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6일 토요일

무슬림 여성과의 대화

글쓴이: 비비안 스테이시 Vivienne Stacey
원제: Conversations with Muslim Women
http://www.stfrancismagazine.info/ja/images/pdf/vivienne/ChristianConversationswitMuslimwomen.pdf

그리스도께서 각각의 여성들과 한 대화를 보면 주님이 그들을 백성으로 보셨으며, 그들 각자의 종교와 사회적 배경을 존중하고 이해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은 또한 그들의 심리적인 필요도 매우 잘 알고 계셨다.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대화(요14:1-12)나, 간음한 여인과 하신 대화(요8:1-11), 마리아와 마르다와 하신 대화(요11), 어머니와 나누신 대화(요19:25-27), 그리고 부활 후에 막달라 마리아와 하신 대화 (요20:1-18)를 연구해 보면 도움이 된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다른 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주님의 예를 보거나,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무슬림 여성과의 대화라는 특별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의미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한 번 만나고 끝날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여성이 만나서 서로를 알게 되고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우정을 쌓게 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종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어느 단계에서부터인가 상대방의 종교적, 사회적, 심리적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상태. 그 무슬림 여성이 매우 종교적이어서 종교적인 모든 요구사항들을 실천하는 사람인가? 이슬람의 어느 분파에 속한 사람인가? 순니인가, 쉬아인가, 이슬람미인가 아니면 다른 종파의 사람인가? 혹시 그녀는 수피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녀가 관계하고 있는 수피는 어떤 그룹인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일부 사우디 아라비아의 여인들처럼 교육받지 못했고, 무슬림이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방금 알게 된 그런 여성인가? 수도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스도인들과 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 여성인가? 아직 그리스도인을 만나본 적은 없더라도, 영문학이나 독문학 같은 공부를 하면서 성경을 공부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인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를 그 여성의 사회적인 상태로 인도해준다.


사회적 상태. 그녀는 문맹인가? 교육은 잘 받은 사람인가? 그렇다면 어느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았는가? 프랑스 유럽 문화에 노출되어 있는 알제리아 사람인가, 아니면 고향에 있는 이슬람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인가? 그녀는 총명한가? 그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배운 적이 있는가? 그녀는 인도인 무슬림인가, 아니면 터키인, 인도네시아인, 오만인 무슬림인가? 그녀는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느 부분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가? 그녀의 나라에서 여성의 위치는 어떠한가? 그녀는 튀니지 같이 일찍 개혁을 이룬 나라에서 여성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왔는가, 아니면 꾸란이 헌법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사람인가? 시골에서 왔는가, 도시에서만 산 사람인가? 그녀의 가족은 어떤가? 결혼했나? 나이는? 이 모든 질문들이 대화를 나눌 때 기억하고 있으면 좋은 것들이다.

심리적 상태. 우리의 무슬림 친구는 관심을 갖는다면 지적인 질문들에 더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심리적인 두려움에 더 관심이 있는가? 그녀는 아마 그녀의 남편이 자신과 이혼하거나, 두 번째 부인을 얻지 않을까, 혹은 출산의 위험이나, 악한 눈, 그리고 영적 세계의 적대적인 세력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제리아에서는 성자숭배를 금하고 있지만,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종교 지도자들에게 찾아가서 고대의 주술이나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이런 많은 것들이 이슬람보다는 무속신앙에서 전래된 것들이다.

짧게나마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요인들 세 가지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매우 간략한 연구를 통해서도 우리는 많은 종류의 무슬림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대화를 나누거나, 복음에 대해 말할 때, 한 가지 접근이나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접근과 방법들이 있다. 여기서는 낭송 및 노래, 기도, 핵심어 이렇게 세 가지 정도만 살펴보기로 하자.


낭송 및 노래 RECITATION AND SONG. 꾸란이라는 말의 의미는 낭송이다. 아랍어로 꾸란은 큰 소리로 낭송하는 것 혹은 읊조리거나, 암송하는 것이다. 듣는 것 보다는 읽는 것에 익숙해 있는 서구인들에게는 꾸란을 읊조리는 것이 경건한 무슬림에게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단어들과, 소리, 재능 있는 사람이 읊조리는 고전 아랍어는 그 의미를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중앙 아시아의 유목민들을 예로 들어보자. 그들은 작년 겨울 말에 파키스탄으로 건너왔다. 그들 중 두 명의 여성이 의료적 치료를 필요로 했는데, 가족들과 함께 기독교 병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느 날 그 의사는 그들이 걸프 석유국인 카타르에 관해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 노래에서는 대화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남편: 내가 카타르에 가서 당신에게 많고 많은 돈을 벌어다 줄께.
아내: 거기에 가지 말아요. 카타르에 가면 문제가 많이 생길 거예요. 만일 신께서 그곳에서 당신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줄 수 있다면, 왜 여기에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공급해 주실 수 없겠어요? 카타르에 가지 마세요.

이 무슬림 가족은 이런 식으로 그들이 피운 모닥불 가에서 밤에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있었다. 한 여성이 그 의사에게 아는 노래 중에 하나를 불러보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그 여성 의사는 누가복음 14장에 나오는 결혼 잔치에 관한 비유를 노래로 만들어서 불러주었다. 잔치에 올 수 없다고 변명하는 내용들은 그 의사가 상대하는 환자들이 입원을 하기 싫을 때 하는 변명들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 노래는 여성 의료 선교사들이 이미 만들어서 부르던 것이었다.)

그 여성의사가 부른 노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후렴: 나는 초대를 받았지만 당신의 잔치에 갈 수 없어요.
내 소는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는 젖을 내주지 않아요.
나는 집에 어린 아이들이 많은데 집이 동떨어진 곳에 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잔치에 갈 수가 없어요.
1절: 한 사람이 집에서 잔치를 열었어요. 그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종을 보내서 사람들에게 알렸어요. 음식이 준비되었다고. 그러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변명을 해대기 시작했어요. 나는 갈수가 없어요.
2절: 이 말을 듣고 집 주인은 몹시 화가 나서 종들에게 말했어요. “거리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 절름발이, 중풍병자, 눈먼 사람들을 데리고 와라. 내 집을 가득 채워라. 나는 갈수가 없어요.
3절: 예수님이 해 주신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러면 영생과 구원을 얻을 수 있어요. 나는 갈수 없어요.

노래를 해 달라고 했던 여성은 주의 깊게 듣고 나서 질문을 하고, 집에 가서 자기들도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적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여의사는 그것을 적어서 그 이야기가 쓰여 있는 소책자, 즉 누가복음과 함께 주었다. 두 번째 가족 역시 노래를 해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여의사는 마태복음에 있는 이야기를 노래로 엮은 것을 적어서 마태복음과 함께 두 번째 가족에게 주었다. 그 두 가족은 그 노래를 불렀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그 복음서를 큰 소리로 읽었다. 이처럼 그 지방 사람들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을 통해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다.


기도. 기도는 매우 익숙한 인간의 표현 방식이다. 무슬림들은 그들이 정기적으로 하는 기도(쌀라)를 매우 강조한다. 또한 좀더 개인적인 기도인 두아(dua)도 강조한다. 위기가 닥치거나, 특별한 경우가 되면 무슬림은 그리스도인 친구에게도 기도를 부탁할 것이다. 내가 아는 몇 명의 그리스도인 산파들은 무슬림들이 출산의 위험에 매우 예민하며, 그들의 문화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미신과 관습으로 인해 몹시 두려워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산파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곤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 산파는 다음과 같이 말해 줄 수 있다: “당신은 이제 갓난 아기의 엄마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이 아기가 안전하게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안전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베푸신 사랑과 선하심에 감사 드리고, 이 가정에 새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영원한 주요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이 아기처럼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는 당신처럼 산고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당신처럼 기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당신의 아기에게 자연스러운 출산을 통해 육체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영적인 태어남을 통해 당신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해 줄 수 있는 기도는 아래와 같다: “창조자이신 하나님, 당신의 선하심으로 인해 이 아기가 안전하게 태어나고 산모도 고통에서 해방되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이제 간구하옵는 것은 당신이 육체의 생명을 주신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영원한 생명도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멘.”

핵심어. 그리스도는 이 방법을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보여주셨는데, 그 대화에서 핵심어는 물이었다. 한 번은 푼자비 마을에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나에게 몇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자신의 일가 친척이 되는 부족들은 이 백 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나의 일가친척들은 그것보다 더 많은 집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내가 그녀에게 집은 매우 안전해서 도둑이 들 염려도 없고 수리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자 그녀는 매우 진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나의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아요.” 나는 요한복음 14장 1-6절을 읽어주었고 그녀는 주의 깊게 들었다. 내가 일상 생활을 하면서 주로 사용하는 핵심어들은 부적, 베일, 비 라는 단어들이다. 접촉 점으로 삼을 수 있는 많은 종교적인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순례, 금식, 신조 같은 것들이 그런 단어들이다. 그런 단어들은 좀 더 지적이고 신학적인 논의로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다. 무슬림 여성들 중에는 그런 논의를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로 여성들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남성들은 남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무슬림 사회지만, 때로는 부부가 다른 부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여러 유형의 무슬림 여성들과 접촉해 보면서, 그리고 여기서 지면상으로 나눈 단 세 가지의 방법들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나는 어떤 표준적인 여성이나 딱 집어서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표준적인 방법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살아있는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만남이 우리의 모든 영적, 지적, 문화적 경험들과 그 이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시켜 주신 모든 것들을 끌어 모아야 하는 최 일선의 상황이 된다. 우리가 부지런히 스스로를 준비시킨 후에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한다. 그분만이 다른 어떤 진리가 아닌 주 예수의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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