된다는 뜻이다. – 번역자)[4] 이 일곱 명 중에 여섯 명과 다른 여자 두 명(여자 1과 여자 9)은 개종 이후에 공동체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따라서 개종자들 자체에는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지만, 그들의 공동체 자체에는 강한 이슬람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개종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만큼 강한 영향력은 아니었다.[5]

또한 눈에 띄는 것은 대다수의 남자들이 죽음의 위협을 경험했거나 두려워한 반면,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공동체에서 거절 당하지 않았고, 아래에서 일부 개종자 여성들에게 미친 공동체의 역할을 정리해 보았다. 반면에 일부 남성들은 여러 다른 강도의 죽음의 위협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개종자들 자체는 강한 무슬림들이 아니었지만, 그들이 속한 공동체 (혹은 가족)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된 새로운 삶에 격렬하게 반응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죽음의 위협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사는 남성 무슬림 개종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6.2 현저하게 눈에 띄지는 않는 영역들
이제부터는 응답자들 중 소수만이 개종의 요소로 꼽았던 것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몇 명의 개종자들이 개종에 있어서 독특한 요소를 강조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인터뷰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개종 패턴에 크게 기여하지는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세히 논의되지 않겠지만, 조금만 다르게 표현된다면 아래의 표와 같이 더 눈에 띄는 요소들로 구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 3이 성령의 역할을 강조한 것과 남자 7이 하나님을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로 만난 것을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기적적으로 개입하신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남자 7이 그리스도인의 교제에 초점을 맞춘 것도 믿는 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는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여자 9가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도 성경 읽기라는 영역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는 한 사람(남자 8)만이 특별하게 언급하였다. 다른 분석자 같으면 둘을 제외한 모든 개종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가 영생에 대한 확신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하면서, 이 요소를 좀 더 강하게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대부분의 응답자들에게 적용되는 중요한 개종 요인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 별로 그런 것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은 개종의 중요한 요소로 보아야 할 것 같아, 아래에서 소제목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개종의 중요한 요인들은 여전히 소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몇 명의 응답자들이 언급한 것들이다. 그 요인들은 정치적 불안정과, 이슬람에 대한 거절, 기독교 미디어, 개인적 위기, 공동체, 하나님의 영광이다.

6.2.1 정치적 불안정
나는 정치적 불안정이 무슬림 개종자들이 그리스도께로 오게 되는 주요 원인일 것이라고 기대했었다.[6] 정치적 불안정과 연관된 절대적인 필요는 다소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이 많은 개종자들의 개종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세 응답자, 남자 4와, 6, 8은 정치적 불안정을 중요한 요소로 지적했지만, 이 세 남자들도 각각 그것을 다르게 보고 있었다. 남자 4는 고향마을에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공동체 사이의 긴장이 있는 가운데 자신이 무슬림 갱단에 들어간 것에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 6의 과거와 현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라는 사실에 그늘져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이슬람을 거절하고 계속되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인식하게 되었다. 남자 8은 체포된 후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고, 결국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7] 남자 4와 6, 8은 각각 다른 종류의 필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필요가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폭넓은 상황가운데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 그들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필요 가운데 만나게 된 예수님이 그 필요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경험은 어느 정도 개종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으나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정치적 불안정은 그들의 삶에서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라서 그것 자체를 개종으로 이끈 주요 원인으로 보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6.2.2 이슬람에 대한 거절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응답자들 중 아무도 개종 이전에 특별히 강경한 무슬림이었던 사람은 없었다. 사실 그들 중 여섯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이미 이슬람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들 중 둘(남자 6과 여자 10)은 그들이 이슬람을 거절하게 된 이유를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연관시켰다. 반면에 남자 4는 믿기 전에는 이슬람을 거절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개종하면서 이슬람을 거절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슬람에 대한 거절을 중요한 개종의 요인으로 꼽은 세 명 중에서 오직 남자 4만이 개종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을 거절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즉, 개종이전에 이슬람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개종의 과정에서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를 택하게 된 것이다. – 번역자) 또한 그가 바로 이슬람을 비판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나에게 조심스럽게 알려준 사람이다. 그는 그 자신의 경우나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이슬람에 대한 거절이 무슬림의 개종에서 중심 요인이 된다고 보지 않았다. 남자 4의 경우가 보여준 이슬람에 대한 거절이라는 독특성은 별개로 하더라도(남자 4는 이슬람이 싫어서 기독교를 택했다기보다는 기독교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한 경우이다 – 번역자), 다른 증거도 이 요인을 신중하게 보고 싶어했던 그의 생각을 지지해 준다. 적어도 반 이상이 꾸란의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으로 인해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이슬람의 경전에 대한 거절이 개종을 일으키는 주요 요소가 아님을 말해준다. 또한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독자적으로 그리고 종종 개종의 결과로 이슬람으로부터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경우 개종 이전에도 강경한 무슬림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개종하게 된 것은 이슬람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2.3 기독교 미디어
기독교 미디어는 다섯 명(남자 1, 8, 10, 여자 1, 2)의 경우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미디어의 종류는 다양했고, 각자에게 다른 영향을 미쳤다. 남자 1은 비디오로 된 성경 교재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이것이 그에게 미친 영향은 그가 정말 개종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자 8은 그의 친구 남자 7이 가지고 있는 문서들을 읽었다. 그러면서 그는 성경까지 읽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남자 10은 어린이 성경과 기독교 텔레비전을 접하게 되었는데 둘 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린이 성경을 통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품게 되었고, 기독교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다. 여자 1과 2는 모두 기독교 테이프의 역할을 강조했다. 테이프가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고 받아들이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 가지 특별한 기독교 매체가 개종의 도구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예수님이 계신 곳’ 역시 특별한 유형 없이 여자 1부터 8까지 (그리고 남자 1에게 역시) 여러 모양으로 영향을 미쳤다. 오디오 시각 자료가 분명 일반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아마도 대부분의 개종자들이 제한적인 교육을 받았고 따라서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오디오 시각 기독교 매체는 거기에 있는 모든 응답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8] 그러나 여자 1부터 8까지 계속해서 그러한 미디어의 유익을 얻는다고 해서 미디어가 반드시 중요한 개종의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미디어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지는 않았다.

또한 주목할만한 것은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던 네 명의 개종자들이 미디어만을 독립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9] 그들은 기독교 미디어를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나, 성경 읽기, 혹은 예수님의 존재와 같은 요소들과 연결시키고 있다.[10] 따라서 다양한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소수의 개종자들에게 대체로 보좌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6.2.4 개인적 위기
개종자들 중에 일곱이 (즉,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 삼분의 일 정도가) 개인적 위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자세한 사정은 각각 다양했지만 유사성을 찾아볼 수는 있다. 여자 2와 3은 개인적 위기의 상황에서 기도가 응답 받았다는 것을 강조했다.[11] 여자 2는 심각한 의료적 상황에서 구원 받았고, 여자 3은 그녀가 어렸을 때 신체적으로 쓸 수 없었던 부분이 고침 받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녀가 그 경험을 했던 같은 장소(‘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영적으로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 일을 회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자 3이 어렸을 때 한 경험이 후에 그녀가 개종할 때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자 10의 어렸을 때부터 계속된 어려움은 개종 전부터 있는 일이었지만, 그러한 시련을 통해 그녀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된다.

남자 2와 남자 9는 모두 개인적인 절망의 상황에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남자 2는 마음의 공허감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남자 9의 경우에는 첫 인티파다와 함께 온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의 영적인 순례는 이미 극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12]
남자 8의 위기 역시 절망과 과 관계되어 있지만, 그의 경우에는 좀 더 신체적인 것에 대한 것이다. 차를 운전하고 가던 중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에 의해 그가 길에서 벗어나 죽게 되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다. 남자 11의 경우에는 신체적인 위기가 특징이다. 그는 총에 맞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러한 호된 체험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열한 일곱 개의 위기 경험을 더 이상 분리 분석하려는 시도는 별로 현명하지 못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위기가 이전에 일어났건, 개종 당시의 상황이었든, 개종자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갔든 그렇지 않든 간에 각각의 위기가 관련된 개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6.2.5 공동체
여자 2와 7의 경우에 공동체의 역할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는 좀 더 광범위한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 양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예수님이 계신 곳’ 사역의 영향을 받은 인터뷰한 여덟 명의 여성들 중 일곱 명이 (여자 2부터 8까지) 그들의 가족이나 공동체에 의해 믿도록 격려 받았다고 말했다.[13] 또한, 이 일곱 명은 그들의 개종 후 그들이 속했던 공동체가 그들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자 5의 경우에는 그녀의 무슬림 공동체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 이라는 단체도 배척하지 않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자 4가 포괄적인 질문지에 한 대답들이 여자 5부터 8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대답한 것들을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할 지라도, 그러한 영향 자체가 공동체가 그들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여덟 번 째 (여자 1부터 세었을 때) 여자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의 사역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공동체의 영향을 받은 하위 그룹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여자 1부터 여자 8까지 모든 이야기들은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에 대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이 다른 (무슬림) 여성들을 통해서 혹은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었음을 알려준다. 심지어 여자 1까지도 (그녀는 가족이나 공동체의 격려도 받지 못했고, 이후에는 공동체로부터 거부당하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이 계신 곳’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그 곳에 갔다. 따라서 여자 1부터 8이 그리스도인과 연결되기까지 공동체는 그들의 개인적인 개종 이야기에서 드러난 것 보다 더 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지역에서도 그러한지 좀 더 연구가 이루어진 후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연구는 (개종자 개인보다는) 몇 개의 그룹을 조사해서 공동체적 요소의 강점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14] 그런 연후에나 여성 하위 그룹(즉 여자 1부터 여자 8)에 미친 공동체의 중요성을 좀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2.6 하나님의 영광(명예, honor)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자주 언급된 부분이다.[15] 그러나 개종자들 중 하나님의 영광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16] 그러면서도 모두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고, 또한 예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영광스럽게 느낀다고 모두 고백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영광(명예)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응답자들의 개종 경험에서 두드러진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필자의 이 특별한 질문 (즉,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질문-번역자)이 그들의 뭔가를 건드린 것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인터뷰한 사람들 중 열 명이 그들의 개종에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꼽았다는 사실이다. 아크람 알라(أكرم الله )는 아랍어로 가장 존경할만한, 특별히 고귀한 존재로서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17] 이는 매우 기본적인 신학적 진리를 보여주고 있으며, 아랍 무슬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을 달리 어떻게 보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열 명의 인터뷰한 사람들 중 몇 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개종의 요인으로 보지 않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너무나 당연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18] 결론적으로, 내가 모은 모든 정보들에 비추어보았을 때 열 명의 개종자들이 하나님을 영광을 강조한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즉, 남자 2와 6, 여자 1과, 2, 3) 그것이 더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19]

하나님의 영광이 하는 역할에 대해 분명히 알기가 어려운 것은 개종자들이 의미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말이 거의 나오지 않았고, 그들 중 아무도 그들이 포괄적인 질문지에서 답한 영광과 관계된 것들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20] 개종자들 중 아무도 영광에 대한 성경적인 신학 (그것이 명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본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이슬람에서 말하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것에 동의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어느 정도는 성경적인 의미의 영광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그 그룹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개종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다. 개종 전후에 영광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초점을 맞춘 다른 질문지를 만들어서 조사한다면 아마도 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21]

6.3 현저하게 눈에 띄는 영역들
이제 응답자들 대다수가 중요하게 여긴 개종 요소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요소들은 성경읽기, 믿는 자들의 역할,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 예수님 그분 자신이다.

6.3.1 성경 읽기
일곱 명의 사람들이 (남자 1을 포함하면 여덟 명이) 성경 읽기를 중요 개종 요인으로 보았다. 이는 (대부분이 이 요소를 중요하게 본) 남성들과 (대부분이 그렇지 않게 본) 여성들 사이에 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교육 수준이 좀 더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 요소를 가조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즉, 남자 2, 3, 7, 8, 9, 그리고 여자 9) 개종 당시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는 필시 성경읽기를 좀 더 용이하게 하여주었을 것이다. 비록 남자 3의 경우에는 처음 성경을 읽을 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Margaret K. Nydell는 이 주제에 대해서 가치 있는 정보를 제시해 준다. 그녀는 아랍어 구어와 문어(즉 문자로 기록되는 아랍어로 전통 아랍어 혹은 표준 아랍어라고 불린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하면서, 문어를 배우게 되는 사람이 겪게 되는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사람은 표준 아랍어에서 새로운 단어들을 배워야만 한다 … 어미도 다르게 변하고, 새로운 동사 형태 등 전혀 새로운 문법을 배워야 한다.”[22] 그녀는 또한 덧붙이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5년 내지 6년 정도만 학교를 다녔다면, 그 사람은 읽고 쓸 줄 안다 할지라도 여전히 “기능적으로는 문맹” (자기 이름을 서명하거나, 서명을 읽는 것 같은 초보적인 필요 이상으로는 문어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이다.’ 하고 말했다.[23] 따라서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개종자들이 성경 읽기를 통해 중요한 유익을 얻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성경읽기를 중요하게 본 세 사람, 남자 5와, 11 그리고 여자 10은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따라서 이는 좀 놀라운 사실이지만, 그들의 독특한 상황을 통해 그들이 왜 성경읽기를 강조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남자 5는 그가 어렸을 때 꾸었던 꿈에 나온 구절을 성경에서 발견해냈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이 아마도 그에게 계속 성경을 읽게 하고 또 그것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남자 11은 그가 처음에 성경을 집중적으로 읽었을 때는 많이 이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24]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이 그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여자 10은 그녀가 읽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했지만, 오랜 기간을 거쳐 하나님의 개입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25] 그녀 역시 그렇게 하면서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체험하였다. 따라서 이 개종자들에게는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경험이 특별히 성경읽기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차원의 성경 읽기는 남자 5와 11, 그리고 여자 10에게만 제한된 것은 아니다. 더 많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남자 2는 성경이 진리일 뿐 아니라 살아있다고 강조하면서 그의 사고 방식이 전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남자 3은 처음에는 성경에서 많은 것을 얻지 못했지만, 성령님의 역할을 통해 성경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남자 7은 신약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것에 매료되었는데, “무엇인가”가 그를 더 공부하도록 만들어서 그는 마침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었다.[26] 남자 8은 성경을 읽으면서 그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남자 9는 꿈 같은 경험을 한 후에 그 경험을 바르게 세워주는 신약을 집중적으로 읽었고, 그러면서 성경에 대한 갈망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여자 9는 여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간과할 수 없었고,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요약하자면, 성경읽기에서 누가 유익을 얻는가 하는 문제는 읽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남자 10이나 여자 11의 경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읽을 줄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경의 유익을 얻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27] 따라서 성경읽기를 강조한 아홉 명의 개종자들은 읽는 데 좀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한 경험으로 인해 성경읽기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지적이거나 정보 수집의 차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28] 본질적으로, 각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혹은 다 읽은 후에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경험했다. 이와 같이 성경 읽기는 그룹 전체의 거의 반수가 매우 중요한 개종의 통로로 여기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6.3.2 믿는 자들의 역할
믿는 자들의 존재는 대부분의 개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러 개인이 관여되어 있고 경우에 따라 그들의 역할이 다양하다. 어떤 개종자들은 특별히 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고, 반면 다른 이들은 몇 명을 통해 개종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게 쓰임 받는 믿는 자들은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고, 외국인이나, 현지인일 수도 있다. 그들이 다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들도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 개종자를 위해 쓰임 받는다. 그들의 영향은 그들의 삶과 그들이 선포하는 복음과 갖는 우정에 따라 다양하다.

연구의 초점이 개종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믿는 자들이 개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이 논의 되었다. 믿는 자들이 어떤 사역 방법을 사용했는가 하는 것보다는 개종자들의 설명을 중심으로 논의 되었다.[29] 또한, 한 사람이 개종하기까지 많은 사람의 영향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만 언급되었다. 따라서, 위에서 알파벳으로 소개된 사람들 중 (믿는 자 A부터 L까지)일부는 아래의 논의에서 빠졌을 수도 있다.[30] 그러나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개종자의 설명에 필요할 때는 아래에서 언급하였다.

믿는 자들의 역할은 여성 그룹과 남성 그룹에서 각각 여섯 명이 이 요소를 강조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즉, 남자 3, 4, 5, 6, 7, 9, 여자 1, 3, 4, 9, 10, 11)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다.[31]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영역구분은 남자 7이 관계를 강조한 것은 믿는 자들이 그의 개종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 믿는 자들이 남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32]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 개종자들 역시 남자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믿는 자 A는 여자 1과 3 그리고 4의 개종 설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공개되지 않은 여자 9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도 남자이다. 심지어 독일 여성인 믿는 자 K에게 특별한 영향을 받은 여자 10 역시 남자 전도자인 믿는 자 J와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다.[33] 이와 같이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남자 믿는 자들이 영향을 미치는 경향인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이 무슬림 여성들에게 효과적인 사역을 했다는 사실은 다소 놀랍다. 그러나 여성들의 설명 어디에서도 남성 전도자들이 부적절하게 행동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조금도 없다. 이 남성들의 삶은 분명하게 그들을 변화시키신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고, 여성들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중요한 역할을 한 남성 믿는 자들은 그들의 사역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서 여성들이 제외되지 않도록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34]

성별에 대한 것은 그렇다 치고, 응답한 개종자들 모두가 그들이 만난 믿는 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면에서) 각각 다른 종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남자 3은 믿는 자 C를 어떤 특별한 것을 가진 사람으로 보았다. 남자 4는 믿는 자 E가 어떻게 더 좋게 변화되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남자 5는 믿는 자들의 도덕적인 깨끗함을 좋아했다. 남자 6은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했다. 그들이 무슬림들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남자 7은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에 감동을 받았고, 믿는 자 H의 집에서 그것을 경험했다. 남자 9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어떤 다른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온유함, 자비, 헌신과 사랑이었다. 여자 1은 믿는 자들의 사랑과 믿음에 끌렸다. 여자 3은 믿는 자 A의 기도와 가르침, 실제적인 도움에 감동을 받았다. 여자 4는 믿는 자 A의 기도와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35] 여자 9는 그녀에게 말했던 진실로 믿는 자와 그녀가 이전에 알고 있었던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간의 차이를 강조했다.[36] 여자 10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많은 영향 아래로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여자 11은 믿는 자 L의 친구가 되고 도움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그것을 강조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믿는 자들의 삶의 질이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도 믿는 자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었다.

6.3.3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열 여섯 명의 응답자들이 (남자 8을 포함하여, 그의 확신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중요한 개종 요소로 보았다. 여덟 명의 남자들과 여덟 명의 여자들이 그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되기까지 이 요소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언급했다. 그러나, 각 사람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 중요성을 다르게 지적했다.[37] 각각의 설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설명해 놓았다. 몇 명의 응답자들은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더 알기를 원했고, 그것에서 그들이 찾던 것을 찾았다. 남자 2의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충족되었다. 남자 7의 진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기독교인들간의 교제를 통해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루어졌다. 여자 1은 예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 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여자 7의 예수님을 더 많이 알고 싶은 호기심과 욕구 역시 ‘예수님이 계시는 곳’의 가르침을 통해 만족되었다. 한편, 남자 9와 남자 10은 개종 전에 진리를 좀 알았지만,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남자 9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이해했지만, 그가 꿈 같은 체험을 한 후에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남자 10은 좋은 무슬림이 되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부활절 토요일에 그리스도와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간절함과 호기심에 더하여, 남자 7과 여자 1, 여자 7은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 상황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랬다. 남자 4는 기독 청년회 사역에서 유익을 얻었다 (그곳 사람들의 삶이 달랐기 때문이다.) 남자 6은 믿는 자 G와 만났을 때 그의 ‘자정 후’ 경험 이후에 예수님에 대하여 배웠다. 여자 4는 카톨릭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나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믿는 자 A에게서 받은 진리와 그가 그녀에게 준 테이프에 대해 말했다. 여자 6 역시 ‘예수님이 계신 곳’의 가르침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른 응답자들은 예수님의 진리가 그들에게 미친 영향을 강조했다. 남자 5는 성경에 대한 관심이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성경이 영적 양식이라는 것을 경험했고,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 8은 성경과 기독교 문서를 읽은 후 그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알았으며 그가 잃었던 것을 찾았다고 느꼈다. 그가 탄 차가 길 밖으로 밀려나가는 경험 후에 더욱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여자 2는 예수님에 대해 배웠으며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친척 앞에서도 주장할 정도까지 되었다. 여자 3은 예수님이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죄의 수치를 가져가신 구원자라는 귀한 진리를 깨닫고 마음이 움직였다. 여자 8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그녀의 개종과 계속된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여자 9는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요약하자면, 이미 예수님의 진리에 대해 호기심과 갈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그 진리를 찾던 사람이나, 그렇지 않던 사람이나 모두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발견했다. 그러한 발견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법을 통해 (신자들을 통해서나, 기독교 미디어, 혹은 성경을 통해서) 일어났다. 그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각 개종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다.[38] 오직 몇 명의 개종자들만이 그 진리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렇지만, 깊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은 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말씀은 그리스도와 만난 열 여섯 명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그 후 그들의 삶이 변했다.

6.3.4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
열 네 명의 개종자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강조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남자 3의 성령님에 대한 관심과, 남자 7의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발견은 하나님의 개입하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포함할 경우는 그 경우는 열 여섯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여덟 명의 남성들과, 여덟 명의 여성들은 각각 다르게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경험했다. 다음의 내용은 각 개종자들이 한 독특한 경험을 폭 넓게 진술하고 있다. 어떤 틀 안에 집어넣지 않고 여러 모습으로 그려보았다.[39]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강조한 몇 명은 매우 감동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 5는 어린 시절 비전으로 보았던 말씀을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성경에서 찾아내고서는 매우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남자 11은 성경을 읽고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다. 여자 3은 ‘예수님이 계신 곳’과 관계하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자 6은 새로운 일거리와 새 집, 그리고 딸의 병을 위해 기도하다가 기적적인 응답을 받고 마음이 움직였다. 여자 7은 남편을 위한 기도가 응답 받는 것을 보았고, 삶에 매우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여자 8은 다른 신자의 기도를 통해 치유를 경험했다.[40] 그러나, 각 경우는 모두 개종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자신들이 인격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남자 2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긍정적으로 변했고, 그의 가족은 그의 삶에 일어난 변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남자 3의 점차적인 개종은 그가 갈구했던 믿음과 사랑을 성령님께서 주심으로 그 정점에 도달했고, 성령님께서 그가 참 신자임을 확신시켜주셨다. 남자 4는 예수님께서 그의 삶을 기적적으로 변화시키심으로 훨씬 덜 호전적이 되었다. 남자 7은 매우 간절하게 하나님을 그의 영적인 아버지로 받아들였고, 그의 성격이 변화되었다. 여자 4는 여섯 명의 자녀들을 잃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통해 그녀의 삶에 일어난 기적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 여자 10은 매우 큰 변화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그녀의 힘든 배경에서 구원 받았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강조한 다른 사람들 모두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그들을 변화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 9는 평안과 위로를 느끼게 해 준 꿈 같은 경험을 통해 믿기로 결심하고 그리스도께로 왔다. 남자 10은 성령님께서 그의 성격을 변화시키시는 폭발적인 경험을 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을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여자 1은 기도의 응답에 감명 받고,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그녀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통해 사랑과 믿음을 경험했다. 여자 11은 꿈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지만, 기적적으로 내부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 분의 신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그룹이 경험한 것들은 전형적으로 모든 개종자들의 경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종은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인 것이다. 그러한 만남은 개종자에게 감명을 주고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요소들, 즉, 신적인 감동과 변화는 그들이 그 경험에 대해 “제대로 표현” 했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진실로 개종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이 (즉, 변화를 일으키는 만남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 열 여섯 명에게 큰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41] 또한 동시에, 각 경험의 독특성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 본질상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은 하나님 자신의 산물이다. 그 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게 계시면서, 그리고 개종의 본질도 그래도 남아 있으면서, 하나님은 각 개인을 모두 다르게 다루신다.

눈에 띄는 다른 요소로 넘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과 깊게 연관된 일면이 눈길을 끈다. 많은 응답자들이 개종과 관련하여 꿈이나 꿈 같은 경험을 했다. 몇몇은 그 경험을 개종 이야기의 일부로 다루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마친 후 (포괄적인 질문지를 통해) 질문을 받고서야 그 경험에 대해 말했다. 이러한 현상이 제시해주는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남자 3과, 5, 6, 9, 10, 11과 여자 11은 꿈 같은 경험을 그들의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제시하였다. 남자 3은 “영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상태로 그 자신이 위해서 기도했던 믿음과 사랑을 받는 것을 보았다. 남자 5가 어렸을 때 보았던 천사의 비전이 그가 후에 개종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남자 6은 그의 “한 밤중”의 경험에서 예수님이 자신에게 오셨다고 결론지었다.[42] 남자 9는 평안과 위로의 느낌이 그에게 왔을 때 그리스도께 신앙을 고백하였다. 남자 10의 개종은 마치 “하나님의 영이 그의 머리에 임하시는 것”과 같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폭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남자 11은 몇 가지 꿈을 꾸었는데, 확신을 주는 꿈을 기점으로 하여 그의 삶을 변화시킨 성경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여자 11은 예수님이 그녀의 가슴을 가리키시는 비전을 본 것이 개종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대부분의 꿈 같은 경험들은 본인들이 깨어있는 동안에 일어났다. 그렇기에 더욱 그 독특함이 개종자들의 마음에 새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식적인 상태와는 별개로, 각 개종자는 그 경험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이었다고 확신했다. 더 나아가, 그 비전들이 모두 응답자들이 개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개종자들이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 자세한 내용을 말한 것이다.[43]

한 편, 남자 4와 8, 여자 1과, 2, 3, 4, 8, 10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꿈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꿈들이 개종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자 4가 부모님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 후 예수님을 보게 된 것 분명 격려가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비전이 그를 개종으로 이끌었다기 보다는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도 아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꿈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은 것 같다.[44]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던 여자 10의 꿈 역시 그녀의 개종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했다기 보다는 개종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 역시 그 꿈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녀의 개종에 영향을 미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요소들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집중하느라고 그런 것이었다.[45] 다른 사람들은 심지어 꿈에 더 적은 중요성을 두었다. 개종자들 중 아무도 꿈의 자세한 내용에 관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만 말하였다: 남자 8은 자신이 카펫 위에 앉아 있는 꿈을 꾸었는데 카펫이 자신을 들어올리더니 그의 위에 있는 빛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여자 1은 촛불이 켜져 있는 교회에 있는 꿈을 꾸었다. 여자 2는 꿈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믿는 자 A가 그 꿈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었다고 말하였다. 여자 3은 뱀과 물에 관한 꿈을 꾸었는데 믿는 자 A가 그것을 예수님에 비추어서 설명해 주었다.[46] 여자 4는 두 눈 사이에 어떤 침을 맞는 꿈을 꾼 후 매우 지쳐 있었는데 믿는 자 A가 그녀를 위해 기도한 후 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47] 마지막으로 여자 8은 그녀가 꾼 꿈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후자에 설명한 꿈들은 응답자들에게 꿈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들이 말할 만큼의 중요성은 가지고 있는 꿈들이다. 이는 이슬람에서 꿈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반영해 준다. 동시에, 이 꿈들은 일상적인 방법으로 (예를 들면, 그들이 자는 동안) 일어났다고, 또 삶을 변화시키는 만남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꽤 평범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꿈을 꾼 시점이 개종자들에게 중요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그 꿈들이 개종자들의 삶에 좀 더 중요한 (개종과 관련된) 발전을 가져왔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럴 경우, 그 꿈들은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닐지라도) 응답자들의 개종 경험에 이차적인 역할은 충분히 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개종자들이 처음에 이야기할 때에는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질문에 답하면서 그 꿈들을 기억해 낸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개종자들이 그들의 꿈들에 둔 다양한 중요성들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 한다. 개종과 관련된 꿈의 (혹은 꿈 같은) 경험이 자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개종자들 중 일곱은 꿈을 꾼 경험을 그들의 이야기에 포함시켰고, 여덟 명은 그러지 않았다.[48] 전자의 사람들에게는 그 꿈의 경험이 확실한 하나님의 개입이었고, 개종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러나 후자의 사람들은 그 꿈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꿈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더 큰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꿈이나 꿈 같은 경험들은 그 꿈이 개종자에게 변화를 일으키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때에 만이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다가왔다.

6.3.5 예수님
가장 중요한 개종의 요인은 예수님 그분이셨다. 모든 응답자들이 한 명도 예외 없이 예수님을 강조했다. 심지어 개종여부가 불확실한 남자 1과 여자 5 조차도 이 요인을 강조했다.[49] 이는 개종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이 바로 사람들의 순종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만나게 되는 분이다. 예수님 없이는 개종이란 없다. 개종자들은 이유 없이 예수님을 강조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각 개종 경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다음에서는 각 개종자의 설명에 나타난 예수님의 중요한 역할을 다양한 상황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개종자들은 그들이 예수님과 만나게 된 것과 관련하여 지적인 요소를 이야기했다. 남자 3은 단계적으로 예수님에게 다가가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자 7은 신약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 8은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자 2는 하나님의 영이 강권하여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고,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마음과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되는 유익에 만족하였다. 여자 3은 예수님이 죄의 수치를 없애신 구세주라는 중요한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자 7의 예수님을 더 알고자 하는 갈망은 ‘예수님이 계신 곳’의 가르침을 통해 채워졌다. 여자 9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게 된 질문들은 그녀로 하여금 예수님께 부르짖게 하였고, 자신이 어느새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50]

다른 개종자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주로 이야기하였다. 남자 5는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 6은 그의 “자정 이후” 경험과 그 이후에 배우게 된 것들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 10은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부활절 전날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여자 1은 사랑과 믿음으로 인해 예수님에게 끌렸다. 여자 4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의 사랑 가득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여자 10은 자신을 사랑하신 예수님에게 마음을 열고 그분이 주시는 평안을 경험했다. 여자 11은 (꿈을 꾼 후) 예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 스스로 복종하게 되면서 그분의 신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과 만남에서 경험한 것들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 남자 2는 자신의 삶에서 예수님이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 변화되었다. 남자 4는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그의 삶에 받아들였을 때 눈에 띄는 변화를 경험하였다. 남자 9는 예수님에게 감동 받고, 열렬히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남자 11은 성경을 읽으면서 경험하게 된 기적적인 치유를 통해 예수님께로 돌아서게 되었다. 여자 6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삶에 기적적으로 역사하신 것에 대한 배경으로서 예수님을 강조했다. 여자 8은 예수님을 믿게 된 결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느끼게 되었다.

여기서 제시된 지적인 요소와, 사랑, 경험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단지 개종자들이 예수님과 만나게 된 다른 면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각각의 경우에 그 자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예수님이 그 중심에 계시다. 그분이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으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모든 요인들 중에 가장 중요한 개종의 요인이 되신다.


7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개종 패턴
7.1 연구 결과
위에서 논의된 개종 요인들은 표 1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여기에 제시된 각 요인들은 특별한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눈에 자주 띄는 요인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표 2는 이와 같이 인터뷰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개종하게 된 핵심 요인들을 가장 눈에 띄는 요인들부터 차례로 제시해주고 있다.[51]

7.2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개종하게 되는 핵심 요인들
이제 팔레스타인 개종자들의 패턴에 대한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모든 개종자에게 적용되는 단 하나의 요인은 있을 수 없다. 각각은 몇 가지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어떤 요인들은 다른 요인들보다 좀 더 자주 등장했다.[52]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그리고 믿는 자들의 역할이었다. 이 각각의 요인들이 많은 개종자들에게 적용된다. 여성과 남성에게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에 있어서 성별상의 특징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성경읽기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이 적용되었지만, 이는 교육 수준에 의한 것이지, 성별의 차이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과 여성들 차이에 작은 차이들은 있다. 그러나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예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개입, 예수님의 진리 및 믿는 자들의 역할의 중요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을 파노라마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그 중심에 계시다. 개종자들은 다른 방법들을 통해 예수님에게로 이끌린다. 이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 진리의 말씀, 믿는 자들의 역할, 성경읽기 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항상 그 중심에 되신다. 이것이 나의 연구를 통해 가장 광범위하게 드러난 패턴이다.[53]

8 무슬림들을 향한 선교: 확증, 오해, 발견

표2. 핵심 개종 요인들
이 연구 초기에도 언급했듯이, 무슬림 사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순교의 위험을 포함하는 상당한 장벽들을 가지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며, 설문에 응한 대부분의 남성 개종자들이 죽음의 위협을 경험했거나, 두려워했다고 답하고 있다. 무슬림 선교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점이 힘든 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개종자들의 생명이 사방에서 위협당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종하는 무슬림들이 정말 있다. 개종은 변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개인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향해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분을 만나게 될 때 일어나는 일이다. 각 팔레스타인 개종자들의 설명은 이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분석되어졌고, 대부분의 경우 진실한 개종으로 보인다. 개종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다른 곳에서 개종했다고 하는 무슬림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개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무슬림들이 그리스도를 향하게 되는 데는 다른 요소들이 사용되었다. 각 개종은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방금 말했듯이, 나의 연구는 다른 요소들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어떤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슬림 개종에 대한 문서들에도 등장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낯설지는 않은 것들이다.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신적인/인간적인 협력이 동원된다. 개종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예수님은 개종이 일어나도록 일하신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기까지 믿는 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성경적 진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문맹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성경의 증거하는 예수님은 다른 방법으로도 제시될 수 있다.[54] 이 과정이 좀 길어질 수도 있지만, 믿는 자들이 일관적이고 신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55] 동시에 개종자들은 신실하게 예수님에게로 돌아섰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 요약하자면, 그들이 만난 예수님은 개종이 일어나게 하는 최종적인 단계였다. 그 분이 기적적으로 중재에 나서실 때 단연 절대적인 특권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 분은 분명 다른 요인들을 활용하셨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예수님과 별개로는, 즉 독립적으로는 돌아설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각 개종은 변화를 일으키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개종 전에 이슬람에 깊이 헌신되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강한 무슬림들이 후에 믿는 자들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바가 없다. 일부 열정적인 무슬림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서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개종자들이 개종 이전에 이슬람에 별로 헌신적이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무슬림들이 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 걸음을 떼어서 이슬람을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슬람이 싫어서 그리스도께로 온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한 거절은 기독교와 관계없이 일어나거나 예수님과 만난 다음에 일어났다. 주요 개종 패턴은 사람들이 이슬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리스도께로 돌아선다고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종자들을 보고 싶다면 이슬람을 공격하지 말고, 대신 무슬림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여야 한다.[56]

마지막으로, 선교신학자들은 내가 꿈들에서 발견한 것을 유용하다고 볼 것이다. 열 다섯 명의 팔레스타인 응답자들 중에 반 조금 못 되는 사람들이 설명하는 과정에서 꿈 같은 경험을 언급했다. 그들은 그 경험이 그들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말한다. 꿈과 개종을 연결시켜 말한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만남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꿈이나 꿈 같은 경험들은 그것이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여는 주요 수단이 되었을 때에만 중요하게 취급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꿈에 대한 통찰은 다른 곳에서도 똑같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연구자들은 개종자들의 꿈 (그리고 다른 현상들)을 다르게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 같은 경험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개종의 본질적인 요인은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있기 때문이다.

참고.
Greenham, Anthony Bryan, ‘Muslim Conversions to Christ: An Investigation
of Palestinian Converts Living in the Holy Land’ (Ph.D.
diss.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2004)
Monette, Duane R., Thomas J. Sullivan, and Cornell R. DeJong, Applied
Social Research: Tool for the Human Services (New York:
Holt, Rinehart & Winston, 1986)
Musk, Bill A., ‘Dreams and the Ordinary Muslim’, i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16 (1988)
Nydell, Margaret K., Understanding Arabs: A Guide for Westerners
(Yarmouth, ME: Intercultural Press, 1987)

[1] Ant Greenham은 남아프리카에 있는 Durban 출신이다. 그는 Dallas에 있는 Criswell College에서 Biblical Studies로 MA를 했고, 미국 North Carolina Wake Forest에 있는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으로 PhD를 했는데, 논문은 이슬람에 대해 썼다. 그와 아내 사이에는 성장한 두 명의 자녀가 있고, 여러 명의 손주들이 있다. 현재는 그가 박사학위를 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2] 눈에 띄는 몇 가지 요소들은 내가 분석한 결과이다. 분명한 중요성을 띤 요소들을 빼 놓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이 분석했다면 내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을 포함했을 수도 있고, 또한 내가 포함한 것을 한 두 개 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 그룹에 대한 패턴은 대략에 따른 것이지, 정확하게 세세한 것들까지 포함한 것은 아니다. 또한 개종과 관계되지 않은 세세한 것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3] 눈에 띄는 영역들은 전체적인 그룹에 적용되지만, 또한 그 그룹을 나누었을 때 그 나누어진 부분(하위 그룹)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하위 그룹들은 미리 임의로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어떤 개종 요소들이 분명하게 적용될 때 하위 그룹으로 명명되었다.
[4] 죽음의 위협을 당한 일곱 명 (남자2와, 남자3, 남자4, 남자5, 남자7, 남자8, 남자10)에 더하여, 남자 6은 그의 가까운 친척 중 한 명이 자신을 죽일 것을 두려워했다. 비록 그가 비밀 신자였기 때문에 아직 위협은 당하지 않았지만 그의 개종 사실이 알려질 경우 그렇게 될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5] 죽음의 위협을 당했거나 그것을 두려워 하는 여덟 명의 남자들 중 네 명(남자 2와, 6, 7, 8)은 믿는 자의 순교와 박해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당한 고난을 알고 있는 것은 적대적인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에게 꽤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6] 포괄적인 질문지에는 정치적 불안정과 두 다른 요소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이 일으키신 기적)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세가지는 내가 개종의 주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넣은 것들이었다.
[7] 다른 두 명인 남자 2와 7은 체포되었을 때 했던 영적인 고심을 정치적 불안정과 연결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남자 2와 7의 경우에는 정치적 불안이 개종의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하게, 여자 1과 3의 개종의 경우, 그들이 정치적 불안정을 개종의 이유로 표시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개종 이야기에서는 전혀 그러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적 불안정을 그들의 주요 개종 이유 중 하나로 보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8] 여자 3은 미디어를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개종 이후에 그녀는 예수님 영화의 가치를 중요하게 보았다. 여자 4부터 8까지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중간 정도로 보았다. 여자 4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여자 1부터 8까지 각 가정 모임은 그들의 정기 모임에서 테이프를 사용하고 있었다.
[9] 남자 1을 포함시킨다면 다섯 명의 개종자가 미디어에 대해 말한 것이 된다.
[10]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등과 같이 현저하게 눈에 띄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6.3에서 다루고 있다.
[11] 응답된 기도에 대해서는 6.3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을 다루면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12] 남자 9가 이 상황에서 정치적 불안정보다는 개인적 위기를 더 강조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13]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자들 중에는 아무도 (정말 개종했는지 의심스러운 남자 1을 제외하고는) 공동체의 격려를 받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여자 9의 경험은 여자 2부터 8까지의 경험들과는 다르다. 여자 9는 다른 지역에서 왔고, 무슬림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격려를 받았기 때문이다.
[14] 방문을 하면서 (여성) 운동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는 나의 연구 범위를 벗어난 영역이었다. 그 지역에 있어서 좀 더 자세히 그 문제에 대한 양질의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한 추후의 조사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과 개종자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그룹 모임을 방문하는 것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뷰도 실시해야 한다. 그러한 인터뷰는 이미 인터뷰한 여성들의 예들과, 그들의 남성 친척들, 다른 여성 개종자들, 남성 개종자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좀 더 넓은 영역의 개종하지 않은 무슬림 공동체의 남녀들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그룹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고 지역 그리스도인 운동에 대한 반응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연구는 매우 조심성 있게 이루어져야 하며, 개종자들의 삶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면 절대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15] 이는 아랍 무슬림 사회에서 영광(명예, honor)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16] 여자 3만이 예수님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죄의 “수치”를 가져가셨다고 고백했다. 수치는 분명 영광(명예)와 반대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녀를 개종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하지는 않았다.
[17] 이 용어에 관련된 답을 한 그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아랍어로 인터뷰를 한 사람들이다. 다른 다 사람은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주저함 없이 그것이 영어로 “하나님의 영광” 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영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God”과 아랍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알라”가 의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아랍어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하나님 사이에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 모두 하나님이 매우 영광 받으실 만한 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18] 개종에 대한 설명에서 영광과 관계된 언급이 별로 없다는 것도 이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부분은 개종자들이 나의 포괄적인 질문지에 답한 것이지 그들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포괄적인 질문지를 통해 얻는 정보는 개종 이야기를 보충하고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에서 별로 언급되지 않는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19] 하나님의 영광은 다른 다섯 명 (남자 4와 5, 8, 9와 여자 10) 에게도 중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것을 중간 정도의 중요한 것으로 본 다른 일곱 명의 응답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중요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2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의 죄의 수치를 모두 담당하셨다는 것에 미미한 반대를 표한 후 그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겠노라고 기꺼이 말했던 남자 11만이 예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기본적인 기독교 신학을 알고 있지만, 영광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21] 내가 2003년에 한 연구는 적용 가능한 개종 요인들을 발견하기 위한 개종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포괄적인 질문지에는 등장했지만, 개종 설명에서는 나오지 않은 영광과 같은 요소들에 대한 자세한 탐구까지 할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2003년의 연구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중요성을 둔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그 다음 연구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식적인 연구 제안서를 기대하지 않고, 개방적인 질문지를 바탕으로 가능한 정보들을 모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질문지를 통해 그들의 개종 이야기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즉, 개종 전과 그 이후에) 개종자들이 영광과 수치,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22] Margaret K. Nydell, Understanding Arabs: A Guide for Westerners (Yarmouth, ME:
Intercultural Press, 1987), p. 102.
[23] Margaret K. Nydell, Understanding Arabs, p. 102.
[24] 그가 반드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25] 여자 10은 남자 11과 마찬가지로 좀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꾸란도 좀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읽는 방식은 (본문의 이해 없는) 암송 혹은 낭송이다. 이것이 무슬림 어린이들이 꾸란을 배우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26] 교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계속 성경을 읽게 하였던 그 ‘무엇인가’는 신적인 어떤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7] 이 두 사람은 모두 개종 당시 성경을 잘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남자 10은 영어로, 여자 11은 아랍어로) 충분한 교육을 받았지만, 둘 다 성경읽기를 강조하고 있지 않다.
[28] 남자 1은 예외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성경과 꾸란 사이에 찾아볼 수 있는 논리적인 차이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의 경우에 그가 진실로 개종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29]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들의 사역 방법에 대해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본 연구에 대한 후속 연구로 개종 패턴에 비추어 사역 방법을 평가해 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연구 프로젝트도 가능할 것이다.
[30] 이 연구는 개종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 (그 중에서도 특히 믿는 자 A부터 L에 의해 개종자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A부터 L에 이르는 믿는 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31] 만일 남자 1과 여자 5가 포함된다면, 그 수는 남자 일곱, 여자 일곱이 될 것이다. 남자 1과 여자 5는 분명 믿는 자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 영향이 그 남자를 진정한 개종으로 인도하지는 않았고, 그 여자를 완전한 개종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32] 남자 3은 여기서 분명히 예외인데, 그는 두 명의 독일 여성인 믿는 자 C와 D에게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33] 이와 대조적으로 여자 11은 그녀의 여자 친구인 믿는 자 L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교묘한 방법을 사용한 기독교 컨퍼런스에서 만난 남자 설교자에게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34]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있는 무슬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남성 믿는 자들이 여성 믿는 자들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이 개종 이야기들에서 남성 믿는 자들이 미치는 영향이 더 많이 등장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35] 여자 1 역시 믿는 자 A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가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이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은 인터뷰한 스물 두 명 중에 아홉 명이 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그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별로 부각되지 않았다. 외국인과 지역 신자들의 역할이 대체로 균형 있게 잘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남자 5와 여자 1, 3, 그리고 여자 4는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남자 3과 여자 10은 독일인들에게, 남자 4와 6, 여자 9와 여자 11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남자 7과 9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36] 이것은 여자 9의 밝히지 않은 이야기에서 나온 내용이다.
[37] 위에서 언급한대로,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같은 중요한 개종 요소들은 포괄적인 질문지에서 만이 아니라, 개종자들이 직접 한 이야기에서 이끌어 낸 것들이다.
[38] 대부분에 있어서, 진리에 대한 개종자들의 발견은 그 진리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 이슬람의 가르침과 비교하여 저울질 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그들이 들은 기독교의 진리를 이해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진리들이 의미하는 것은 항상 광범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을 거절하는 것이 중요한 개종 이유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의 진리에 끌렸다는 것과 그들이 이슬람의 신조에서 돌아섰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39] 각 개종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논의하였다. 그러나 내가 주관적으로 그들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개종자의 관점을 그대로 전달하기로 하겠다.
[40] 거의 모든 응답자들이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 여자 9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이 자신을 개종으로 이끌었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소개되지 않은 여자 9의 이야기는 그녀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상황에서 개종하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누군가가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더 연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기도의 응답을 개종자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의 예 가운데 하나로 보고 싶다.
[41] 이 요소가 강조되는 것은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것에 매우 끌린다는 사실과도 잘 들어맞는다. 나는 응답자들이 그들의 삶에 일어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종자들의 경험이 그 지역에 전래되어 오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들에서 왔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이미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에 끌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번역자)
[42] 남자 6은 자신을 예수님께로 이끈 꿈을 꾸었다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그가 그 “한 밤중”의 경험을 할 때 깨어있었으며 실제로 일어난 일로 그것을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남자 3, 9, 10과 여자 11 같은)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꿈 같은” 경험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43] 남자 6이 한 “한 밤중”의 경험은 좀 독특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을 강조했다. 이 요소가 분명 그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또한 남자 6은 하나님이 그의 삶에 기적적으로 역사하신 것이 그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데 중간 정도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말하였다. 남자 6이 이 영역에 포함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하심이 이 그룹 전체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44] 남자 4는 자신이 한 구멍에서 끌려 나오는 또 다른 꿈도 꾸었다. 이 꿈 역시 그의 개종을 확신시켜주고 격려해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45] 남자 4와 여자 10, 여자 11만이 예수님의 비전을 보았다고 말했다. (남자 6과 남자 10은 경험이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제외하였다. 남자 6은 그 당시 “어떤 것”이 그의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나중에 그것이 예수님이었음을 알았다고 말하였고, 남자 10은 “마치” 예수님이 방 안에 들어 오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들 중 아무도 예수님의 신체적인 모습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여자 10만이 하얀 옷을 입고 계셨다 (그리고 두 명의 아이들과 동반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대신에 그들은 그분이 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예수님은 남자 4를 감싸셨고, 그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자 10에게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고, 여자 11에게는 그녀의 가슴을 가리키셨다. 이러한 경험들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들은 예수님의 외모보다는 하신 일에 집중되어 있는 신약적인 접근과 대체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46] 이 꿈은 그녀가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당도했을 때 다른 사람이 꾼 꿈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녀는 그 꿈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47] 이 경우 그 꿈 자체보다는 기도해 준 사람이 그녀에게는 더 중요했다.
[48] 지나가면서 밝히고 싶은 것은 꿈을 이야기에 포함한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들이었고, 포함시키지 않은 사람들은 주로 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별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이 꾼 꿈에 대하여 내린,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초자연적인 영향에 대한 개종자들의 평가는 그들이 그 꿈을 이야기에 포함시켰는가 그렇지 않은 가로 결정하였다.
[49] 이 두 사람 모두 삶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남자 1은 분명히 예수님을 매우 긍정적으로 본 반면에, 여자 5는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50] 이 내용은 여자 9의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51] 공동체와 하나님의 영광은 표 3과 4의 가장 마지막에 제시되어있다. 그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 요인들을 강조한 개종자들의 수는 제시되지 않았다. 좀 더 연구가 이루어지면 가능할 것이다.
[52] 순서를 정하는데 있어서 요인들의 정확한 위치보다는 일반적으로 눈에 띄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다르게 분석할 경우 좀 더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예수님에 대한 요인을 그 선두로 하여, 어떤 요인들이 좀 더 눈에 띄는 요소들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53] 나의 논문에서 내가 발견한 것들을 이미 출판된 자료들과, 팔레스타인 무슬림 개종에 대한 선교사들의 평가, 또한 방글라데시에서 이슬람에서 개종한 열 명을 연구한 것과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내가 발견한 것들이 다른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4] (성경적인) 다른 미디어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곳에서 매우 유용하다. 기본적으로 읽고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경을 읽고 바르게 그 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55] 선교신학자들은 개종이 과정이라는 엥겔 수치와 다른 학자들의 모델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56] 변증학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들이나 개종한 무슬림들, 또한 다른 사람들 역시 기독교와 이슬람을 분명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반 이슬람적인 논쟁은 무슬림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서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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